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편승한 중국 자본 눈속임 마케팅에 혈안…매장·상품 한국제인 척

밥솥을 샀다. 쌀이 주식인 나라답게 용량과 가격대가 다양한 밥솥을 판매하고 있다. 고민 없이 '쿠쿠' 밥솥 앞으로 갔다. 이걸로 밥을 하면 '쿠쿠하세요~ 쿠쿠' 멜로디가 흐르며 마법처럼 차진 밥이 완성될 것만 같다. 쌀은 초밥용 쌀을 쓴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자포니카종 중 비교적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한국만큼 비싼 밥솥도 있지만 4개월만 쓰고 두고 갈 생각에 적당한 가격의 제품을 골랐다. 밥솥 정면에 스티커 한 장이 자랑스럽게 붙어 있다. 'It's Korea.' 둘러보니 샴푸, 마스크 팩 등에도 한글 또는 영어로 '한국(Korea)'이라 적혀있다.

마침 마스크 팩이 필요해 한글로 '한국 디자인'이라 적힌 제품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다시 봐도 한국인 취향이 아니다. 뒷면을 봤더니 역시나. 제조사 등이 콩알만 하게 적혔는데, 한자 일색이다.

베트남에서 한국 제품이 인기 있다는 방증이겠지. 중국산 마스크 팩을 조용히 내려놨다.

▲ 짝퉁 한국매장 무무소에서 판매하는 클렌징 브러시. 뜻을 알 수 없는 한글이 적혀 있다./김해수 기자
▲ 짝퉁 한국매장 무무소에서 판매하는 클렌징 브러시. 뜻을 알 수 없는 한글이 적혀 있다./김해수 기자

◇남다른 'K푸드' 사랑 = 남편이 베트남 팀원들과 회식을 하고 왔다. 분위기가 좋았나 보다. 표정이 좋다. "소맥을 타줬는데 엄~~청 좋아했어요"라고 한다. 내가 가르쳐준 거다. 아니나 다를까 나한테 배운 거라고 자랑(?)을 했단다. 남편 주변인들 사이 내 이미지 따위는 포기한 지 오래다. 끄응.

한국식 바비큐를 먹었다고 했다. 한국식 바비큐? 그게 뭐냐고 물으니 숯불에 삼겹살 따위를 구워 먹는 음식을 '한국식 바비큐(Korean BBQ)'라 한다고. 한국 식당이 아닌 베트남 식당에서 먹었다고 했다. 로컬 식당이라 가격이 비싸지 않고, 빈자리가 거의 없었는데 한국 사람은 남편뿐이었단다.

내가 국외에서 한식을 먹은 경험은 대개 이렇다. 터무니없이 비싸고 맛이 없지만 여기가 아니면 비슷한 음식도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울며 겨자 먹기로 먹었다. 이들 식당의 타깃은 한식이 절실한 한국 여행객이다. 그런데 관광지나 외국인 거주 지역도 아닌 곳에서 한식을 팔다니. 한식이 언제 이렇게 글로벌한 사랑을 받게 된 걸까.

그러고 보니 한국 프랜차이즈 식당도 간간이 보인다. 백 대표라 알려진 그분의 본가, 치킨 브랜드 돈치킨, 즉석 떡볶이 브랜드 두끼 등등. 현지 물가를 생각하면 비싼 편이지만 매장은 베트남인으로 가득하다.

지난 편에 소개한 현지 마트에서도 한식 인기가 단연 돋보였다. 이마트 고밥점 반찬 코너는 한국 반찬가게를 옮겨놓은 듯하다. 깍두기, 오이김치, 멸치볶음, 깻잎 장아찌 등을 판매하고 있다. 현지 손님이 대부분인데 말이다. 이마트에 현지 손님이 많은 이유는 '(8)이마트vs롯데마트'(7월 16일 자 20면 보도) 편을 참고하시길.

남편 회사에서는 점심 디저트로 '아침햇살'이 나온다고 했다. 마트에는 아침햇살 음료만 따로 진열해놓고 있다. 이건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광경인데, 놀랍다.

▲ 호찌민 빈컴 메가몰에 있는 짝퉁 한국매장 삼무(미니굿) 외관./김해수 기자
▲ 호찌민 빈컴 메가몰에 있는 짝퉁 한국매장 삼무(미니굿) 외관./김해수 기자

◇화장품 매장도 불티 = 한류 덕에 한국 이미지가 좋다는 분위기는 익히 알고 있었다. 한국 가요를 듣고, 한국어를 배우는 수준이겠거니 했지 한국 제품이 이렇게 인기 있을 줄은 몰랐다.

가장 두드러지는 제품군은 뭐니뭐니해도 화장품이다. 이니스프리, 더페이스샵, 라네즈, 스킨푸드, 설화수, 오휘 등등. 나열하기도 어렵다. 한국 화장품 브랜드 대부분이 베트남에 진출해 있다고 보면 된다.

빈컴센터, 다이아몬드플라자, 크레센트몰 등 대형 쇼핑몰마다 적어도 한 곳 이상은 입점해 있다. 마트 화장품 코너나 한국의 올리브영, 랄라블라와 같은 H&B(헬스앤뷰티)스토어 메인 자리도 한국 브랜드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ITC(International Trade Centre) 통계를 보면 2017년 기준 베트남 한국산 화장품 수입액이 2790만 달러(약 332억 원)다. 전체 수입 화장품에서 한국산 점유율이 13.9%로 태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K팝과 K드라마 인기로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영향이 크겠다. 여기에 더해 중국에서 성장이 주춤한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이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며 시너지를 냈을 터.

특히 이니스프리, 더페이스샵 등 중저가 로드숍 브랜드 매장은 현지 여성들로 북적인다. 합리적인 소비를 즐기는 젊은 세대들에게 딱이다.

최근에는 출판계도 한류를 타고 있나 보다. 베트남 국민서점 '파하사(FAHASA)' 앞에 한복을 입은 선간판이 있어 발길을 멈췄다. 거의 본능이다. 교보문고 전시 판매전 안내 문구가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두 서점은 지난해 업무협약을 맺고 활발한 교류 중이라고. 특히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 한국어 학습 교재가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기도 했단다.

▲ 짝퉁 한국매장 삼무(미니굿)에서 판매하는 비눗방울 장난감. 뜻을 알 수 없는 한글이 적혀 있다./김해수 기자
▲ 짝퉁 한국매장 삼무(미니굿)에서 판매하는 비눗방울 장난감. 뜻을 알 수 없는 한글이 적혀 있다./김해수 기자

◇짝퉁 한국매장 기승 = 현지에서는 '한국'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듯하다. 이렇다 보니 도를 넘은 기만적 '한류 마케팅'이 난무한다.

홀로 결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하지만 에너지가 폭발하는 만 0세 아기는 아침마다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나마 아파트 쇼핑몰이 놀이터 역할을 해준다. 아이를 안고 산책을 하다 한국 노래가 나와 돌아봤다. 한국에서는 금지곡이 되어버린 빅뱅의 주옥같은 히트곡들.

한글로 적힌 매장 이름이 '삼무(미니굿)'다. 매장에 들어서니 직원들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각종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가게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한국 매장이라 생각하며 둘러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제품에 적힌 한국어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이렇다. 플라스틱 도마를 설명하는 문구다. 맞혀보시길. '곰팡이가 번식하지 않는 박테리아'. 오타가 아니다. 오역이다.

또다른 생활용품점 '무무소' 역시 마찬가지다. 두 곳 모두 한국 매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 매장이다. 중국 자본이 한국 기업인 척하는 데는 한류에 편승하려는 노림수도 있지만 반중(反中) 감정을 의식한 부분도 있다.

막간 상식을 쌓아보자.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반중 감정이 큰 편이다. 베트남이 939년 독립왕조를 세우기 전까지 1000년 남짓 중국 지배를 받은 데다 1979년 중국과 국경 전쟁을 치른 탓에 감정의 골이 깊다. 현재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동남아시아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 강화 시도 등으로 두 나라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라고 언제까지 한류 덕을 볼 수 있을까. 최근 베트남에서는 결혼이주여성 폭행 사건으로 한국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공든 탑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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