1900년 마산상호회가 전신
일제 구강장 탈취에 맞서 조선 상인 권익보호
경제개발 속 고도성장 시기
산업화 전진기지 역할 맡아

도내 최대 규모 경제단체인 창원상공회의소가 올해 창립 120주년을 맞았다. 1900년 마산포 객주를 중심으로 결성한 마산상호회(馬山商護會)가 전신인 창원상의는 그동안 지역과 함께 성장하며 2300개 회원사를 둔 단체로 성장했다. 창원상의는 도내 경제단체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한다. 또 대·중소기업을 아우르는 최대 단체여서 도내 유력 경제계 인사가 회장을 맡아왔다. 경남 역사와 맥을 같이해 온 창원상의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본다.

◇1900년 마산상호회가 효시 = 창원상의의 효시는 1900년 5월 설립된 마산상호회다. 1899년 마산항이 개항하자 몰려드는 식민자본의 위협으로부터 민족상권을 보호하고자 마산포 객주를 중심으로 마산상호회가 결성됐다. 마산상호회는 1902년 일본의 야욕으로 빚어진 구강장(舊江場) 탈취에 대응해 마산포 주민들의 생활권을 지켜냈고, 1906년에는 회원들이 합심해 항민공동매축청원서(港民共動埋築請願書)를 요로(관계기관)에 제출하는 등 지역민의 권익을 지키고자 온갖 노력을 다했다.

마산상호회는 마산포 주민의 자위적 대변기관인 마산민의소 탄생의 산파역을 담당했고, 1908년 마산조선인산업회의소로 개편돼 근대적 상업회의소의 모태가 됐다.

일제강점기 상공회의소는 일본의 압박 속에도 해산과 설립을 반복하며 명맥을 유지해왔다. 1945년 광복을 맞아 마산과 진해 상공인들은 조직을 새롭게 정비했고, 1953년 마산상공회의소와 1955년 진해상공회의소가 각각 제1대 의원선거를 시행해 법정단체 상공회의소 출범을 알렸다.

◇창원시 승격과 창원상의 탄생 = 1973년 산업기지개발촉진법이 공표되고 이듬해 창원이 산업기지 개발지역으로 확정되면서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창원은 국내 최대 중화학공업단지로 조성된다. 1980년 경남도 창원지구 출장소였던 창원은 1980년 4월 1일 창원시로 승격됐고, 상공회의소 창설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부응해 그해 7월 창원상공회의소가 출범했다.

▲ 왼쪽부터 마산자유무역지역, 창원·진해국가산업단지 전경. 창원상공회의소는 경제개발 고도화 시기 국가·기업·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경남도민일보 DB
▲ 왼쪽부터 마산자유무역지역, 창원·진해국가산업단지 전경. 창원상공회의소는 경제개발 고도화 시기 국가·기업·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경남도민일보 DB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온 창원상의 = 1950년 지역산업의 태동과 60, 70년대 경제개발계획에 발맞춘 도약기를 거치면서 상공회의소 역할도 확대됐다.

당시에는 구 마산상의와 구 진해상의가 중심이 돼 전후 기간산업 유치와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주로 담당했다.

이들 상의는 지역 중심산업이었던 방직업·주조업 등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자 마산화력발전소 설치운동(1954년)을 시작으로 수출공업단지 개발 추진(1965년), 진해 전매서 설치(1966년), 항만시설 개선(1969년), 구마고속도로 건설(1970년), 공장새마을운동 전개(1974년) 등 산업인프라 구축에 앞장섰다.

이후 경남도청 유치운동(1963년), 지역대학 설립 추진(1968년), 경남은행 설립 추진(1968년) 등 공업단지를 지원하는 도시 기능 확대를 위해서도 노력했다. 1980년대 창원은 창원국가산업단지, 마산자유무역지역을 중심으로, 이른바 3저(저유가, 저금리,약 달러) 효과를 톡톡히 보면서 수출과 설비투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이 시기 설립된 창원상의는 창원세관 승격(1985년), 창원대학교 종합대학 승격(1990년), 경남무역회관 건립(1991년), 한국수출입은행 창원지점 설치(1992년), 재료연구소 설치(1994년), 경남지방병무청 승격(1994년) 등 기업 지원기관 유치와 승격에 힘을 쏟았다.

◇건전한 노사문화 정착에도 기여 = 1990년대 국내 산업의 주된 이슈는 노사문제였다. 성장 일변도 정책에서 선진화된 노사문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으면서 노사문제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특히, 창원지역은 산업 규모의 팽창으로 외부에서 유입된 노동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 시기 마산, 창원, 진해상의는 지역 노동자의 애향심 고취와 지역 공동체의식 함양을 위해 공단문화사업에 주력했다. 기업체 임직원의 취미활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대회를 개최했다. 축구, 배구, 테니스 등 스포츠는 물론 시, 수필, 수기, 서예 등 문학작품 공모까지 형태는 다양했다.

외환위기를 겪은 후 맞은 2000년대는 전 산업의 디지털화가 이슈로 떠올랐다. 창원상의도 이런 흐름에 편승해 전자상거래를 비롯한 e-비즈니스 지원사업과 특허정보 지원사업을 새롭게 진행하고, FTA활용, 청년인턴지원 같은 전문사업도 강화했다.

◇통합 창원상공회의소 출범 = 2010년 마산·창원·진해시가 자율통합함에 따라 상공회의소법에 따라 각기 흩어졌던 상의도 2011년 3월 통합 창원상공회의소로 새롭게 거듭났다.

통합 창원상의는 3개 지역의 균형발전과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을 통해 화합과 소통의 장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지역을 돌며 행사를 개최했고, 지역 특성을 살린 분과위원회 활동도 독려했다.

한철수 창원상의 회장은 "창원상의 120년 역사는 지역산업 태동과 성장의 궤와 함께한다. 시대와 사람이 바뀌었지만, 지역 기업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상공회의소의 역할은 변함없다"면서 "앞으로도 창원상공회의소는 설립 취지에 맞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