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큰집 인증하는 '팔작지붕' 원기둥 받쳐 높은 격식 드러내 높은 기단에서 주인 위상 가늠
노출 지양해 위세 표현 적고 남향 등 실리 추구 중심으로 사랑채와 소통 공간 만들기도

일두고택도 대부분의 양반가 건물들처럼 크게 행랑채-사랑채-안채-사당 순서로 공간을 나눴다. 행랑채는 주로 대문 옆에 붙어 있는 하인들의 건물이다. 경우에 따라서 마구간, 광 등을 배치하기도 한다. 이곳에 기거하는 사람들이 행랑아범이나 어멈이 된다. 일두고택에는 정문을 중심으로 좌우 두 칸씩 행랑채를 만들었다. 우리는 행랑아범을 불러 고택으로 들어간다. "이리 오너라."

◇사랑채

외부인이 처음으로 보게 되는 사랑채는 그 집의 얼굴이 된다.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집안의 위세를 나타내게 된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팔작지붕이다. 지붕은 특별한 규제가 없었으니 이론적으로는 모든 건물의 지붕을 팔작지붕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팔작지붕은 맞배지붕에 비해서 어렵고 많은 목재가 필요하다. 그래서 통상 팔작지붕을 가진 건물은 그 일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 되게 마련이다.

또 하나, 지붕 모서리를 보면 작은 기둥이 추녀 끝을 받치고 있다. 한옥은 처마를 깊이 내려고 노력하지만 충분한 길이를 확보할 수 있는 재료가 한정되어 있어 짧은 서까래를 덧붙여 처마길이를 늘이기도 한다. 겹처마라고 한다. 겹처마를 만드는 것도 건물의 수준을 나타낸다. 하지만 겹처마를 크게 만들다 보면 그 하중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처마를 받치는 작은 기둥을 만들어 넣는다. 활주(活柱)라고 한다. 지붕을 살리는 기둥이다.

다음은 기단이다. 기단은 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초인데 높이와 재료 등을 통해 집의 품격을 높였다. 원리는 간단하다. 기단 위에서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은 집의 주인이고 아래에 있는 사람은 하인(下人)이다. 하인은 사회적으로 아랫사람이기도 했지만 물리적으로도 아래에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기단의 높이는 주인과 하인의 신분의 차이를 나타낸다.

권위적인 분위기가 강조된 지역의 기단은 사람 키만큼 높아지기도 했다. 이 경우 하인은 주인의 발끝만 바라봐야 한다. 얼굴은 바라볼 수도 없고 목소리로 명령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기단의 높이는 건물주인의 위상과 관련이 된다. 일두고택에서는 한층 더 격을 높여 네모나게 다듬은 돌을 사용했고 이중으로 기단을 만들었다. 특히 이중기단은 웬만한 절이나 관청 건물에서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격식을 높이기 위한 또 하나의 장치는 기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반 살림집은 주로 네모난 각기둥을 사용한다. 원칙적으로 조선시대에 원기둥은 살림집에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오면서 규제가 느슨해졌고, 서울에서 먼 지방에서부터 원기둥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갔다. 원기둥을 아무나 사용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훨씬 더 큰 목재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나무는 둥그니까 그냥 나무를 베어다 사용하면 원기둥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일단 네모난 각재로 만든 다음 모서리를 다듬어 원기둥을 만든다. 한 변의 길이가 10cm인 각기둥을 대신할 원기둥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굵은 목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규칙을 어기고 일반 살림집에 사용하더라도 바깥에서 보이는 부분 위주로만 이용했다. 일두고택 사랑채도 마찬가지로 바깥쪽만 원기둥을 사용했다.

▲ 일두고택 누마루. 높은 기단 위에 사랑방과 대청마루가 있다. 사랑방 입구에 충효절의(忠孝節義) 네 글자가 보인다. 오른쪽 누마루는 뚜렷한 이중기단 위에 올라있다. 누의 1층 기둥과 활주의 돌기둥은 8각형, 2층과 활주는 원기둥을 이용해 지붕을 받쳤다.
▲ 일두고택 누마루. 높은 기단 위에 사랑방과 대청마루가 있다. 사랑방 입구에 충효절의(忠孝節義) 네 글자가 보인다. 오른쪽 누마루는 뚜렷한 이중기단 위에 올라있다. 누의 1층 기둥과 활주의 돌기둥은 8각형, 2층과 활주는 원기둥을 이용해 지붕을 받쳤다.

사랑채 누마루에는 이런 상황을 알고 보면 재미있는 요소가 숨어 있다. 누(樓)는 사랑채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누의 중심인 2층에는 사방으로 트여 있으니 원기둥을 사용했다. 아래쪽을 보자. 8각 기둥이다. 각기둥도 원기둥도 아닌 8각을 사용한 이유는 동양의 전통적 세계관인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원기둥은 하늘이요 사각기둥은 땅이었다. 8각형은 네모기둥을 다듬어서 원기둥으로 만드는 중간과정이다. 그래서 네모난 기단(땅)→8각형 1층→둥근 하늘로 조화롭게 변해가는 자연의 순리를 표현했다. 활주도 8각형 돌기둥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워 지붕을 받쳤다. 비슷한 원리가 불국사 다보탑에도 적용되어 있다. 다보탑도 기단은 네모나고 8각형 몸통을 지나 원형 상륜부로 이어진다.

사랑채 내부는 대청마루와 사랑방이 길게 남북으로 이어져 있고 북쪽 끝을 'ㄱ' 자형으로 꺾어서 누마루를 만들었다. 손님들은 계단을 딛고 올라가 바로 만나는 사랑방과 대청마루를 이용했고 주인은 누마루 쪽을 주로 사용했다. 사랑방 바깥벽에는 충효절의(忠孝節義) 네 글자가 크게 쓰여 있다. 이 집의 주인이 생각하는 중요한 네 가지 덕목이다. 대원군의 글씨라 전해진다.

사랑방과 대청마루에는 문을 활짝 열어 하나의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대청마루에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추사의 필적이라 전해진다. 백세청풍은 백세, 즉 영원히 전할 맑은 기운을 말하는데 고고한 선비의 절개를 뜻한다. 누마루는 탁청재(濯淸齋), 세속의 탁한 마음을 씻는 집이다.

▲ 일두고택 안채. 사랑채와는 달리 낮은 기단과 각기둥을 이용해 만들었다. 남향하고 있으며 왼쪽의 건너채, 오른쪽의 사랑채 그리고 남쪽의 중문간으로 만들어진 네모난 마당을 활용해 생활공간을 만들었다. 그 마당 한가운데 우물이 보인다.
▲ 일두고택 안채. 사랑채와는 달리 낮은 기단과 각기둥을 이용해 만들었다. 남향하고 있으며 왼쪽의 건너채, 오른쪽의 사랑채 그리고 남쪽의 중문간으로 만들어진 네모난 마당을 활용해 생활공간을 만들었다. 그 마당 한가운데 우물이 보인다.

◇안채

사랑채는 이렇게 자신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방향으로 만들지만, 안채는 되도록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두고택도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 아래채, 곳간채를 사방으로 배치해서 'ㅁ'자형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의 주인인 안채는 팔작지붕을 해서 주변과 구분했다. 하지만 사랑채처럼 높은 기단을 쌓거나 원기둥을 사용해서 크게 위세를 표현하지는 않았다. 한정된 자원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주변과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동향하는 사랑채와는 달리 남향시켰다. 명분과 실리를 효율적으로 추구하는 선에서 건축요소들을 활용한 것이다.

사랑채가 동향한 이유는 사랑채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기록상으로 안채는 1690년, 사랑채는 1843년 건립되었다. 안채를 만들 무렵에는 사랑채가 없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는 남향집을 선호하니 이 시기에는 남향하는 안채와 출입문이 있었고 사랑채가 있는 곳은 아마 담으로 막혀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대에 동쪽을 개조해서 사랑채를 만들게 되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랑채는 기존에 있던 담장의 역할도 해야 하니 남북으로 길게 배치하면서 주된 방향은 안채의 바깥쪽인 동쪽으로 정해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옛날 대문은 사랑채와 안채를 이어주는 중문간으로 변했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사랑채는 동향해야 했지만 사랑채에서도 주인이 사는 누마루 쪽은 'ㄱ'자 형으로 꺾어 남향시켰다. 남향에 대한 끈질긴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 사랑채의 숨은 공간. 외부적으로는 단절되어 있는 안채와 사랑채의 소통을 위한 공간이다.
▲ 사랑채의 숨은 공간. 외부적으로는 단절되어 있는 안채와 사랑채의 소통을 위한 공간이다.

◇사랑채와 안채의 교류

조선시대 중기 이후의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원칙적으로 사랑채는 안채와 완전히 구분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완전한 단절은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그래서 집에서 가장 중요한 두 공간이 소통하는 장소가 필요했고 일두고택에서는 사랑채 한 곳에 특별한 곳을 만들었다. 사랑채는 사랑방 공간과 누마루 공간으로 크게 양분되는데 'ㄱ'자 형 공간의 모서리 부분에 외부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작은 방이 하나 있다. 이곳은 일부러 사랑채 쪽 출입문은 좁게 만들어 잘 드러나지 않게 했고 주된 출입문을 안채의 한구석으로 만들었다. 사랑채와 안채의 주인이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집안일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특별한 장치이다. 사회적 원칙과 실생활이 어떻게 생활공간에서 조화를 이루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이 기획은 LH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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