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희 주민자치회 고문 5년간 동네청소 "목표는 단합"
올해 전국주민자치대회 으뜸 선정·문학마을로 탈바꿈

2018년 개헌이 무산되면서 지방분권은 결정적 전환점을 맞을 기회를 잃었습니다. 지방사무 20%, 지방재정의 원천인 지방세 비중 20%의 2할 자치 시대를 마감할 기회였습니다. 이후 지방분권은 문재인 정부나 김경수 경남지사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한참 뒤로 밀렸습니다. 퇴보한 분권 흐름 속에서 문 정부나 지방분권주체 양측의 입맛에 맞는 양념이 '주민자치'였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주민자치회 시범운영'이라는 카드로 퇴보한 분권 흐름을 어쩌면 덮으려 했습니다. 전국의 지방분권운동 주체들은 "정부도 정당도 믿을 수 없다. 결국 지방분권을 이룰 주체는 국민들, 시민들뿐"이라며 주민자치에 주목했습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노산동주민자치회 이야기를 전하기 전에 먼저 소개할 이가 있습니다. 저는 단적으로 그를 '진짜배기 주민자치 일꾼'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일화부터 먼저 전합니다.

"저는 학교에서 체육교사 하고 퇴직했어요. 한때는 마라톤 감독으로 잘 나갔지. 그러다 보니 내가 많이 뻣뻣했어요. 퇴직하고 결혼상담소를 차렸는데, 이게 뻣뻣해서 일이 되나? 안 되겠다 싶어서 노산동 동네 청소를 시작했어요. 청소를 하면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히니까! 새벽마다 하루도 안 빠지고. 그때 썼던 쓰레기 집게가 아직도 있어요."

▲ 노산동주민자치회 안창희 고문이 5년 넘게 동네 청소를 할 때 썼던 쓰레기집게. 이 집게가 안 고문이 하고 있는 주민자치운동의 상징일지 모른다. /이일균 기자
▲ 노산동주민자치회 안창희 고문이 5년 넘게 동네 청소를 할 때 썼던 쓰레기집게. 이 집게가 안 고문이 하고 있는 주민자치운동의 상징일지 모른다. /이일균 기자

◇진짜배기 일꾼 안창희

지금은 이곳 주민자치회 고문 역할을 하고 있는 안창희(72) 전 주민자치위원장 이야기입니다.

그러고는 사무실 한쪽 쓰레기 집게를 찾아들고 밖으로 나가는 안 고문. 직접 청소 장면을 재연해주었습니다. 어쩌면 이 쓰레기 집게가 안 고문이 하고 있는 '주민자치운동'의 상징일지 모릅니다.

"그렇게 한 5년을 동네 청소를 하니까 주변에서 주민자치위원을 한번 해보래요. 그래서 2010년에 노산동 주민자치위원이 됐어요. 내가 또, 한번 하면 야무치게 하거든. 2014년부터는 위원장을 했어요. 위원장 하면서 마산합포구협의회 회장도 했고, 창원시협의회 회장도 했어요. 그 자격으로 경상남도주민자치회 공동회장도 됐고."

경남도 차원의 자치분권 행사나 주민자치 모임 때 그는 언제나 빠지지 않습니다.

항상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까칠맨'입니다.

지방자치를 이론으로 들이대는 이들은 그에게 덜미를 잡히기 일쑤입니다. 당장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도대체 그기 말이요 글이요? 현실에 안 맞는 그런 이야기는 마 집어치우소!"

애초에 그는 쓰레기 집게로 동네 구석구석을 청소하면서 주민자치 위원이 됐습니다. 주민들 삶의 현장에서 같이 숨 쉬면서 활동을 해온 거죠. 그런 그에게 현실과 맞지도 않는 붕 뜬 이론이 먹혀들 리 없습니다.

"얼마 전에 진주서 살인사건-방화·살인으로 5명 사망-이 있었잖아. 그거 아파트에 주민자치회가 잘 됐으면 그런 일 막을 수도 있어요. 서로 사정을 잘 알고, 가족처럼 지내고 그러면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없어. 그게 주민자치야!"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고민이 없지 않습니다.

"재미있냐고요? 별 재미도 없어. 지 돈만 자꾸 들어가. 그렇다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끝내면 뒷말도 나오고 점점 더 재미없어져. 근데 일이 자꾸 커지니까 계속 하는 거야. 이래저래 바쁜 것도 나쁘지 않고."

"나는 이거 해서 득볼 거 없어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그런데 뭔가를 기대하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아. 그라먼 안 돼!"

▲ 행정안전부 으뜸마을만들기 사업에 노산동은 '문학마을 만들기' 콘텐츠로 응모해 선정됐다. 맨앞줄 왼쪽에서 둘째가 서영권 주민자치회장. /노산동주민자치회
▲ 행정안전부 으뜸마을만들기 사업에 노산동은 '문학마을 만들기' 콘텐츠로 응모해 선정됐다. 맨앞줄 왼쪽에서 둘째가 서영권 주민자치회장. /노산동주민자치회

◇문학마을 만들기

그는 노산동주민자치위원회에서 일반 위원으로 3년, 위원장으로 4년 간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줄곧 주민들 단합에 최종 목표를 두었다"고 했습니다.

"뭐, 딴 게 있어요. 목적이 주민들 화합인데…. 행사를 할 때에는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끔 했어요. 5월에 노인잔치를 하고, 10월에 주민잔치를 할 때도 주변 식당이나 음식제공 업소가 골고루 나눠지게끔 했어. 그래야 득이 되고 불만이 안 생기지."

안창희 고문이 내세운 '단합 정신'은 최근에 새로 구성된 노산동주민자치회 서영권(56) 회장에게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노산동 강점이 위원들 간에 협동이 잘 된다는 겁니다. 참여가 잘 되는 거죠. 그래서 올해는 전국주민자치대회 으뜸마을에도 선정됐습니다."

행정안전부 주최 으뜸마을에 선정되면서 600만 원 정도의 사업비를 지원받았다는 것인데,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습니다.

"노산동을 문학마을로 만드는 사업입니다. 이은상 선생이 이곳 출신이고, 천상병 시인이 마산 출신입니다. 마산문학관도 이곳에 있고요. 그래서 벽화도 새로 그리고, 전시회도 자주 열자는 계획입니다."

문학마을 만들기 구상은 이곳 문창교회와 마산문학관 입구 안내판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마산문학관을 중심으로 꽃과 시인의 계단, 벽화거리와 골목, 추억의 달동네 같은 소재가 노산동 안에 큰 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속의 내력과 정취를 관광객들에게 전해줄 마을해설사 교육도 문학마을 만들기 사업의 핵심입니다.

이어 서영권 회장은 "창동과 오동동, 노산동으로 이어지는 도시재생사업 벨트도 활용할 만합니다. 문학마을 만들기를 잘 하면 그 역할을 충분히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서 회장 역시 '주민들 단합'으로 주민자치회 목표를 귀결지었습니다.

"내부 결속이 중요합니다. 결속을 다지는 데 신경을 쓰겠습니다."

"그래야 미술관이나 벽화사업 같은 문화사업이 잘 되겠지요. 예전에 학교가 많은 동네였는데, 지금은 건물도 없지만 하나하나 기억을 되살리고 관광자원화하겠습니다."

진동면과 함께 마산합포구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지로 선정된 노산동주민자치회는 전부 26명으로 위원이 구성됐습니다. 10명 정도가 그 전에 주민자치회 경험이 없는 분들이라는군요.

이들은 복지, 예산, 문화 등 3개 분과를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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