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경보에도 무리한 착륙 시도 반복
생명 위협받은 승객 항의 아랑곳 없어

22일 오전 6시 반쯤 기체의 강한 흔들림에 잠에서 깼다. 주말 등 짧은 기간을 이용해 밤·새벽에 출발·도착하는 '올빼미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전 3시 반께 타이베이에서 출발해 두 시간 뒤에 김해공항에 도착하는 제주항공 비행기였다. 출발할 때 우려했던 대로 태풍 '타파'가 북상하는 중이어서 난기류에 기체가 많이 흔들렸다. 예상보다 큰 강풍 탓에 착륙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기장은 안내방송을 통해 김포공항으로 간다고 했다. 예정 도착 시간보다 늦었지만 오전 7시 40분께 김포공항에 착륙한 나를 포함한 170여 명의 승객은 다음 안내방송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김포에서 김해공항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지? 뭘 타고 가지?' 고민하면서. 자연재해 때문이니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런데 잠시 후 안내 방송 내용은 당황스러웠다. 기장이 초과근무를 할 수 없는 규정에 따라 다른 기장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김해공항으로 회항한다고 했다. 일부 승객이 여기에서 내리겠다고 하자, 일부 하차는 안된다며 강력하게 제지했다. 또 다른 승객은 인터넷 검색으로 태풍 경로를 확인하고, 회항이 옳은 결정이냐고 따졌다. 승무원은 운영본부 결정이어서 자신들이 답하기는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게 두 시간여 동안 비행기 안에 갇혀 새로운 기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조금 더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베테랑이 오길 기대하며.

오전 9시 반께 항공기는 또다시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불안은 현실이 됐다. 아니 공포로 바뀌었다. 창가에 앉아 있던 나는 강풍과 비구름을 뚫고 몇 번의 곡예 끝에 김해공항 활주로가 보이자 한숨을 돌렸다. 그것도 잠시, 비행기가 다시 날아올랐다. 그리고 비구름 속을 헤맸다. 활주로를 향해 내려 꽂을 때마다 기체는 심하게 흔들렸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평소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로서는 곡예비행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온몸이 긴장으로 경직되고, 입안이 바짝 말랐다. 잠시나마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부 승객은 멀미로 구토를 해댔다. 결국 기장은 '몇차례 착륙을 시도했지만 불가능하다며 김포공항으로 다시 회항한다'고 안내방송을 했다.

하루에 두 번씩이나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승객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공항 티케팅에서부터 비행시간까지 12시간 가까이 승객들은 항공사에서 나눠주는 물 한 잔으로 마른 입만 적실 수밖에 없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항공사 직원들이 한 곳에 승객을 모았다. 전세버스가 준비됐으니 김해공항까지 타고 가면 된다고 했다.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난 승객들의 거센 항의에도 항공사 측은 무리한 착륙 시도와 회항 결정에 대한 사과나 설명은 없었다. 기후 사정 탓이고 운영본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해명뿐이었다.

이런 식이었구나. 망망대해나 끝을 알 수 없는 고공에서 선장이나 기장의 지시에 따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런 상황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