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예종 꾸려 창원 중심가서 잇단 기획·공연
지역 인디음악 페스티벌 경험도, 지원사업 아닌 '재정 독립'목표

지역에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합니다. 그 문화를 발굴하고 활성화하는 문화기획자의 역할은 중요하죠. 지역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되고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등 각 지역문화재단에서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펼쳐 문화기획자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들을 만나봅니다.

그를 오래전부터 봐왔다. 정확하게 첫 만남은 기억나지 않지만 문화 행사 때 종종 마주했다. 그는 기타를 메고 연주를 하고 있었다. 꽤 진지해 보였다. 말을 안 섞어본 상태라 무대 밖에서도 그런 모습이겠거니 생각했다. 몇 년 뒤 그를 다시 만났다. 문화기획자로, 풀뿌리문화공동체 예종 대표로 말이다. "저 혹시 기억하세요?"라고 물으니 "낯이 익은데…. 제가 사람 얼굴을 잘 기억 못 해요"라고 머쓱한 듯 웃는다. 이승철(34) 씨와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했다. 이후 사진을 찍었다. "굳이 딱딱하게 있을 필요 없어요. 대표님이 하고 싶은 포즈 마음껏 하세요"라고 주문하니 익살스러운 표정을 한다. 그는 말했다. "이게 나예요."

▲ 문화기획자이자 예종 대표인 이승철 씨가 창원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지 기자
▲ 문화기획자이자 예종 대표인 이승철 씨가 창원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지 기자

◇청년 힐링 공간 만들어 = 이 씨 전공은 환경공학이다. 통기타를 즐겨 치던 그는 대학시절 밴드 동아리 땅사랑 멤버였다. 동아리연합회 회장을 하면서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고 졸업 후 시민사회단체 경남청년회 활동을 했다.(경남청년회는 2016년 없어졌다.)

이 씨는 청년문제에 관심이 많다. 경남청년회에 몸담으면서 청년축제를 기획했고 인디밴드 '없는 살림에' 활동 당시 비정규직, 실업 문제를 노래했다.

지난 2013년 그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해 1월 서울 성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청년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그 전해에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청년들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힐링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버스킹과 프리마켓을 접목한 '청춘락서'를 선보이게 됐죠."

2013년 5월 창원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시작됐다. 경남청년회 청년문화기획단과 예종이 공동주최해 다양한 기획 공연과 전시, 이벤트를 열었다. 유흥과 소비의 거리인 상남동에서 청년 문화가 조금씩 꽃을 피웠다. 자연스레 청년 예술가와 시민들이 만나는 자생적 예술문화 축제로 커졌다.

"청년이 스트레스를 풀고 놀 공간이 없었어요. 상남동 분수광장에 청년들이 놀 곳을 만들고 그곳에 문화를 심고 싶었어요. 초기 예산이 많지 않았고 홍보가 부족했지만 계속 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알아주더라고요. 공연하는 분, 프리마켓 판매자분, 20~30대 관객 반응이 좋았습니다." 청춘락서는 순수회비로 3년간 매달 계속됐다.

▲ 문화기획자이자 예종 대표인 이승철 씨. /김민지 기자
▲ 문화기획자이자 예종 대표인 이승철 씨. /김민지 기자

◇자생력 갖춘 예종 되고 싶어 = "경남청년회와 창원여성회에 문화팀이 각각 있어요. 사회 변혁을 꿈꾸면서 생계는 유지해야 하고…. 같이 힘을 모아 문화사업을 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예종을 만들었습니다." 예종은 2012년 12월 탄생했다. 사회적기업 인증기업으로 '예술의 씨앗'을 뜻한다. 인원은 8명으로 올해부터 이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다양한 문화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한다.

경남지역 최초 인디음악 페스티벌 '여기 스테이지'는 2014년 시작했다. 올해로 4회째. 청년문화기획자와 지역뮤지션이 자생적으로 함께 만든 축제다. "2011년도부터 지역에서 음악을 했고 그때 인디밴드가 처음 생겼습니다. 없는 살림에, 곰치, 셀피시, 엉클밥 등이 자작곡을 만들어 활동을 했지만 우리만의 무대는 없었죠. 그래서 만들었습니다.(웃음)" 사람들은 창원 용지문화공원에서 경남지역 인디밴드 음악을 들었고 즐겼다. 신진 밴드에겐 그들의 음악을 알리는 장이 됐다.

그가 펼친 모든 사업이 잘된 건 아니었다. 실패도 있었다.

지난 2015년 열린 경남멘토콘서트 청춘사용설명서다. 경남 첫 멘토콘서트로 유료 공연(현매 3만 원)이었다. 당시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연애 칼럼니스트 겸 방송인 곽정은, 가수 이지형이 출연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많은 단체들이 지원사업에 의존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정작 자신들이 하고 싶은 걸 못하죠. 그때 우리는 문화예술 공연을 유료로 진행해보자고 야심 차게 준비를 했는데 시기상조였던 것 같아요. 너무 망해버렸죠.(웃음) 끝까지 표를 안 뿌리려고 했는데 한 선배가 일단 사람이 많이 와야 한다며 거의 끝에 표를 공짜로 뿌렸어요."

그는 지금도 고민한다. 지원사업을 하면 거기에 묻혀 자립도가 떨어진다. 그러니 재정적 독립을 하자고.

▲ 올해 열린 여기 스테이지에서 이촌철과 인마들이란 이름으로 공연한 이승철(맨 왼쪽) 씨. /김광신
▲ 올해 열린 여기 스테이지에서 이촌철과 인마들이란 이름으로 공연한 이승철(맨 왼쪽) 씨. /김광신

◇지역, 한계 아닌 기회 = 과거엔 '지역'이 한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면서 "내가 잘하면 다 된다"고 마음이 바뀌었다.

"동네라서 안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원래 안돼'라고 생각하거든요. 뭘 하고 실패하면 결론은 동네가 이래서 안 되는 거라고 말해요. 제 생각엔 그것보다는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 힙(hip)하게 할 수 있는 아이템은 뭘까, 내가 모르는 그 무언가(성공 비결)는 뭘까 고민하는 게 더 나아요. 보통 동네에서 안 되면 포기하거나 서울 가는데 서울에서도 성공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서울 간다고 더 신나는 것도 아니고요."

흙 밭에도 진주는 있다. 그는 어떤 공연이나 축제를 기획해서 사람들에게 "가고 싶냐, 안 가고 싶냐"라고 물었을 때 문화기획자는 가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함안 악양생태공원의 핑크뮬리가 인스타그램에서 대박을 쳤어요. 제가 함안을 직접 가봤는데 진짜 사람 많고 인스타 감성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존이 있더라고요. 어떤 촌구석이든 매력이 있으면 사람들은 갑니다. 친구들과 동생, 형들하고 내면적으로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외형적으로는 어떻게 예쁘게 꾸밀 것인가 이야기를 나눠요."

그는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언젠간 유료로 록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싶지만 당분간 그는 현재에 집중하고 싶다.

그는 올해 예종 대표로 취임하면서 목표를 밝혔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기보다는 지금 하는 걸 잘하고 싶다. 기존에 하는 걸 잘하고 강화하다보면 길은 열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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