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창조하고 마음 움직였나
문화·독서·탐구·진로교육으로

영화 <기생충>을 보고 두 가지 물음이 생겼다. 하나는 <기생충>이 어떻게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또 다른 하나는 감독은 어떻게 <기생충>을 창조할 생각을 했을까? 며칠 동안 여러 생각했지만 좀처럼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선생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훅 밀려왔다. 이어서 교육에 대한 고민과 <기생충>이 던진 질문 사이에서 묘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기생충>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와 극복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르는 프랑스 고전문학이 있었다. <레 미제라블>.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영화 저변에 깔린 음산함은 같았다. <기생충>이 프랑스 문화를 깔고 있었기 때문에 문화적 동질감, 즉 문화적으로 거북함을 일으키지 않은 문화 수용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이다.

영어 교육을 말하고 싶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나? 지금도 얼마나 영어에 매진하고 있나? 수능에서 영어 비중이 얼마나 높은가? 그러면 영어를 하는 만큼 영어 문화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영어를 수능에 포함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영어 문화권을 이해하는 교육이 옳은가? 결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전 읽기와 함께 생활하면서 체득하는 방법이다. 학교의 영어 교육은 수능이 아닌 세계인으로서의 소양을 쌓기 위한 방법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정서를 제대로 자막으로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만약에 기생충 영화의 자막을 번역 앱이나 구글 번역기로 했다면 결과가 어떠했을까?

독서교육을 말하고 싶다. 온갖 기법이 난무하는 독서보다 뿌리 깊은 독서로 평생 독서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이견을 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면 주변을 둘러보라. 독서기법이 독서교육이 된 현실이 안타깝다. 책을 읽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어른이 먼저 책을 읽어라. 평생 읽어라. 그러면 아이들도 평생 따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세계인과 자유롭게 소통한다. 감독은 <기생충>을 어떻게 창조할 생각을 했을까? 자본주의 폐단, 부의 편중과 부에 의한 학력의 세습, 이로 인한 근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타파되어야 할, 신 인간 계급을 어떻게 주거 공간의 물리적인 높이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프로젝트 학습을 말하고 싶다. 교과의 여러 내용을 한꺼번에 가르치는 통합에 머무르고 있는가? 지식과 지혜를 탐구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가? 삶과 앎이 하나 되는 교육을 주장하면서 우리 삶이 직유와 은유로만 수업에 머무르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삶의 문제를 앎으로 해결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진로교육을 말하고 싶다. 직업을 얻기 위한 진로교육인가? 자아실현을 위한 진로교육인가? 특성화된 학교는 직업을 얻기 위한 학교인가? 저마다의 꿈과 끼로 자아실현을 위한 학교인가?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한 대학 진학인가? 직업을 얻기 위한 진학인가?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얼마만큼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소리라고 빈정거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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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각자의 마음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씁쓸한 질문에 냉소적 미소로 답을 하고 말 것인지 성장을 위한 실천의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는 각자의 자유로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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