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사과 끝내 못 받은 채…유족·시민단체 배웅 속 영결식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 영결식이 3일 태풍 영향으로 비가 내리는 가운데 통영시 충무실내체육관에서 엄수됐다.

영결식에 앞서 이날 오전 9시 경남도립통영노인전문병원에서 발인식이 열렸다. 발인식에는 유족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 30여 명이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발인제를 마친 뒤 운구는 충무실내체육관 시민분향소로 이동했다. 분향소에서 열린 영결식에서는 조사와 조시 낭송, 시조창 추모 공연, 유족 인사, 헌화 등이 진행됐다.

할머니를 돌봤던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통영·거제시민모임 송도자 대표는 "할머니는 수요시위와 나고야·오사카 증언집회, 국내외 인터뷰, 생존 피해자 발언 등 그 발걸음들로 수많은 역사를 쓰셨다"고 애도했다.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 영결식에서 유족이 할머니 영정을 들고 있다. /통영시

실제 할머니는 남다른 삶을 살았다.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손가락질 당했고 생선 장수였지만 재산 대부분을 통영 여고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거나 위안부 문제를 위해 썼다. 통영에서 위안부 관련 기자회견이 열릴 때마다 가장 앞에 나섰으며, 희미한 목소리일지라도 "일본의 사죄를…"이란 말을 잊지 않았다.

할머니가 끌려갔던 강구안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노제는 비로 말미암아 취소됐다.

영결식 후 할머니는 통영시립화장장에서 화장됐다. 유해는 통영시 용남면에 있는 두타사에 안치했다.

김복득 할머니는 노환으로 지난 1일 새벽 4시 향년 101세로 타계했다. 생존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두 번째 고령자였던 할머니는 4년여를 병원에서 생활해왔다. 그동안 "너희는 글을 많이 배워라"며 재산 대부분을 내놓고 통영 여고생들을 어루만지던 그 손을 그 새벽 결국 떨구고 말았다.

김 할머니는 생전 "죽기 전에 일본정부로부터 사죄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생에는 족두리 쓰고 시집가서 남들처럼 알콩달콩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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