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내각의 '화이트 리스트' 한국 배제 결정이 낳은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 파급력이 사회 구석구석에 퍼진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움직임에까지 닿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밀양의 '재악산 명칭 복원 운동'이다.

지난달 25일 밀양시의회 임시회에서 장영우 의원은 자유발언을 통해 밀양과 울산시 경계에 있는 '천황산' 이름을 원래 이름인 '재악산'으로 복원할 것을 시에 촉구했다. 영남알프스로 명성이 높은 재악산은 일제강점기에 천황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해방 이후 1961년 정부가 재악산 제1봉을 천황산으로, 제2봉 수미봉을 재약산으로 바꾸는 등 두 개의 산 이름으로 고시결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향토사학자들을 중심으로 1995년 표충사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개수탑기비에 새겨진 '載岳山' 등 명칭 복원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문헌기록들이 증거로 제시되었고, 재악산 명칭 복원 운동도 수십 년째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런 노력 영향으로 1995년 경남도가 경상남도지명위원회를 개최하여 천황산을 재악산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다. 하지만 국토지리정보원 산하 국가지명위원회는 사실상 반대인 유보 결정을 내렸다. 당시 결정 과정에서 울산은 천황산이 맞다고 주장하며 지명 복원에 반대하였다. 가장 최근인 2015년에도 국가지명위원회는 천황산이 일제 잔재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들어 지명 복원을 수용하지 않았다. 재악산 산명 복원 운동과 관련하여 시민과 정부, 지방정부와 지방정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간 갈등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해방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가 바로잡을 기회를 놓친 것이 크게 아쉽다. 잘못 바뀐 것이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이름이 뿌리내리거나, 그것을 둘러싼 집단 간 이해관계가 생기면 원래대로 복원하기는 어려워진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개악된 지명은 도내에도 무수하다. 일제강점기는 오래전 사라졌지만 그 찌꺼기는 일상에 남아 질긴 목숨을 이어오고 있다. 경남도의 적극적인 발굴과 정부 협조가 절실하다. 일에 때가 있다면 지금이 적기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