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위치에" "거창 내 이전"
2014년 이후 지역 여론 두 동강 주민투표 혼탁 과열 '시비 얼룩'
현재 장소로 결론
"관권선거" 일부 반발 여전 갈등 봉합·주민 화합 과제로

거창구치소 주민투표는 경남 도내에서 두 번째로 치러진 주민투표다. 지난 2012년 남해군에서 화력발전소 유치동의서 제출에 관한 주민투표가 치러져 발전소 유치가 무산된 바 있다. 전국에서는 아홉 번째 주민투표다. 지난 6년간 주민 간 갈등을 빚어온 거창구치소 신축 터 문제는 주민투표로 매듭짓게 됐다. 주민 다수가 '현재 장소 추진'을 선택했다. 주민투표 이후 그동안의 갈등을 극복하고 주민화합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업 유치에서 주민투표까지 = 거창군은 2011년 거창읍 상림리와 가지리 일대 '거창법조타운' 조성 사업을 밝혔다. 하지만 법조타운의 핵심 사업이 교정시설(구치소) 유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근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특히 2014년 당시 지방선거와 맞물려 구치소 터 이전 문제가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선거 이후 학부모가 중심이 돼 구치소 이전 운동이 본격적으로 불 붙었다. 한때 초등학생들 동시 등교거부 운동으로 정점을 찍었다. 학부모들은 지역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긴 싸움에 들어갔다. 이들은 "구치소 신축 지역이 학교와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곳"이라며 이전을 주장했다.

그러나 법무부와 거창군은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원안 고수를 강행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예산 승인 과정에서 '주민들 뜻을 물어 진행하라'는 부대의견을 달았다. 이에 2015년 시작된 공사는 1년 만인 2016년 11월부터 중단됐다.

2016년 거창군수 재선거에서는 구치소 터 이전을 공약했던 양동인 군수가 당선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 듯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법조타운 조성을 지지하는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역 발전을 위해서 원안대로 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관 갈등이 민민 갈등으로 양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양 군수는 갈등조정위원회를 구성해 문제 해결 방안으로 주민투표안을 제안했지만, '현재 장소 추진' 측의 거부로 물거품이 됐다.

지난해 민선 7기 지방선거에서 구인모 군수가 당선했다. 구 군수는 취임하자 마자 구치소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갈등이 또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갈등이 격화하던 중 지난해 11월 경남도가 중재에 나섰다. 이전과 원안 측 주민대표, 거창군수, 거창군의회 의장, 법무부가 참여하는 5자 협의체를 구성한 것. 5자 협의체는 몇차례 회의 끝에 갈등 해소 방법으로 주민 뜻을 직접 묻기로 했다. 그 방법으로 주민투표 안과 공론화위원회 안을 놓고 논의 끝에 지난 5월 16일 주민투표로 결정했다.

▲ 거창구치소 주민투표일이었던 지난 16일 거창군 거리에 '거창 내 이전'과 '현 위치 신축'을 주장하는 양측의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연합뉴스
▲ 거창구치소 주민투표일이었던 지난 16일 거창군 거리에 '거창 내 이전'과 '현 위치 신축'을 주장하는 양측의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연합뉴스

◇혼탁 과열, 관권선거 시비로 얼룩 = 어렵게 진행된 주민투표는 혼탁과 과열, 관권선거 시비 등 여러 오점을 남겼다. 주민투표 운동 과정에서 거짓 선전과 흑색 비방, 색깔론이 등장했고, 고소·고발 등 법적 분쟁으로 비화돼 주민투표 무용론까지 일었다.

'현재 장소 추진 측' 운동원은 SNS 홍보물을 통해 김경수 지사와 문재인 대통령·조국 법무부 장관의 합성사진과 함께 현 정권과 정치권을 빗대 수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거창 내 이전 찬성' 측은 "도를 넘는 흑색 비방과 거짓 선전으로 명분 없는 주민투표가 진행되고 있다"며 공무원과 마을이장, 투표운동원, 군수 등을 거창경찰서에 고발했다. '현재 장소 추진 찬성' 측도 상대 측 상임대표를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맞고발했다.

관권선거 시비는 투표일까지 논란으로 남았다. 거창군의회 박수자(자유한국당·비례) 의원이 투표 당일 오전 마을 이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투표를 독려하며 현재 장소 추진 찬성을 홍보했다.

이 밖에도 퇴직 공무원들의 주민투표운동도 도마에 올랐다. 이전 측은 "군의원을 비롯해 퇴직 공무원들이 행정동우회라는 이름으로 투표운동을 벌였다. 이는 충분히 행정조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관권선거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갈등 치유, 주민 화합 이끌어야 = 주민투표는 끝났지만, 일부 주민들은 관권선거로 말미암아 주민투표가 민심을 대변하지 못했다며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거창 내 이전 찬성' 측 신용균 상임대표는 "거창 주민투표는 거창군수의 노골적인 관권개입과 원안 측의 허위사실 유포, '실어나르기' 등 광범위하고 극심한 불법·부정행위가 난무하는 혼탁한 선거판이 되었다"며 "주민투표 불복은 아니지만 관권 부정 투표를 인정하지도 않겠다"고 밝혔다.

김태경(더불어민주당·비례) 군의원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하는 한편, 터 이전을 주장하던 주민 일부는 SNS에서 소청제도를 거론하는 등 당분간 주민투표 후유증이 계속될 전망이다. 주민 뜻을 직접 묻는 투표지만 이처럼 곳곳에 함정이 있었다.

구인모 군수는 주민투표 다음날 대군민담화문을 발표하며 "대립되었던 양측 힘을 모아 군정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겠다"고 했다. 갈등 치유와 주민화합이 중요하게 읽히는 지점이 왔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