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이발사 일하는 장면
브람스 '헝가리 무곡 제5번'
집시풍 음악에 경쾌함 물씬

1889년 4월 16일과 4월 20일, 불과 4일의 간격을 두고 태어난 둘은 모두 역사에 기록되지만 인류에게 남긴 바는 너무도 다르다. 한 명은 인류에게 웃음과 희망을, 또 다른 이는 분열과 전쟁을. 바로 '찰리 채플린'과 '아돌프 히틀러'.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예술을 사랑했다는 공통점 외에는 결코 닮은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둘임에도 가끔씩 닮았단 생각을 했던 것은 아마도 그 독특한 콧수염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전 채플린은 그의 명작 <모던 타임스>(그의 마지막 무성영화다)를 통해 산업화로 인한 물질만능의 폐해와 인간성 상실을 우회적으로 고발하였다면 1940년 개봉한 그의 첫 유성영화 <위대한 독재자>는 공격의 대상이 직선적이며 명확하다. 개봉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시기, '순혈주의'라는 터무니없는 사상으로 유대인을 학살하고 전쟁을 모략하는 히틀러와 파시즘에 대한 정면 비판이 바로 이 영화에 있다. 1939년 폴란드를 침략하고 영국과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하였을 때 영화가 거의 완성되어 갈 무렵이었으니 채플린은 이러한 비극을 미리 예지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 토매니아 제국 유대인 이발사 '찰리'. /스틸컷
▲ 토매니아 제국 유대인 이발사 '찰리'. /스틸컷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전장, 토매니아제국의 유대인 이발사 '찰리'는 전투 중 부상당한 '슐츠' 장교를 도와 비행기를 타고 탈출하던 중 추락하게 된다. 이때의 일로 기억상실증이 되어 버린 그가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토매니아 제국에는 '힌켈'이라는 독재자가 나타나고 병원에서 탈출한 찰리는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는 채 자신의 이발소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와 행복한 찰리, 하지만 세상은 독재자의 유대인 탄압 정책으로 흉흉하다. 어느 날, 이발소 창문에 칠해진 '유대인'이라는 표지를 지우려다 쌍십자단의 돌격대원들과 몸싸움이 일어나고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의 순간, 우연히 지나던 슐츠 장교가 나타나 그를 구해준다. 슐츠의 적극적인 옹호에 돌격대원들은 이제 찰리를 함부로 건들 수 없게 되고 그는 같은 마을에 사는 씩씩한 유대인 처녀 한나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유대인을 향한 탄압도 잠잠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짧은 평화는 모두 군자금을 마련할 목적이었던 것. 결국 자금 마련이 뜻대로 되지 않은 힌켈은 유대인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하고 이에 항명하던 슐츠는 체포되어 결국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리고 찰리가 있는 곳으로 피신해 반격을 준비하지만 이 또한 실패. 이제 찰리와 슐츠는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한나와 제이클 가족은 오스테를리히로 피신을 하게 된다. 한편 세계정복을 꿈꾸는 힌켈은 이웃한 박테리아국의 독재자 '나폴리니'를 초청하여 힘겹게 평화협상을 맺지만 이 또한 침공을 위한 계략일 뿐, 곧 협상을 파기하고 한나가 피신해 있는 오스테를리히로 진군을 시작한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군복을 훔쳐 입고 수용소를 탈출한 슐츠와 찰리. 군인들은 그 둘을 잡기 위하여 혈안이 되고 힌켈과 찰리가 똑같이 생기는 통에 힌켈은 찰리로 오인되어 체포당하고 장교복을 입고 있던 찰리는 오히려 힌켈이 되어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이제 곧 있을 전쟁을 위한 연설을 하게 되는데….

▲ 토매니아 제국 독재자 '힌켈'. /스틸컷
▲ 토매니아 제국 독재자 '힌켈'. /스틸컷

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이야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두 장면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평화와 관용을 토로하는 연설,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이발사 찰리가 자리에 앉은 고객에게 면도를 하는 장면.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양 리듬에 따라 이리저리 오가며 흥겹게 때론 단호하게 움직이는 그의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보기에 즐겁다. '즐거운 시간, 음악과 함께 움직여 보세요'라는 멘트와 함께 흘러 나오던 이 곡은 바로 바흐, 베토벤과 더불어 그레이트 3B라 일컬어지는 작곡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중 제 5번. 헝가리 무곡은 총 4번에 걸쳐 출판된 21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그중 5번이 가장 유명하다. 그러하기에 브람스 레퍼토리의 연주회가 끝난 후 앙코르 곡은 십중팔구 이 곡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곡이 지닌 인기와 대중성으로 인하여 영화에도 자주 사용되었는데 얼핏 생각나는 장면을 언급해 보자면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2018)에서 장애가 있는 진태와 은퇴한 피아니스트 한가율이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장면, 그리고 영화 <과속스캔들>(2008)에서의 귀여운 아들이자 손자인 석현(황기동 분)이 유치원 선생님과 할아버지인 현수 앞에서 연주해 모두를 놀라게 하는 장면 등이 떠오른다.

1853년 당시 20세의 젊은 브람스는 인기 있던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와 연주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는 이 여정을 통해 많은 음악적 감흥을 받았으며 이러한 것들을 작품으로 체화한 것이 '헝가리 무곡'인 것이다. 브람스는 또한 이 여정을 통해 작품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의 친구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을 만났으며 평생토록 자신의 음악적 버팀목이자 지지자가 되어 주는 클라라와 슈만 또한 만나게 되니 자신의 미래가 좌우되는 운명적인 여행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헝가리 무곡'은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브람스로 하여금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는 작품 속에 녹아있는 집시음악적 감흥에 기인하였다 볼 수 있다. 당시 집시음악은 헝가리음악과 동일시되며 인기가 높았는데 이에 이러한 집시적 요소를 음악으로 녹여낸 작품들이 많이 탄생하게 된다. '헝가리 무곡'과 더불어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집시의 노래)' 등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또한 '헝가리 무곡'이 널리 보급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곡이 본래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연탄곡(1대의 피아노로 두 사람이 연주하는 곡)으로 작곡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곡의 초연 역시 브람스 자신과 당시 명성을 날리던 클라라 슈만의 피아노 연주로 이루어진다. 가정에 피아노가 널리 보급되던 시기, 가족과 나란히 앉아 함께 연주하는 보기만 해도 흐뭇한 광경을 그리며 너도나도 악보를 구해 들고 집으로 향했던 것이다. 누구나 들으면 어깨가 들썩여지는 명곡, 영화 속의 채플린처럼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여 본다면 무료했던 순간이 행복의 시간으로 변할지 모를 일이다. 비록 채플린처럼 집시의 피가 몸 속에 흐르진 않더라도 말이다.

▲ 쌍십자단이 유대인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수용소 모습.
▲ 쌍십자단이 유대인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수용소 모습.

영화 <킹스 스피치>(2010), 말더듬이 영국 왕의 어눌한 듯 신념 어린 대 독일 전쟁선포 연설은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의 선율과 함께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왔었다. 그리고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서의 연설 장면, 영화사에 길이 기억될 명 장면, 이제 채플린은 전쟁과 파시즘에 반대하며 인간으로서의 관용과 평화의 메시지를 남긴다. 그는 유성영화가 등장하자 영화는 끝났다며 더 이상 사람들은 상상하지 않을 거라 한탄했다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이 영화를 통하여 유성영화의 존재가치를 보여준 셈이니 천재인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일갈한 비판이 긴 시간이 흐른 현 시점에도 변함없이 유효하기에 마음이 무겁다. 그동안 뭘 했단 말인가?

"우린 남을 미워하거나 경멸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과 대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인생을 자유롭게 살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 방법을 잃고 말았습니다. 탐욕이 인간의 영혼을 중독시켰고 세계를 증오의 장벽으로 가로막았으며 불행과 죽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급속도로 산업 발전을 이루었지만 우린 자신에게 갇혀버리고 말았으며 그것을 도운 기계는 우리에게 결핍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식은 우리를 냉정하게 만들었으며 생각은 많이 하면서도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기계보다는 인권이 중요하고 지식보다는 친절과 관용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더욱 불행해질 것입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