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서 1집 〈축복합니다〉 애청, 들국화 따스한 가사 듣고 힘내 "부드러운 록 사운드에 매료"

김영진(50) 작곡가는 긍정적 성격의 소유자다. 그에겐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김 작곡가는 그해 여름방학 원인을 알 수 없는 눈병에 걸렸다. 마산에선 치료할 수 없어 부산 모 병원에 찾아갔고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그는 40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고 붕대를 감거나 안대를 붙인 채 생활했다.

김 작곡가는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해도 예후가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며 '실명'까지 언급했다"고 말했다. 집안에서 난리가 났다. 어머니는 마산과 부산을 왔다 갔다 하며 그를 간호했고 부산서 대학에 다니던 작은 형도 병원에서 자며 그를 돌보았다. 가족들은 난리가 났지만 오히려 그는 되레 담담했다.

어릴 때부터 작곡을 했던 그는 당시 '베토벤도 귀가 안 들렸는데 눈 좀 안 보인다고 큰일이 있을까. 음악을 하는데 귀가 안 들리는 것보다 오히려 다행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 김영진 작곡가. /김근재 작가
▲ 김영진 작곡가. /김근재 작가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그에게 친구가 되어준 건 음악, 라디오와 카세트다. 김 작곡가가 특히 좋아했던 곡은 들국화 1집의 〈축복합니다〉다.

1985년 나온 들국화 1집은 한국 대중음악 명반으로 꼽힌다. 앨범에는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이 수록됐으며 들국화가 선보인 '한국형 록'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오늘 이렇게 우리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당신의 앞길을 축복합니다/ 그동안 지나온 수많은 일들이/ 하나둘 눈앞을 스쳐가는데/ 때로는 기쁨에 때로는 슬픔에/ 울음과 웃음으로 지나온 날들/ 이제는 모두가 지나버린 일들/ 우리에겐 앞으로의 밝은 날들뿐/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때에는/ 웃으며 서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다짐하며 오늘의 영광을/ 당신께 이 노래로 드립니다.'

김 작곡가는 "가사를 보면 각자 먼 길을 떠나며 서로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며 "록그룹인데 노래가 잔잔하고 사운드가 부드럽고 가사도 귀에 잘 들어오고 그때 당시 힘든 상황에서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 들국화 1집 앨범 앞면.

그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음악도 있었다. 민중가요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금지곡들은 대부분 '해금'됐다. 저는 금지곡이 풀리기 전 병원에서 작은 형이 길거리 리어카에서 산 불법 테이프로 들었는데 신선했다. 음악은 아름답고 좋은 거 이야기하고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오버해서 표현하는 게 예술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때 들었던 민노래, 노동가요, 투쟁가요는 피부에 와 닿는 직설적인 가사와 단순한 멜로디가 특징이었는데 '이런 세상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깊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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