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부친 보며 문화사업 관심
운명처럼 이끌린 통영 서피랑
99데이·음악회로 전국에 알려
문화기획자는 도시 핵심 인프라
행사 넘어 도시재생, 관광 접목
지역콘텐츠 전문가로 거듭나야

스스로를 '서피랑지기'라 하며 서피랑 알리기에 앞장섰던 이장원(42) 씨는 비영리예술단체 쌀롱드피랑 대표다. 쌀롱드피랑은 피랑(절벽)에서 열리는 예술시장이란 뜻으로 도시 전체를 갤러리로 만들겠다는 포부로 지난 2017년 만들어졌다.

그의 고향은 통영이 아니다. 진주에서 태어나 창원에서 자랐다. 하지만 지난 2015년 우연히 통영에 발을 내디디면서 정착하게 됐다. 운명처럼 다가온 도시에서 그는 복합문화감성공간 서피랑공작소를 만들고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자 재미난 일들을 기획했다.

▲ 쌀롱드피랑 대표 이장원 씨. 그는 통영에 잠자는 문화콘텐츠를 발굴하고 재구성해 제2의 통영 르네상스를 꿈꾼다. /김민지 기자
▲ 쌀롱드피랑 대표 이장원 씨. 그는 통영에 잠자는 문화콘텐츠를 발굴하고 재구성해 제2의 통영 르네상스를 꿈꾼다. /김민지 기자

◇예술가 피 물려받아 = 이 대표 아버지는 동양화가 고 도원 이창호 화백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예술의 길을 걷지 않길 바랐다. 창작의 고통, 경제적 어려움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이 대표가 지난 2010년 복합문화사업을 하는 도원아트존을 만들 때도 아버지의 반대가 컸다.

그는 "2006년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관광상품이 다 중국산인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며 "그래서 왜 한국적인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번쩍 '다포'가 떠올랐다. 아버지의 작품을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예술상품 수요도 적었고 샘플 만드는 데 돈도 많이 들었다. 그는 "삽질을 많이 했다"고 표현했다.

그의 아버지는 지난해 초 세상을 떠났다. 예술가인 아버지 덕분에 문화기획자 길을 걷게 된 이 대표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굳건히 다시 서는 계기가 됐다.

▲ 서피랑 99계단에서 매년 9월 9일 여는 '99데이' 행사를 앞두고 벽화를 그리고 있는 사람들. /이장원
▲ 서피랑 99계단에서 매년 9월 9일 여는 '99데이' 행사를 앞두고 벽화를 그리고 있는 사람들. /이장원

◇실험이 모여 결실로 = 그의 '삽질'은 그에게 교훈을 주었다. 문화기획을 하려면 스토리와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근거지에서 기반을 잘 다져야한다. 그는 새겼다. 그리고 그 꿈을 펼치기로 했다. 지난 2015년, 일곱 번의 출산을 한 친누나의 전화가 그를 통영으로 운명처럼 끌어당겼다.

이 대표는 "진해군항제에서 관광 활성화와 관련해 여러 활동을 하면서 이순신 장군 관련 스토리텔링을 진행했다. 그러다 이순신 장군의 얼과 혼의 정수가 있는 통영의 무한한 매력에 푹 빠져 버렸고 서피랑에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해 99계단 바로 옆 빈집에 서피랑공작소를 차렸다. 그는 '서피랑지기'를 자처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서피랑을 만나면 행복해집니다"라고 외쳤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끊임없이 홍보했다. 10월애 음악회, 99데이 행사 등도 기획했다. 그의 열정이 통했을까. 많은 사람이 서피랑을 찾았고 TV 프로그램 <이중섭의 눈>, <1박2일>, <우리가 계절이라면> 등 촬영지로 각광받았다.

이 대표는 회상했다. "통영사람들이 선술집에 사창까지 딸려 야마골이라 불렸던 서피랑이 뭐가 좋다고 저짓을 하고 있느냐는 눈초리를 보냈다. 이상한 놈, 미친 놈이라며 나댄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1년, 2년이 지나니까 서피랑이 변하는 게 보이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았다. 제가 다 했다고 할 순 없지만, 서피랑이 알려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3~5년 단축한 매개자 역할을 했다고 본다."

▲ 지난해 99데이날 서피랑공작소에서 강석주 통영시장,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이장원
▲ 지난해 99데이날 서피랑공작소에서 강석주 통영시장,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이장원

◇사회적 인식 바뀌어야 = 이 대표는 누구나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길 원했다. 그래서 서피랑공작소 외에도 테마가 있는 예술시장 쌀롱드피랑, 추억을 파는 가게 구구상회 등을 만들었다. 또한 지난해 서피랑은행나무길 차없는 거리행사(충렬사 가는 길)와 올해 제1회 금이네 문화쌀롱을 열었다.

그는 잠자고 있는 문화콘텐츠를 발굴, 재구성해 제2의 통영르네상스 불씨를 지피고 싶다. 그에겐 지금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 대표는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려면 우선 자기만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냉철하게 말했다. "돈도 안 되고 힘들다."

이 대표는 문화기획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우선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문화기획자, 서피랑지기, 문화관광해설사 등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봉사직으로 아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때론 백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회가 만들어낸 문화기획자에 대한 규범은 봉사다. 그래서 혼자 삽질하고, 도전하고, 상처받고 그렇다. 열정페이를 강조하기도 한다."

요즘 도시재생, 문화도시, 문화관광 등 많은 분야에서 문화기획자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정작 지자체 관계자들은 문화기획자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 지속가능한마을만들기를 위한 서피랑 행복장터를 운영하는 모습. /이장원
▲ 지속가능한마을만들기를 위한 서피랑 행복장터를 운영하는 모습. /이장원

이 대표는 "문화콘텐츠가 존재하는 영역에서 문화기획자는 핵심 인프라"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문화기획자 스스로 다독이는 말도 했다.

"많은 문화기획자가 교육이나 행사기획에 갇혀 있다. 개인적으로 기획자들이 도시재생, 문화관광 등으로 영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나 공모사업에 매달릴 순 없지 않은가. 문화기획자 스스로 지자체와 협의해 지역 콘텐츠를 발굴하고 알려야 한다."

내달 그의 제안에 따라 영남지역문화전문가협회에서 문화기획자 네트워킹과 역량강화를 위한 대회를 연다. 그의 바람이 현실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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