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찾다 둔기 행패 부려도 귀가 조치
'여성이 안전한 경남'은 아직 멀기만 해

한밤중 주택가 골목 안. 차를 타고 가는데 한 남성이 둔기를 들고 차를 향해 걸어왔다. 인적이 드문 시간, 남성은 차를 겨냥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위협을 느낀 운전자는 차량을 후진하면서 경적을 울려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다. 차 안에는 30∼40대 여성 3명과 초등학생이 타고 있었다. 후진하면서 주차된 다른 차들과 부딪혔다. 공포에 질린 운전자에게 그 순간 다른 생각할 겨를은 없어 보였다.

지난 7일 자정께 사천시 한 주택가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차량 블랙박스가 공개되면서 드러났다. 운전자는 가해 남성의 눈에서 살기를 느꼈다고 했다. 그 남성은 경찰조사에서 "다툰 아내가 그 차에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경찰은 블랙박스를 확인하고 나서도 인적사항만 파악하고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블랙박스에 찍힌 동영상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그 남성은 과연 집으로 돌아가서 뭘 했을까?

밤늦게 운전해서 귀가할 일이 잦은 나도 골목주차를 하느라 동네를 몇 바퀴 돌 때가 있다. 가로등 빛이 희미한 어두운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오거나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괜히 긴장하게 된다. 그런데 영문도 모른 채 내 차를 향해 누군가가 위협을 가한다면? 후진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 차에는 블랙박스도 없다! 그 남성을 향해 돌진해야 할까? 그래서 가해자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과도한 정당방위로 역으로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경찰은 그 남성이 술에 취했다며 피해자보다 먼저 집으로 돌려보냈다. 다툰 아내를 찾아 둔기를 들고 집 밖까지 나와 행패를 부린 남성을 그대로 집에 돌려보내면? 그것도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상태가 아닌가? 그 집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을까?

가정폭력이 묻지마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찰의 상황 인식은 달랐다. 경찰은 당시 긴급체포에 결격사유가 있다고 판단해 돌려보냈다고 한다. 충격과 두려움에 떨던 피해자들을 붙잡아 조사하면서, 만취한 가해자는 의사소통이 안 된다며 귀가시킨 경찰 조처에 정말 문제가 없는 걸까? 가해자 아내가 데리고 갔기 때문에 괜찮다는 건가? 확실한 물증이 있는 가해자를 단순 주취자로 취급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피해자들이 경찰의 부실 대응에 반발하는 건 당연하다. 경찰은 사흘이 지나서야 가해자를 특수협박과 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비슷한 시기, 베트남 아내를 폭행한 30대 남편이 경찰에 구속됐다. 아내가 남편 몰래 찍은 동영상 속에서 폭행을 지켜보는 두 살배기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아내가 동영상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 남편은 제대로 처벌받을 수 있었을까?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해야만 보호받을 수 있는 걸까?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많은 여성이 이런 불안과 우려를 안고 산다. 여성이 안전한 경남,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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