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화 선생님,

당신은 온 살까지 사셔도 시간이 부족한 분입니다.

 

갑자기 이 게 웬 날벼락인지요

입원하신 줄도 몰랐습니다.

모든 죽음이 갑자기 오는 것이지만

부음을 들으니 억장이 무너지네요

 

작년 봄 

전봉준 장군 동상 설립 일 주년 행사 때,

많은 사람들이 유명한 정치인과 사진 찍기에 바쁜데

저는 선생님과 함께 하는 것만도 영광이었습니다

맥주 한 잔 드릴 때

아양을 부렸지요

"저는 대통령보다 더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당신께서는 빙그레 웃으셨지요

솔직하고 꾸밈을 싫어하셨던 선생님

 

몇 년 전

거창의 '파랗게 날'이 주최한 강연회에 오셔서

민중 주체 역사관을 강조하시고

가져간 황칠주를 달게 자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역사의 구비마다 마땅한 자리에서 헌신하신 선생님

'역사문제연구소' 설립에도 앞장서셨고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사업에도

녹두 장군 전봉준 장군상 설립에도

민족문제연구소 설립에도

한겨레신문 창간에도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민중을 주체로 세우는 역사

'한국사 이야기'를 10년 동안 완간했고

'인물로 읽는 한국사'에서

잊혀진 사람들을 새롭게 살려내셨습니다

역사 할아버지로서 청소년도서도 많이 발간하셨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비껴가지 못하시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회의'의 공동대표로서

십 년 넘게 활동하셨지요

 

일찍이 만주 답사를 가서는

압록강과 두만강 배 위에서

민족의 모순 앞에

목놓아 우셨던 순일(純一)의 선생님

 

어린날 고아원에서 생활하고

젊은 날 다른 사람 밥 먹듯이 밥을 굶으며 딴

고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였지만

학력이 판을 치는 한국의 학계에서

박사 학위도 없이

정확한 고증과 한문 실력으로

100권이 넘는 저술을 남기셨습니다

 

그럼으로써

당신께서는 처절히도 가난했던 당신 어머님 유언대로

출세를 하셨습니다

 

스스로 민중이었고

민중의 진득한 벗이었고

민중의 역사를 쓰시고

역사가 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할 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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