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관리하듯 자신의 기분도 관리해야 합니다"

처음 방문한 국립부곡병원은 조금 의외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정신병원'이라는 선입견에 폐쇄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를 떠올렸지만, 늦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녹음 짙은 공간에 환자들이 여유롭게 산책하고 있었다. 몇 년 전 <주식회사 마음의 쉼터>라는 소설책을 내기도 했던 정신과 전문의 이영렬(55) 국립부곡병원장을 별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국민 누구나 이용 가능한 국립병원

국립부곡병원은 일반인에게 대중적으로 알려진 병원은 아니다. 정신질환자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인데다 '국립'인 탓에 장기입원환자만 치료할 것이라거나 저소득층 등 특정인만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이 병원장과 건강관리 요령이나 개인 신상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전에 병원에 대한 질문을 먼저 했다.

이 병원장은 이를 '오해'라고 설명했다.

"가난한 사람이나 정신과 중에서도 특수 질환만 다룰 것이라는 오해가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정신병원과 같습니다. 운영주체가 보건복지부일 뿐이죠."

예전에는 국립정신병원이 만성환자와 극빈 환자 진료를 중심으로 했지만, 지금은 일반 국민 대상 정신건강 지원서비스를 하는 것으로 기능이 전환됐다고 했다.

"일반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습니다. 특진료와 같은 비급여 서비스가 거의 없으며, 반대로 의료비 감면도 없습니다. 수지타산을 맞춰야 하는 일반 병원에 비해 우리는 시설·공간 여유도 상대적으로 많다고 할 수 있죠. 이용객 제한도 없어요.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든 진료받으러 올 수 있습니다. 교통 여건이 좋지 않지만 외래 환자도 꽤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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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렬 국립부곡병원장./김구연 기자

경남 창녕군 부곡면에 있는 국립부곡병원은 보건복지부 소속 병원으로 정신질환자 치료·재활을 위해 설립됐다.

마약중독 치료를 위한 병상이 일반 병상과 분리돼 50병상 있고, 사법 병동이 50병상 있다. 나머지 일반 환자를 위한 병상이 300병상가량 된다.

약물중독 진료소 운영, 경남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수탁·운영 등 전문적인 공공정신보건서비스 제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신건강 관심 커 의사 길로

이 병원장은 정신과 전문의로, 중앙대학교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경영 고위과정을 수료했다. 국립공주병원 병원장, 국립서울병원 의료부장을 거쳐 2014년 8월 국립부곡병원 병원장으로 취임했으며, 현재 국립부곡법무병원장, 경남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장을 겸직하고 있다. 대한법정신의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이 병원장은 군인이 꿈이었다. 직업군인인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3 때 꿈을 바꾸었다. 정신건강에 관심이 커져서였다. 사람의 정신에 대해 공부하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알아봤더니 의대에 진학해 정신과 의사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중앙대 의대를 가게 됐고, 의사가 됐다.

보통은 의사가 되고 싶어 의대에 진학한 후 전공 분야를 선택하지만, 이 병원장은 반대였다.

그리고 의사와 군인의 공통분모가 의무직 공무원인 국립병원 의사라고 이 병원장은 소개했다.

정신건강을 다루고 싶어 정신과 의사가 됐지만, 현장에서 만난 정신병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대학병원에서 트레이닝을 하고 군 병원에서 복무했습니다. 그리고 10개월가량 민간병원에도 있었어요. 1990년대 후반 정신보건법이 생기기 이전에는 현장이 많이 열악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정신과 환자 치료는 의학적 기술이나 신약만 중요한 게 아니라 경제적인 요소, 보호자, 사회적 지지 체계 등이 매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완치지만, 차선책으로는 환자가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혹은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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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렬 국립부곡병원장./김구연 기자

의학은 정신질환 앞에서 작았다고 한다. 그래서 완치보다는 환자와 가족들이 병 때문에 불행하거나 절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환자만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러한 생각이 민간병원이 아닌 국립정신병원으로 이 병원장을 이끌었다.

우울증, 감기처럼 소홀히 치료해선 안 돼

이 병원장은 일반인이 주의해야 할 정신과 질환으로 우울증을 들었다.

"국립정신병원의 기능 전환으로 일반 국민 대상 정신건강 증진, 정신건강 위기 개입, 자살 예방 등 공공정신보건 업무에 전념하게 됐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가지게 된 정신건강 전문가로서의 소신은 대부분 정신건강 문제는 우울증과 연관되더라는 겁니다. 모든 정신질환의 70%가량, 치매까지도 우울증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신과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인도 우울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우울증이 치매로 발전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같이 나타난다는 거죠. 치매인 사람이 우울증도 있고, 약물 중독인 사람이 우울증도 있고. 겹쳐 있다는 겁니다."

우울증을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그만큼 흔하다는 뜻이지만, 일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내버려 둬도 쉽게 낫는 병'으로 오해할까 봐 '마음의 감기'라는 말을 경계하기도 한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한 것은 전문가들이 의도적으로 홍보한 겁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일반인들이 너무 정신과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정신과 이용을 두려워하죠. 그래서 감기에 걸리면 쉽게 병원에 가서 치료하듯 우울증도 그렇게 생각하라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감기처럼 생각하고 치료를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다만 감기가 많은 병의 근원이 되듯 우울증 역시 그렇습니다. 쉽게 치료를 받되,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살다가 우울한 기분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때로는 극단적이고 위험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두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이지는 않다.

"우울한 기분이 얼마나 지속하는지 그 기간이 중요합니다. 좋은 기분이 한순간도 없는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하면 치료가 필요합니다. 강도보다는 기간이 긴 것이 위험합니다. 우울감이 밑바닥까지 가지 않아도 기간이 길어지면 안 좋습니다. 기분이 좋은 날이 없고, 주변에서도 왜 그러냐고 묻는 그런 날이 2주 이상 지속되면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재발도 잘합니다. 평생 갖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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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렬 국립부곡병원장./김구연 기자

내 기분 들여다보기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우울감. 그렇다면 평소 우울증 예방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병원장은 "자신의 기분에 관심을 가져라"고 충고했다.

"혈압이 높거나 당 수치가 높게 나오면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생각하듯이, 지금 내 기분이 계속 침체하고 오래간다 싶으면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개선하려고 노력을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꼭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냥 놔두지 말라는 말이죠. 고혈압이나 당뇨를 조절하려고 마음먹으면 잘 조절되듯이, 우울증 역시 기분이 나아지게 노력하면 좋아집니다. 문제는 노력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죠. 괜찮아지겠지 하고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자기 기분에 대한 것, 정신에 대한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므로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다는 것. 하지만 이는 인생 전체 수지타산을 따져보면 굉장히 크게 차지한다고 했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공부를 잘할 수 없어요. 한창 공부해야 할 청소년기에 그런 우울감을 겪는다면 이는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죠. 결혼 생활에도 좋지 않은 기분은 영향을 미쳐요. 결혼 초기 잘못 끼워진 단추는 그 가정의 평생을 결정하죠. 적금 드는 것과 같은 경제적인 것, 눈에 띄는 것에 비해 '기분'을 너무 가볍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는 더 큰 요소입니다. 그게 안타까워요."

그렇다고 24시간 1년 365일 기분이 좋을 수는 없는 법. 이 병원장은 좋은 기분일 때와 나쁜 기분일 때가 6대 4 정도면 무난하다고 했다.

"항상 기분이 좋을 수는 없지만 그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어느 순간 기분이 나쁜 쪽으로 바뀌어 있다면 그것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해야 하죠. 당뇨에 좋은 음식을 찾듯이 기분이 좋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요즘은 인터넷 등에 정보가 넘쳐나고 상담 기관도 주변에 많습니다. 안 하는 게 문제입니다. 내 기분을 좋은 쪽으로 바꾸겠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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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렬 국립부곡병원장./김구연 기자

자존감 찾으려 소설 출간

이 병원장 인생에도 우울한 침체기가 있었다.

국립서울병원과 국립공주병원에서 근무하다 그만두고 2000년대 만성정신질환자를 위한 인터넷 벤처기업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했다. 개업의로 방향을 바꾸었지만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자신감이 한번 꺾이자 회복이 쉽지 않았다.

"자존감을 높일 방법을 찾았습니다. 잊고 있던 학창시절이 떠오르더군요. 한때 별명이 '문학청년'이었거든요.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소설 쓰기에 도전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전문 교육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소설은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는 등 수필과는 작법이 달랐습니다. 소설 작법과 글쓰기 관련 책을 읽고 글을 썼는데 제법 소설 같았습니다."

그렇게 나온 책이 2005년 출간된 <주식회사 마음의 쉼터>이다.

"주위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피드백을 해주더군요. 내게 여전히 탤런트, 재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울감을 벗어나 다시 자신감을 갖게 됐죠."

그러면서 자신이 왜 정신과 의사가 됐는지 돌아보게 됐다. 계속 개업의를 하는 데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

"어느 날 출근하는 데 충남 아산시에서 시민 정신건강 증진 행사를 한다는 현수막이 있더군요. 그걸 보니까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다시 국립공주병원에 찾아갔는데, 마침 자리가 비어 있는 겁니다. 2007년 12월 국립공주병원 의료부장으로 복귀했다가, 그해 말 원장이 그만두자 직무대리를 하게 됐습니다. 이후 경쟁을 거쳐 고위공무원인 국립공주병원장이 됐습니다. 관리자의 길에 들어선 거죠."

이 병원장은 경쟁자를 이길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으로 벤처기업과 민간병원 개업의 경력을 꼽았다. 일반의사 경력만으로는 '관리자'인 병원장으로는 부족하다고 심사위원들이 판단했고, 그래서 이 병원장의 그런 경력이 큰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인생의 '실패'가 보다 높은 위치로 가기 위한 '거름'이 된 셈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다운'되는 순간이 꼭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가만히 있지 말고 '업' 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세요. 해보면 반드시 길이 열립니다. 기분이 달라지면 현실도 달라집니다. 좋은 기분이 좋은 일을 불러옵니다.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하세요. '이 일을 하면 내 가치가 높아질까?'"

이 병원장은 넬슨 만델라를 예로 들었다.

"넬슨 만델라를 다룬 영화 <자유를 향한 긴 여정>을 보면 만델라가 섬에 있는 형무소에 갇히는 부분이 있어요. 종신형을 받고 독방에 갇히는데, 그곳에서 만델라가 뭘 하는지 아십니까? 팔굽혀 펴기 운동을 하는 겁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 상황에서 자기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술이나 담배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술·담배가 나쁜 것이 자기 연민을 불러온다는 겁니다. 그건 정말 독입니다. 차라리 팔굽혀 펴기를 하세요."

무엇을 하느냐? 얼마나 꾸준히 하느냐!

이 병원장은 국립부곡병원 부임 후 관사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그만큼 건강 등 자기 관리를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

"2014년 발령받아 관사 생활하면서 처음 1년가량은 사 먹었거나 전자레인지에 인스턴트 음식을 데워 먹었는데, 요즘은 직접 해먹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몸이 가벼워지고 좋아지더군요. 인스턴트 음식이나 라면을 안 먹은 지 꽤 됐습니다. 요즘은 오늘은 뭘 먹지 하고 고민하는 게 즐겁습니다."

요리 이야기를 하는 이 병원장은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남자들이 요리할 때는 3단계가 있는데, 첫 단계는 라면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끓이거나 레트로트 음식을 변형시키는 단계라고 했다.

두 번째는 육류, 세 번째 단계는 해산물 요리인데, 이 병원장은 최근 생선회에 도전하기 위해 회칼을 구입했다고 자랑했다. 광어를 손질해 볼 계획이라고.

요리는 이 병원장의 좋은 취미가 돼 '혼자'일 때 빠질 수 있는 우울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듯했다.

"맞아요. 이게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음식도 골라 먹게 됐습니다. 좋은 재료를 찾게 됐죠. 창녕장에 가서 장도 봐 옵니다. 좋은 고기를 사서 건강하게 먹습니다. 직접 음식을 하지 않았으면 그 시간에 내가 뭘 하고 살까요? 아마 중요한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운동을 위해서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 낙동강 둔치가 이 병원장의 단골 산책길이다.

"원래 체육을 못했습니다. 공은 골프공부터 농구공까지 다 무서워요. 하지만 나이가 드니까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할 수 있는 걸 찾았더니 걷기와 자전거 타기더군요. 인근에 낙동강이 있는데 잘 정비가 돼 있어서 정말 예뻐요. 걷거나 자전거 타기 좋습니다. 문제는 습관화입니다. 일주일에 3번 이상 자전거를 타려고 합니다."

인터넷 등에는 각종 건강 정보가 넘쳐난다. 몸에, 정신에 좋다는 음식·운동이 수없이 많다.

이 병원장은 이 중 무엇을 하느냐보다 얼마나 꾸준하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더 좋은 방법을 찾기보다는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유행 타서 하는 건강법, 벼락치기로 하는 건강법으로는 절대 건강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병이 나거나 후유증으로 고생하기도 하죠. 영화 <짝패>에 나오는 대사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것이다.' 건강관리도 똑같습니다."

통일되면 아버지 고향에서 봉사하고파

이 병원장은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년 7월이면 공무원 생활 20년을 채웁니다. 병원장으로도 오래 근무했어요. 공직 생활 끝나고 남은 여력이 있으면 아버지를 위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 병원장은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고 했다. 실향민이었던 아버지는 80세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늘 가족을 위해 사셨고, 돌아가실 때까지 자기 관리를 잘하셨습니다. 장학사업이나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셨죠.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아버지가 생각나 많이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을지무공훈장을 받아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는데도 포기하고 고향(함경북도)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아버지 고향에서 작은 의원을 열고 싶습니다. 통일이 빨리 안 되면요? 집에서 손자를 보며 살아야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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