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기술 지니고도 혁신기술·제품 적어
새 세상 문 여는 '개념설계'역량 키우자

크고 작은 태풍이 지나가더니 완연한 가을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어느덧 들녘엔 가을 햇살에 잘 여문 나락(벼)의 황금 물결이 출렁이고 하늘은 그지없이 맑고 푸르다. 새삼스레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었느냐고 반문하듯이 작금에 우리 경제에 불어 닥친 위기상황과는 달리 얄미울(?) 정도로 평화롭다.

우리 경제는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는 거센 광풍에 맞닥뜨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이른바 G2 패권 전쟁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의 수출 규제는 우리 경제를 더욱 위협하고 있다. 부존자원이 부족하고 내수 시장이 작은 우리는 전적으로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다. 주요 수출 품목은 반도체·자동차·선박·기계·석유화학제품 등으로 중국·미국·일본 등이 주요 수출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제품을 제조하기 위한 핵심 자본재 수입도 이들 3개국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그러니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주창한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기 전인 2010년 중반만 하더라도 작금과 같은 곤혹스러운 현실과 마주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4차 산업혁명 이전 기술·시장의 트렌드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다. 비록 후발주자라 하더라도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부단히 노력한다면 선진기술에 대한 '캐치업(catch up)'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와해적 혁신기술이 지배하는 승자독식의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사물인터넷 등 이종 간의 기술이 융합하여 전혀 새로운 혁신기술과 서비스플랫폼으로 진화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혁신에서 경쟁국보다 상당히 뒤처진 상태다. 갈 길은 멀고 마음은 급한데 G2 패권 전쟁, 일본 수출규제, 혁신 부재로 작금의 한국경제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개념설계 역량 확보에 충실해야 한다. 그간 우리 경제는 산업화 과정에서 큰 비용과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 기초 원천 연구보다는 제품을 생산·판매하기 위한 응용기술에 집중해왔다. 이 때문에 실행력은 우수한데 개념설계의 필수 선행조건인 제조역량은 부족하다. 개념설계는 수많은 실패를 감내하며 장기간에 걸친 '축적의 시간'을 통해 체득되는 속성을 둔다. 우리가 세계 최초·최고 기술은 많을지라도, 세상을 변혁하는 혁신기술과 제품으로 발전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더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한 혁신을 뒤로 미룰 수 없다.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제도는 과감히 개선하고,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혁신기술을 발굴·육성해야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는 세계 최초로 차세대 정보통신기술(ICT)인 5G 상용화에 성공했다. 5G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적 요소들, 가령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의 초연결 지능형 네트워크가 가능하다. 이는 시공간 제약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 기회와 가치 창출을 견인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의 근간이다. 5G로 구현할 자율주행기술 등 다양한 서비스플랫폼기술을 주도하기 위한 제품규격과 세계표준을 선도해야 한다. 혁신은 적자생존 시대 필연적인 전략이다.

번영이냐 퇴보냐의 기로인 '티핑포인트' 시점이 그리 머지않았다. 머뭇거리다 실기(失期)할까 두렵다. '고진감래'라 했다. 역경에 맞서 혁신의 길로 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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