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지난 10일 내년도 예산 규모를 애초 정부안에서 1조 2000억 원 깎은 512조 3000억 원으로 확정했다. 보건·복지·고용 예산이 1조 1000억 원 삭감된 반면, 지역구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9000억 원 늘어났다. 복지 예산은 12.1% 증가에 그친 반면 SOC 예산은 17.6%나 증가했다. 저출산·고령화 대응으로 복지 확충의 필요성이 큰데 복지 예산 중 큰 금액을 삭감한 것이다. 사회간접자본 예산 증가는 일본과 같은 과잉 투자로 귀결될 수 있다. 도로와 건물이 제대로 이용되지 않고 있는 경우가 이미 흔하다.

국회 예산 의결이 국민들의 시대적 요구와는 다르게 이루어진 것은 예산 심사 과정이 '졸속 심사' '밀실 심사' '쪽지 예산' 행태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일 국회에 회부된 예산안이 각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것은 거의 두 달 뒤인 10월 28일이다.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지역구 의원들의 민원성 SOC 예산 증액이 2조 원을 넘었다. 13조 5000억 원 삭감을 주장했던 한국당 의원들도 상임위 예산 증액에 가세했다. 예산 증액, 감액 심사를 하는 예산안조정소위를 15명 내외로 구성하고 지역별로 안배하니 소위 위원들은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소위 심사를 간사협의체로 넘기고, 속기록도 남기지 않는 '밀실 심사'도 의원들의 '쪽지 예산'을 부추겼다.

제대로 된 예산 심사도 없이 여야 실세들이 지역구 사회간접자본 예산을 쪽지로 밀어 넣는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처럼 국회의 예산 관련 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예산위원회와 결산위원회로 분리 운영해 예산심사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국회 예산 심사 기간에 공청회 등을 통해서 국민 요구를 수렴하고 사회단체의 예산 감시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국회 선진화법 개정이 필요하다. 여야 합의가 있어야 의사 일정이 진행될 수 있는 규정을 악용하여 예산안이 정쟁과 연계되고 지연 처리되는 탓에 제대로 된 예산심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 과반 참석, 과반으로 의사 일정을 정하고 의안을 심사·의결하도록 하여 모든 의안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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