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중 고향에 내 공간 마련 결심
카페 열어 문화 공간 활용 식어가는 도시 활기 우려
젊은 상인들과 축제 기획 문화 기득권에 쓴소리도

통영 삼문당 커피 컴퍼니에 대해 익히 들었다. 주인이 진주 극단 현장 출신 배우고, 강구안 뒷골목에서 4년가량 카페를 하다가 최근 통제영 부근으로 옮겼다고 했다. 실제로 만나보진 않았지만 통영인디페스티벌 주최 측 취재원으로 통화를 몇 번 했다. 통영인디페스티벌은 통영지역 카페·게스트하우스·책방 주인이 사비를 털어 기획한 복합문화축제다. 흥미로웠다. 출연진 섭외 능력과 홍보력, 기획력까지…. 그래서 알고 싶었다. 그 중심에 있는 윤덕현(44) 삼문당 커피 컴퍼니 대표에 대해 말이다.

▲ 윤덕현 통영 삼문당 커피 컴퍼니 대표. 그는 현재 통영을 사는 사람들 삶이 곧 도시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김민지 기자
▲ 윤덕현 통영 삼문당 커피 컴퍼니 대표. 그는 현재 통영을 사는 사람들 삶이 곧 도시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김민지 기자

◇사람들의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공간 = 북통영IC를 지나 통제영에 다다를 때쯤, 한 가게가 눈에 띄었다. 표구사를 카페로 바꾼 건물이었다. 1층에는 커피 로스팅 기계가 있고 2층이 커피 마시는 공간이다.

문을 연 순간 마음속으로 '우와∼'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투박한 액자에 걸린 한국화가 여럿 있어 시대극 속 엑스트라 배우가 된 것 같았다. 윤 대표는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삼문당 커피 컴퍼니는 삼문당표구사란 이름으로 표구업을 해오던 공간으로 통영의 예술가들이 드나들던 공방이었습니다. 그 공간의 의미를 이어받아 커피를 볶고 내리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으로 만들겠습니다.'

표구사 주인이 윤 대표 아버지다. 그의 아버지는 이곳에서 50년가량 표구사를 운영했고 올해부터 아들인 윤 대표가 카페를 하고 있다.

윤 대표는 배우 생활을 접고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사로 일했다. 그러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고향(통영)에서 내 공간을 만들고 싶다.' 커피가 그 매개체가 됐다. 2014년 강구안 뒷골목에 커피로스터스 수다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 올해 열린 제2회 통영인디페스티벌 공연. /이서후 기자
▲ 올해 열린 제2회 통영인디페스티벌 공연. /이서후 기자

-근데 왜 강구안 뒷골목에 카페를 차리신 거예요?

"우연히 지나가다가 점포세 나온 게 있길래 물 흘러가듯 계약을 하게 됐어요. 강구안은 메인 관광지인데 한 블록만 뒤로 가면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골목이에요. 저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어려운 골목에 있어도 그 공간이 가지는 힘이 있다고 믿었어요. (관광객보다는)지역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며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그런 공간 말이죠."

바(bar)·테이블 4개가 놓인 15평 공간에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무대 첫 주인공은 당시 '통영라이더'로 활동하던 현 통영시의회 이승민(더불어민주당·라선거구)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강구안 골목에서 인력거를 운전하며 길 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후 윤 대표와 인연을 맺은 통영국제음악제 프린지 공연 참가팀 등 인디신 아티스트들이 줄지어 카페에서 공연했다. 4년간 월 1회씩, 감동후불제로 진행했다.

-섭외는 어떻게 했어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제가 음악을 좋아해요. 팬심으로 SNS 메시지를 보내서 섭외를 하기도 하고 공연을 했던 분들과 연이 돼 다른 분을 소개해주기도 했죠."

그렇다고 아무나 섭외를 하지는 않았다.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자신의 앨범을 낸 음악가만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공연 외에도 책 <바람커피로드> 저자 이담 바리스타, 시인 심보선·이제니 등 북콘서트와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장석원)의 제안으로 저명한 과학자들이 두 달에 한 번씩 강연을 하는 과학콘서트도 열었다. 카페에는 윤 대표의 바람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꽃이 피었다.

◇"지속가능한 기획 만들고파" = 윤 대표는 지역사회 관심도 많다. 인근 가게 주인들과 100년 된 추용호 소반장의 공방 철거 위기, 강구안 개발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우리만의 목소리를 내고 연대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자 제안했고 지난 2018년 1월 '통로'가 탄생했다. 통로에는 거북선호텔, 봄날의책방, 고양이샘책방, 울라봉카페 등 자영업자와 외지인 등 3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대표는 윤 씨가 맡았다.

▲ 올해 열린 제2회 통영인디페스티벌 프로그램 중 하나. /이서후 기자
▲ 올해 열린 제2회 통영인디페스티벌 프로그램 중 하나. /이서후 기자

-어떤 일을 했나요?

"창립총회는 2018년에 했지만 2017년부터 활동했어요. 통영 강구안 개발 관련해서 '시민 의견 수렴해야'한다는 기자회견도 열고 지난해 윤이상 작곡가의 유해가 통영에 안장될 때 귀향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도 내걸었어요. 또 역사와 문화가치를 공부하고 알기 위해 시민들을 위한 강좌도 열고 있어요. 예를 들어 남해안별신굿 배우기, 근대문화유산 트레킹, 염장 조대용(국가무형문화재 제114호) 만나기 등이죠."

지난해 탄생한 통영인디페스티벌도 강구안 뒷골목 가게 주인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탄생했다. 윤 대표는 "강구안 동피랑·서피랑 주변 젊은 주인들이 통영 관광객이 줄고 도시의 활기가 식어간다는 걱정을 했고 통영이 더 젊어지고 즐거워질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페스티벌을 열기 위해 가게 주인들은 역할을 나누었다. 한 사람은 SNS를 관리하고 다른 한 사람은 사진찍고, 또 다른 사람은 포스터를 제작하고. 지난해 자비를 들여 무료로 진행했던 페스티벌은 올해 유료로 진행했다. 음악 공연은 물론 저자 강연, 체험, 전시까지 더해져 복합문화축제로 관객을 만났다.

페스티벌에 갔던 이서후 기자는 "기가 막힌 공연장을 찾아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명정(明井)이라고 불리는 쌍둥이 우물, 정당샘이었다. 윤 대표는 공연 전 동네 사람들에게 양해(소음문제 등)를 구하고 공연 후 남은 수익은 주민들에게 기부했다.

▲ 올해 열린 제2회 통영인디페스티벌 프로그램 중 하나. /이서후 기자
▲ 올해 열린 제2회 통영인디페스티벌 프로그램 중 하나. /이서후 기자

-공간 아이디어가 좋은 거 같아요.

"그렇죠. 사람들이 잘 찾지 않고 잘 모르는 공간이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된 것 같아요. 좋은 스토리텔링이 된 거죠. 사실 나름의 활동들이 하루아침에 번쩍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끼리 통영에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 재미난 일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다 보니 무언가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졌어요. 자연스럽게 말이죠."

-앞으로 계획이 궁금한데요.

"지역이 기득권이나 카르텔이 강하다 보니 젊은 친구나 후배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높아요. 저는 지역의 젊은 친구들이 무언가 할 수 있는 방향이나 일거리를 선배들이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영인디페스티벌도 그 예일 수 있어요. 젊은 친구나 후배들에게 이런 것도 하나의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알려주는 일 말이죠. 사람들은 통영의 가치에 대해 먹거리나 관광지, 예술가라고 하지만 전 현재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나 이야기가 지금 현재 충분히 일어나야 후대에 위대한 예술가가 탄생하고 문화유산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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