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수요 늘면서 인기 주춤
재배농가·면적도 점차 감소
소비자, 고급·블렌딩차에 관심
하동군 재배법 변화로 발맞춤

거리를 걷다가, 운전을 하다가 가장 쉽게 찾는 곳이 커피전문점이다. 2018년 한 해, 우리나라 국민 한 명이 마신 커피는 512잔이다. 커피시장 규모는 12조 원으로 성장했다. 커피 수요가 늘면서 녹차 소비는 감소했다. 하동군과 전남 보성군을 중심으로 국내 차(茶) 생산농가는 고령화에 인력난으로 크게 줄었고, 경영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그럼에도 커피시장의 성장은 둔화하고, 차 음료 저변이 확대되면서 차 시장은 성장세다. 특히 고급 차 수요가 늘고, '블렌딩(blending·혼합)차'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모두 4회에 걸쳐 침체기를 벗어난 국내 차 산업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한다.

▲ 야생차나무가 군락을 이룬 하동군의 재배지에서 차를 재배하는 모습.  /하동군
▲ 야생차나무가 군락을 이룬 하동군의 재배지에서 차를 재배하는 모습. /하동군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나는 하동군 화개면. 우리나라 차 첫 재배지다. 봄이면 십리 벚꽃길이 장관을 이루는 화개천 주변에는 녹차 밭이 어우러져 있다. 시원한 물소리와 짙푸른 차밭은 여름날 싱그러움을 더한다. 산비탈을 조금만 오르면 보성의 흔한 녹차 밭과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잘 깎여 일렬로 정돈된 녹차 나무가 아닌 야생차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차 재배 농가·면적 감소

하지만, 시선을 여기저기 돌리면 분명히 차밭인데 온통 잡초와 다른 나무로 뒤덮인 곳이 눈에 띈다. 그래도 사람의 발길이 닿았던 제법 널찍한 길이 있는데 잎이 다 자란 차나무가 방치돼 있다. 국내 굴지의 보성 녹차 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가 필요한 것처럼 녹차 밭이라고 하기 무색할 지경인 곳이 여럿 있다.

22년째 녹차를 재배하고 있다는 농민은 "노인들뿐이다. 잎을 수확할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 녹차 밭을 그냥 내버려 두는 사람들이 많다. 돈벌이도 시원찮다 보니 굳이 힘들게 따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한다.

농림축산식품부 특용작물 생산현황 통계자료를 보면 국내 차 재배면적과 생산량은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해 왔다. 이른바 '농약 녹차' 파동으로 녹차 안전성에 의혹이 생기면서 지난 2007년부터 재배면적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2000년 1530ha였던 재배면적은 2007년 3800ha로 정점을 찍은 후 2010년 3264ha로 감소했다. 이어 2015년 2768ha까지 줄었지만 2017년 다시 3051ha로 늘었다.

최근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전남 구례와 전북 정읍, 고창으로 재배지역이 확산한 가운데 우리나라 녹차 주산지는 하동과 보성, 제주다. 이곳이 전체 차 재배면적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지역별 재배면적(2017년)을 보면 전남이 1384ha로 가장 많고, 경남 989ha, 제주 592ha, 전북 62ha 순이다.

재배면적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차 생산량은 일정 수준을 유지했다. 2000년 1484t에서 2007년 3888t으로 늘었고, 이때부터 감소세를 보였지만 2010년 3586t, 2015년 3618t으로 큰 변동은 없었다. 2017년엔 4025t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2017년 차 재배 농가수는 경남(1667농가)과 전남(1651농가)이 비슷하다. 2010년 양 지역의 농가수는 각각 평균 2300가구였다. 고령화가 원인이다.

김태종 하동차생산자협의회 회장은 "차 생산농가 대부분 연령이 60대 이상이다. 4월 초부터 6월까지 수확을 해야 하는데 작업을 할 줄 아는 사람 수는 정해져 있어서 인력난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생산비 증가도 차 재배의 어려움이다. 김 회장은 "우전차를 수확하는데 한 사람이 하루에 잎을 딸 수 있는 게 1kg 정도로 인건비는 8만 원이다. 문제는 상품가격이 6만 원 정도밖에 안 돼서 남는 게 없다"면서 "무농약 재배라 차밭 관리에 많은 신경을 써 경영비가 계속 올라가는데 소비자들은 이 가격도 비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하동 화개악양농협이 녹차잎을 수매하는 모습.  /이영호 기자
▲ 하동 화개악양농협이 녹차잎을 수매하는 모습. /이영호 기자

◇차 소비 추세 변화와 시장

국내에서 생산되는 차의 유통구조를 보면 고급 차는 농가나 다원이 직접 가공한 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한다. 다른 제품은 농협이나 제다 업체가 생엽을 수매하고 가공해 도소매나 유통업체를 통해 판매하는 형태다. 생엽은 하동의 경우 주로 농협과 개인업체가 협의해서, 보성은 생산자조합이 수매한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독일, 미국, 일본의 차를 주로 수입하는데 품목은 70%가 녹차, 다음이 홍차다. 수입량은 증가 추세다.

2007년까지 국내 차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했다. 카테킨(catechin) 등 차에 함유된 각종 성분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1인 연간 차 소비량을 보면 2000년 31g에서 2007년엔 79g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이후 커피시장의 급성장에 밀려 감소세가 시작돼 2015년 74g으로 줄곧 정체된 상태다.

사무실에서 종이컵에 이른바 '현미 녹차' 티백을 우려 마시는 풍경은 점점 줄고 있다. 국내산 녹차의 소비는 잎차와 다기를 활용해 맛과 향을 향유하는 문화보다 손쉽게 침출해 마시는 형태로 빠르게 변했다. 무엇보다 말차(抹茶·가루차·Matcha)와 발효차를 비롯해 고급 차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티백도 점점 품질이 고급화되고, 특히 한 종류의 차를 마시는 데 그치지 않고 차에 다른 찻잎을 섞거나 향을 더하는 '블렌딩 차'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커피전문점들도 밀크티와 버블티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음료업계는 간편하게 들고 다니면서 마실 수 있는 캔이나 페트병 형태의 즉석 음료 즉, RTD(ready to drink) 차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여기에 다이어트와 미세먼지 배출에 효과가 있다는 기능성도 중요시한다.

▲ 전남 보성군이 지난해 출시한 블렌딩차 4종 '티퍼레이드'.  /보성군
▲ 전남 보성군이 지난해 출시한 블렌딩차 4종 '티퍼레이드'. /보성군

보성군은 지난해 블렌딩차 4종 '티 퍼레이드'를 출시했다. 유기농 녹차와 홍차를 베이스로 다양한 맛과 기능을 가진 제품이다. '2018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을 보면 다류 소매시장의 규모는 2014년 3453억 원에서 2017년 4167억 원으로 20.7% 증가했다.

국내 녹차의 수출 규모도 증가해 하동군은 2017년 미국 스타벅스 본사에 수출을 시작했다. '농약 녹차' 위기를 벗어나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한 덕분이다. 주문량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인기다. 군은 고급 차 생산을 위한 차광재배(봄에 새로 나는 찻잎을 차광막으로 태양을 가려 재배해 수확하는 방법) 면적을 늘리고 있다.

최진명 하동군 녹차산업담당은 "지난해 하동 야생차 농업이 세계농업유산에 등재된 후 외국 바이어들의 문의와 방문이 늘고 있는데 9개 나라, 10개 업체와 수출계약 체결을 협의 중이고, 올해는 125t에 30억 원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종철 하동녹차연구소장은 "국내 녹차산업은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중이다. 2008년부터 차산업이 쇠락해 10년 가까이 침체기를 겪다 이제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 "특히 가루 녹차시장은 현재 전 세계 5200억 원 수준으로 오는 2025년에는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시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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