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재래식 다원 대부분
품종 연구 등 지역별 제각각
수출·가격경쟁력 저하 야기
기계·자동화 시설 도입 필요
해외시장 마케팅 강화 시급

거리를 걷다가, 운전을 하다가 가장 쉽게 찾는 곳이 커피전문점이다. 2018년 한 해, 우리나라 국민 한 명이 마신 커피는 512잔이다. 커피시장 규모는 12조 원으로 성장했다. 커피 수요가 늘면서 녹차 소비는 감소했다. 경남 하동군과 전남 보성군을 중심으로 국내 차(茶) 생산농가는 고령화에 인력난으로 크게 줄었고, 경영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그럼에도 커피시장의 성장은 둔화하고, 차 음료 저변이 확대되면서 차 시장은 성장세다. 모두 4회에 걸쳐 침체기를 벗어난 국내 차 산업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한다.

◇녹차 재배기술 연구·보급 시급

지난해 하동 녹차는 잎이 어는 극심한 동해(凍害)를 입었다. 연둣빛 대신 적갈색이 더 짙은 녹차 밭이 흔했다. 최저기온이 영하 14℃까지 내려가는 강추위가 지속한 것이 원인이었다.

찻잎과 가지가 말라죽는 청고(靑枯), 잎이 붉게 말라죽는 적고(赤枯), 가지가 말라죽는 지고(枝枯) 현상이 나타났다. 녹차 생산량이 떨어지고 수확시기가 늦어졌다. 전체 녹차재배 면적 423㏊ 중 약 41.7%가 피해를 봤다. 80% 이상의 차 재배 농가에서 저온피해가 관측됐다. 가루 녹차 원료 수급은 물론 농가소득 감소로 이어졌다.

올해 하동군은 지난해 동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예방 대책을 마련해 시행했다. 왕겨와 톱밥을 농가에 보급해 녹차 밭에 토양 피복을 했다. 또 상습 동해 지역과 강풍 지역에 방풍망도 설치했다. 다행히 올해는 한파가 없어 지난해와 달리 저온 피해는 없었지만 여파가 남아 있다.

최진명 하동군 녹차산업담당은 "올해 아쉬운 점은 지난해 동해 탓에 녹차 나무의 수세가 회복이 안 된 상태에서 차광재배를 해 농가들이 재배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라며 "차 나무 재배 기술을 최대한 빨리 습득하고, 보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1년은 사천, 2013년은 전남 보성군의 녹차 농가도 저온 피해를 보았다. 녹차는 기온과 토질, 땅속의 수분 등이 맞아야 하는 등 재배가 까다로운 작물이다.

하지만, 국내 녹차 재배기술 보급은 지역별 연구기관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농촌진흥청과 전라남도농업기술원, (재)하동녹차연구소 등 따로따로이다. 우수품종 개발과 보급, 품질 고급화를 위한 재배기술 연구와 보급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김종철 하동녹차연구소장은 "미국 스타벅스가 하동 녹차를 선택한 건 유기농이고, 품질이 좋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출 확대의 관건은 이의제기가 걸리지 않도록 품질을 잘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농가가 고품질 차를 생산할 수 있도록 연구소가 전문기술로 유도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차광재배를 하는 하동군 화개면 녹차밭.  /이영호 기자
▲ 차광재배를 하는 하동군 화개면 녹차밭. /이영호 기자

◇소규모 차 재배에 영세성 극복해야

국내 차나무 재배농가 대부분은 소규모 영세경영이자 비기계화 형태다. 호당 평균 재배면적은 0.77㏊에 불과하다. 소규모 농가의 찻잎을 가공업체에서 수매해 가공·유통하는 형태로 농가별 품질이 달라 품질규격화에 한계가 있다. 기계·자동화 시설은 주산지 일부 규모가 큰 다원에서 할 뿐 그 외는 가내가공 수준이다. 또 대부분 재래종 다원으로 제다 시설이 낡고, 산간 경사지에 차밭이 많아 경쟁력 향상에 한계가 있다.

손연지 보성군 차원예유통과 차산업계장은 "보성도 하동과 마찬가지로 경사지 녹차 밭이 대부분으로 여름과 가을에 일부 채엽기를 이용할 뿐 손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재래종 차밭(80% 이상)은 생육 불균일 등으로 품질 규격화가 어렵고, 가공·유통관리시설 부족으로 규모화가 어려워 가격경쟁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 특히 노동력이 감소하고, 농가 노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수확작업 비용이 상승하는 추세다.

김 소장은 "하동 섬진강 쪽에 평탄화 작업을 해서 사천처럼 대단위 차밭을 조성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기계화를 해야 고품질의 차를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며 "하동 녹차산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기계화 녹차재배 기술을 도입하고 영세성 극복을 위한 시도를 한 곳은 사천이다. 사천은 전국 최대 규모의 평지 다원이다. 진양호 주변 사천시 곤명면 금성지구는 일본의 대규모 평지 차밭이 모델이다. 지난 2003년 150만 그루의 차나무를 심어 18만 1819㎡의 녹차관광단지를 조성했다.

농민들은 사천녹차영농조합을 만들어 기계화를 통한 생산비 절감으로 가격경쟁력을 갖췄고, 지방자치단체도 110억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녹차단지 조성과 가공공장 설치, 차문화센터 건립 등 각종 사업을 지원했다.

하지만, 녹차 소비 침체와 운영 주체 간 갈등, 보조금 횡령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애초 기대만큼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사천시와 영농조합법인의 소송까지 이어졌고, 지자체의 지원은 중단됐다.

정대정 사천시농업기술센터 기술지원과 원예특작팀장은 "기계화 재배로 경영 생산성은 높였지만 오랜 기간 영농법인 내부의 여러 가지 문제 등으로 사천녹차단지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보조금 관련 규정상 지원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 녹차채집기로 수확 중인 사천녹차단지.  /사천시
▲ 녹차채집기로 수확 중인 사천녹차단지. /사천시

◇수출·유통 경쟁력 강화 요구

차 수출입 현황을 볼 때 국내 차는 일본이나 중국산보다 품질과 가격 면에서 수출경쟁력이 취약하다. 중국의 지역 명차는 보통 녹차의 4.4배의 가격을 형성할 정도로 차별화돼 있다. 일본은 지난 1971년 홍차 수입 자유화 조치 때 홍차산업을 중단했다. 대신 녹차산업으로 전환해 수출이나 국내 소비 확대를 목표로 설정했으며, 포장작업기 등 기계화 재배에 성공했다. 우리나라는 일부 고급 차를 제외하고 포장이나 저장기술 등 일본산보다 품질 경쟁력이 낮아 수출확대가 어려운 실정이다.

수출 전문 유통·가공시설 부재와 수출 시장별 특성에 맞는 품목(홍차 등)의 다양화 등 국외 마케팅 부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보성군은 연간 1억 원에 불과한 수출물량 확대를 위해 미국 최대 규모의 인터넷 종합 쇼핑몰인 '아마존' 입점을 추진 중이다. 지난 6월 14일 보성군수를 비롯한 시장개척단이 미국 LA를 방문해 보성 차 수출을 위한 아마존 벤더 업체 크리에이시브(Kreassive LLC)와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보성군 양백승 차원예유통과 홍보판촉계장은 "아마존에 가루 녹차와 잎 녹차, 블렌딩차 등 다양한 제품을 입점시키려고 노력 중"이라며 "온라인으로 보성차를 세계에 알려 수출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통 측면에서도 대부분 소규모 유통으로 안전성과 품질에 대한 규격·규모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7년 이른바 '농약 녹차' 파동으로 안전성 논란 이후 친환경인증 등을 확대했지만 품질표시 등이 활성화되지 않아 눈에 띄는 소비자의 신뢰회복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지난 6월 14일 전남 보성군이 미국 LA를 방문해 아마존 벤더 업체 크리에이시브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는 모습.  /보성군
▲ 지난 6월 14일 전남 보성군이 미국 LA를 방문해 아마존 벤더 업체 크리에이시브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는 모습. /보성군

◇변하는 소비기호에 대응 시급

차는 이제 시간을 들여 맛과 향을 향유하는 소비문화가 아니다. 대신 티백처럼 손쉽게 침출해 마시는 소비 형태다.

'블렌딩(blending·혼합)차'와 가향차로, 또 페트병으로 쉽게 마시는 RTD(ready to drink) 차 제품으로 소비자의 취향은 다양하게 변화했지만 국내 차 제품은 이런 추세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녹차는 커피나 다른 대용차 등에 비해 제품 다양성이 낮다. 기능성 제품 개발 시도는 이어지고 있지만 성분 개발과 소재화가 연구 수준에 머물러 실제 성과는 아직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차를 대표하는 브랜드 제품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태종 하동차생산자협의회 회장은 "티백을 벗어나서 최근 변화하는 소비자 기호에 맞춰, 부족하지만 녹차 농가 자체도 블렌딩 차를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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