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폐위된 해 동지에 제작
바름 내세워 자기 수양 목표로

경남도립미술관은 지난 2월 20일 변혁기 우리 미술을 엿볼 수 있는 전시 '자화상Ⅱ - 나를 보다'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지역사회로 급속히 확산하면서 미술관은 전시 개막 1주일도 채 안 된 2월 26일부터 휴관에 들어갔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김종원 관장이 직접 이번 전시 작품과 그 의미를 소개합니다.

1905년 을사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를 내세워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체결한다.

이 일에 앞장선 대신들이 이른바 을사오적으로서 이완용, 이근택, 박제순, 이지용, 권중현이 그들이고, 장지연은 대한매일신보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발표해 그 울분을 토로했다.

1907년 정미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은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하여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만방에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이 일은 실패하고 그 책임을 물어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 폐위를 성사시킨다. 고종(1852~1919)의 재위기간은 1863~1907년이다.

고종황제 친필인 '정헌(正軒)'은 고종이 폐위된 그해 정미년 동지에 제작된 것이다. 이 작품에 이 글을 쓰게 된 연유를 기록하고 있다.

▲ 고종 황제가 순종에게 '정헌(正軒)'이라는 호를 내려주며 쓴 글.  /한국학중앙연구원
▲ 고종 황제가 순종에게 '정헌(正軒)'이라는 호를 내려주며 쓴 글. /한국학중앙연구원

풀어보면 "서경에 말하기를 만방에 바름(正)을 표방한다. 임금이 바르면 세상이 바르지 않음이 없다하였다. 이제 바름(正)으로 용렬한 나의 거처에 이름을 붙여, 이에 힘쓰자는 뜻이다. 정미년 동지 주연"이라 하고 있다. 여기서 주연(珠淵)은 고종의 아호로서 고종 문집이 <주연집>이다.

강제 폐위당한 참담한 심정의 망국 황제는 왜 '정(正)'을 내세워 거처의 이름으로 삼고 자기 수양의 목표로 삼은 것일까? 한말 냉혹하기 그지없는 열강의 각축이 한반도에서 전개됐다.

위정척사(衛正斥邪)를 부르짖고 나라 문호를 걸어 잠그는 쇄국정책 결과는 망국의 한을 남겼다. 그 회한을 이 '정(正)'에 담아두고 있는가? 자신이 믿고 있는 '정(正)'이 결코 바른 길이 아니었음을 폐위의 그날에서야 깨달은 것인가?

1909년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정(正)'과 '의(義)'가 무엇인지 만방에 알리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리고 이듬해 1910년 경술국치라는 한일합방 치욕이 이 땅에 그림자졌다. 그 뒤 1919년 1월 고종 승하는 기미 독립운동을 촉발한다.

역사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정의는 무엇이며, 개인의 정의는 어떠한 것인가? 정의란 객관화된 보편적 개념인가? 아니면 도달하지 못하는 이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국가 지도자의 정의는 어디를 향하는 것이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하는 시기는 아닌지? 지금 우리는 역사에서도 답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아닌지 이 작품 앞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