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바라보는 태극기
큰 희생을 통해 만들어진 현재

태양이 점점 더 뜨거워진다. 공기가 공중에서 아른거린다. 미세먼지를 넘어 30도는 기본인 6월의 기온.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절반은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동네 놀이터에 각동 어린이들이 모인다.

아이들은 서로의 나이를 물으며 나름의 위계와 질서를 만들고 부모들은 아이들과 놀이시간 협상을 위해 이 지역 놀이터는 북적북적 소란스럽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한 아이가 놀이터로 달려오며 노래를 부른다. 그 아이의 손엔 태극기가 들려 있다. 순간 누구랄 것도 없이 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달리기 대회가 펼쳐진다. 태극기를 든 아이를 선두로 20여 명의 아이들이 달린다.

좁은 놀이터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아이들은 지치지 않고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우리나라를 지켜주다가 돌아가신 사람들을 위한 날이에요." 한 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운 한마디를 작은 입을 통해 전해준다. 그리고 달리기 무리에 다시 합류한다.

조그만 아이를 통해 다시 생각하는 역사. 그날, 6월의 하늘은 어땠을까.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인가, 선언적 종전과 이 아이들과 함께 평화를 이야기하는 날은 언제가 될까.

잃어버린 전쟁인 6·25한국전쟁에 할아버지는 참전하셨다. 그리고 불과 몇 해 전 돌아가셨다.

그날을 겪으신 어르신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계신다. 살아있는 역사가 기록으로만 남아 그날을 기억하는 일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우리 주변 각 세대가 겪은 굵은 시대상들이 보고서나 책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쉼 없이 뛰어다니고 있다. 핸드폰을 통해 그날의 기록을 본다. 참혹한 흑백사진들이 검색된다.

한 아이가 "군인아저씨다. 누구예요?"라고 묻는다. "우리나라를 지켜주다가 돌아가신 분 사진이야"라고 유치원 선생님처럼 대답했다.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이분들 덕분이라는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순간 사이렌이 울린다.

독립운동과 6·25한국전쟁, 3·15의거,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항쟁, 6월 항쟁,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겪은 시대상과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겪은 시대상들이 딸과 아들 세대에게 밀물처럼 밀려든다.

100년의 세월이 굽이굽이 돌아 찾아온다. 그 큰 희생을 통해 만들어진 현재다.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이해해야 한다.

1분간 울린 사이렌은 길었다. 무슨 소린지 호기심에 달리던 아이들도 멈추고 작은 동네 놀이터가 순간 조용해졌다. 두 눈감고 손 모아 고갤 숙여 잠시나마 그 날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눈을 뜨자 언제 그랬듯이 소란은 계속되었다.

자유·정의·민주·평화라는 단어 속에 그날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서 한 분 한 분 희생들이 연결되어 그 말들을 이해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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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다. 정신은 살아있다. 세대를 넘어 전해진다. 부모와 손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잘 가라는 인사를 전하며, 묵묵하게 지켜온 그날들의 영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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