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마을 사랑의 벽 기획·회색빛 골목 포토존 변신
프리마켓·지도 제작 배포·출판사 설립 등 활동 왕성
"지역 콘텐츠 발굴 뿌듯"문화기획자 자립 기반 건의

▲ 문화기획자 김화연 씨가 사랑의벽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민지 기자
▲ 문화기획자 김화연 씨가 사랑의벽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민지 기자

남해에서 태어난 김화연(34) 씨는 성인이 되면서 고향을 떠났다. 대학에서 패션마케팅을 전공했고 첫 회사에서 멀티플레이어로 열심히 일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한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는 성장하는데, 나는? 나도 성장하고 있는 걸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씨는 7년간 회사 생활을 마치고 서울서 남해로 돌아왔다. 그렇게 김 씨의 인생 2막이 펼쳐졌다. 문화기획자로서 말이다.

◇마을을 알리고자 내건 첫발 = 김 씨는 지난해 1월 요리사인 남동생과 함께 '절믄나메'를 열었다. 절믄나메는 젊은 남해를 소리 나는 대로 쓴 것으로 남해 로컬푸드로 만든 파스타를 판다.

"사실, 여기(남해읍)는 관광지가 아니라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곳이에요. 그래서 관광객을 타깃으로 음식점을 차려보기로 했죠. 때마침 청년창업거리도 생긴다고 했고요. 하지만 막상 관광객이 왔을 때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김 씨는 남해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과거 회사에서 상품을 기획하고 브랜딩했다면 이제는 고향에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알리는 전도사로 말이다.

첫 프로젝트는 남해읍 죽산마을 벽화기획 '사랑의벽'. 시작은 단순했다. 가게를 알리고 마을을 알리자는 마음에 그는 붓을 들었고 가게 외벽을 핑크색으로 칠했다.

"사실 옆집에 벽화가 있었어요. 어느 날 우연히 그 집 할머니께서 벽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병마로 떠나기 전 홀로 남을 할머니를 위해 직접 벽화를 그려줬다는 거예요. 남해극장 간판쟁이로 일했던 할아버지는 '나 없어도 슬퍼하지 말고 이쁜 것만 보고 살아'라고 벽화를 남기고 떠나셨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김 씨는 우리 동네 벽(약 400m)을 '사랑'이라는 테마로 꾸미고 싶었다. 남해 커뮤니티와 개인 SNS 계정에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벽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올렸고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2018년 7·8월 더운 여름날, 인근 초등학생과 미술학원 학생, 주민, 관광객까지 무려 300여 명이 함께했다. 재료비는 군청에서 지원해줬다. 회색빛 굽이진 골목길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담은 길로 바뀌었고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포토존이 된 것이다.

▲ 음식점 절믄나메 앞에 앉은 문화기획자 김화연 씨. /김민지 기자
▲ 음식점 절믄나메 앞에 앉은 문화기획자 김화연 씨. /김민지 기자

◇지역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 = 우연한 시작은 그를 열정적으로 만들었다. 뭔가 새롭고 뭔가 재미난 일들을 만들고 싶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기획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 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과정, 김해문화의전당 청년문화기획학교, 생활예술동호회매개자연수, 경상남도 도시재생뉴딜 코디네이터, 남해군 도시재생대학을 수료했다.

그리고 노크했다. "아난티 남해(숙박 시설)에 찾아가서 주말 프리마켓을 기획하고 싶다고 했어요. 남해에도 좋은 상점들이 많은데 관광객은 물론 군민들도 이를 잘 모르고 있거든요. 그래서 남해에서 활동하는 셀러(판매자)들에게 같이 하자고 했고 지난해 8월 처음 시작했죠." 남해군 아난티 남해 아주마켓은 분기별로 열리고 있다. 어린이 그림대회, 핼러윈 축제도 열었다.

김 씨는 남해의 발견이라는 출판사를 세웠다. 관광객들을 위한 지도 '남해 보물섬 핫플 어디까지 가봤니'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했다. 그는 또 나메지앵이라는 빈티지 옷을 팔고 남해의 맛과 멋을 알리는 패션잡지를 만들 계획이다.

"서울에 있었으면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해요. 서울에는 없는 지역의 가치를 발견하고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주위 분들에게 남해에서 이런 일을 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인정도 해주고요. 그리고 남해 사람들이 정이 없이 이야기하는 것 같은 데 사실 정도 많고요. 면 단위, 마을단위별로 보는 바다뷰도 정말 매력적이에요."

▲ 남해군 남해읍 죽산마을 사랑의벽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 /김화연
▲ 남해군 남해읍 죽산마을 사랑의벽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 /김화연

◇문화기획으로 먹고살 수 있었으면 = 이렇게 열정적인 그지만 나름 고민도 있다. 문화기획자라는 직업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김 씨는 "지역 문화의 역량을 키우고 사람들의 발길을 잇게 하는 문화기획자의 역할은 중요해요. 요즘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이죠. 하지만 지역에서 청년으로서 문화기획을 한다고 하면 아직도 저희를 풋내기로 보거나 봉사활동으로 보는 사람이 있어요. 청년 문화기획자가 자립할 수 있는 제도나 상황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지자체에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경남을 떠나려는 사람을 막기보다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이 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해요. 귀촌, 귀농정책은 있지만 귀향정책은 없지 않나요? 저는 무조건적인 지원을 바라는 건 아니에요. 청년들도 무조건적인 지원, 싫어요. 청년들의 시도가 공모 등 행정적인 틀 안에 있기보다는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펼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지난 5월 아난티 남해에서 열린 주말 프리마켓인 아주마켓. 당시 어린이날 기념 그림대회 모습. /김화연
▲ 지난 5월 아난티 남해에서 열린 주말 프리마켓인 아주마켓. 당시 어린이날 기념 그림대회 모습. /김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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