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 아버지 떠올리는 시간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실 그 모습

제자 4명과 팀을 이루어서 한 번 방문할 때마다 9가구의 혼자 사는 어르신 가정방문 봉사활동을 한 지도 벌써 1년이 되었다. 수업 후에 일정한 요일과 시간대에 생필품을 들고 찾아뵈면서 건강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현재 살아가는 이야기 등을 나눈다. 이제는 학생들도 어르신들의 먼 옛날이야기이지만 삶의 고단함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오신 나름의 경험담들을 생생하게 듣고, 집을 나설 때가 되면 두 손을 꼭 잡아드리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한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이제는 죽어야지 하면서도 "어떤 손자 손녀가 이렇게 찾아와서 말을 들어주겠느냐", "늙고 가진 것 없고 서러운 우리를 누가 들여다보겠느냐"며 연방 눈물을 훔친다.

1년의 세월 속에서 9가구 어르신들은 그저 하나같이 누군가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한 어르신은 허리가 기역자 모양으로 굽어서 세탁기에 빨래를 넣을 수가 없어 손으로 휙 비벼서 그럭저럭 살아간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올 시간이 되면 나와 계시고 간다고 집을 나서면 꼭 대문까지 나와서 바라보신다. 그 눈빛은 먼 옛날에 내 어머니가 집에 잠시 들렀다가 떠나는 딸을 바라보는 그 애틋함이 느껴져서 마음이 먹먹해진다. 또 어떤 어르신은 지금은 내가 이렇게 살아도 젊었을 적에 나도 한 가닥 했다는 이야기를 갈 때마다 하신다. 병 때문에 삶의 낙이 없어서 죽고 싶다고 하면서도 우리가 배고플까 봐 올 시간에 맞추어서 따뜻한 삶은 계란을 내오시고 갈 때 되면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얼마 전에는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셨다. 우리가 올 때쯤 되면 늘 현관문을 열어두고 귀가 어두워서 의사소통은 잘 안되었지만 그저 우리의 손을 꼭 잡으면서 고맙다고 연방 눈물을 글썽거리던 어르신이었는데 우리가 방문하기 하루 전날 돌아가셨다. 어제까지도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 눈빛이 생각나서 밤새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1년 동안 방문하면서 어르신들의 애환을 알게 되었다. 부모보다 자식이 앞서서 죽은 이야기, 손자의 자살 이야기, 이웃이 처마 밑의 집을 내어줘서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 매일 죽음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들….

제자들은 1년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안 하던 전화를 하게 되었으며 이제까지 내 생활에 불만이 많았는데 사소한 것에 감사해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하나같이 어르신 공경을 모른다고 하지만 우리 학생들의 그 선한 마음과 진실함이 오롯이 느껴졌다.

나 또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친정엄마 생각에 어르신의 집에 가면 많은 이야기를 들어드린다. 이분들의 고독함이 우리 모두의 미래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눈가에 눈물이 드리워지며 손을 꼭 잡아드리게 된다. 우리의 방문이 잠깐이나마 이 어르신들에게 그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헛되지 않았고 그래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잡아 주며 함께 눈빛을 나눌 수 있었음에 연약하지 않게 삶을 지탱해주기를 희망한다.

오늘 또 방문하기 하루 전날 전화를 드린다. "어르신 내일 우리 학생들이랑 가는 날이에요." "아이고 또 이렇게 찾아와준다고!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는디. 내일 조심해서 오시요…." 어김없이 우리가 들어오도록 문은 열려있고 문가에서 또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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