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부끄러웠던 돈봉투·연고주의
유권자 의식, 공정·현명해져

야구는 18세기 초에 미국에서 생긴 인기 스포츠다. 처음에는 소프트볼의 투수처럼 타자가 치기 쉽도록 밑으로 던져 주었는데, 그러던 것이 60년대에 프로팀이 생기면서, 직구가 아닌 커브볼로 타자가 치기 어렵게 공에 온갖 기교를 넣어 던졌다. 이를 본 미국 시인의 아버지라 일컫는 휘트먼은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난 비열한 짓'이라고 개탄을 했다고 한다.

작년에 이탈리아 호날두(유벤투스) 초청 축구경기에서 약속을 어겨 비양심적이라고 아직도 소송 중에 있고, K리그에서도 규칙을 어겨 게임에 이기는 것도 비신사적이라고 세상이 떠들썩한데, 어찌 된 일인지 비신사적이고 규칙에 어긋난 일을 정상적인 것처럼 여기는 사회로 변한 것이 우리 사회의 단면이며 약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21대 총선은 코로나 때문에 난국임에도 국민의 성숙함과 의식 수준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사회 변화에 가속도가 붙은 느낌이다.

선거도 정정당당하고 신사답게 페어플레이 정신이 필요하다. 선거 연령이 18세로 하향되고, 괴물 같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때문에 35개의 정당이 나온 복잡한 선거임에도, 입후보자 자격과 인품의 검증 및 국민 관심도가 옛날 같지 않다. 유권자를 달콤한 당근으로 회유하던 먹자판 선거나 돈 봉투 선거, 4연고(血·地·學·職) 선거 등 낯부끄러웠던 시대의 선거는 거의 없어지고, 입후보자의 인품 및 사람 됨됨이와 정책을 최우선으로 평가하는 선거 분위기로 변한 것 같다. 홍보 방송에서 옛날에는 선거 당일까지 입후보자에 관해서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선거는 귀동냥해서라도 정책과 인품을 챙겨 사표(死票)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촌로(村老)의 관심사가 대단해 보였다. 보름 동안 온갖 시련과 각고 끝에 많은 상처만 남기고 유권자의 소중한 권리 행사만 남아있다.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이전투구와 '꼬시락 제 살 뜯어 먹는 모습'과 후보자의 공약과 인품을 가지고, 벌써 유권자 내심(內心)은 결정되어 심판의 날에 기표할 일만을 기다리고 있다.

옛날 같으면 지금쯤 온갖 허무맹랑한 낭설과 상대방을 헐뜯고 인격을 무시하는 SNS가 판을 칠 텐데, 선거 유세나 한정된 선거운동 때문에 어려움도 많겠지만, 선거에 임하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은 틀림없다.

지금까지는 유권자를 얕잡아 보고 진심과 진실을 외면한 채, 돈과 권력과 위선으로 표를 끌어모아 당선된 사람이 많았던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젠 유권자의 사고 수준도 선진국 못지않아 비열한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아직 입후보자가 국가 예산을 자기 호주머니 돈처럼 마음대로 퍼주려는 실현성 없는 공약을 쏟아내며, 유권자를 현혹하는 것은 아직도 유권자들을 얕잡아 보고 욕되게 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잘못으로 괴물 같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만들어 국민 마음을 갈지(之) 자로 혼란스럽게 하고, 구태의연하게 선거 분위기를 흐린 면도 있지만, 그런데도 유권자들은 올곧은 판단력과 행동에 많은 변화가 왔다. 공관위에서 검증을 거쳐 잘못된 것을 바르게 고치려고 한 점은 새로운 모습이었으며, 낙하산 공천 비율도 공정성을 잃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인 동시에 성장통인 것 같았다.

이번 국민 심판의 날에는 승자와 패자는 서로 격려하고 보듬어 주는 '페어플레이 정신'의 참된 모습을 유권자들은 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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