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 키우는 지역 출판 움튼다 (2) '상추쌈'출판사

"상추쌈이 어디에 있나요?"

"아, 출판사. 저기 주황색 지붕집 아이가."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부계마을 회관 앞에서 길을 묻자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집을 가리킨다. 눈앞에 집이 쏙 들어왔다. 주황색 지붕으로 된 집은 가정집이고, 출입구 바로 앞에 2층으로 된 아담한 '상추쌈' 출판사가 보였다.

전광진(42)·서혜영(39) 씨 부부는 지난 2008년 서울에서 이곳으로 귀농했다.

언젠가는 귀농하리라고 마음먹고 있던 부부는 첫 아이가 생기면서 귀농 시기를 앞당겼다. 아이를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어린이, 생태 관련 책을 내던 보리 출판사를 퇴사하고 서 씨 고향인 하동을 삶터로 정했다.

출판사 입구 모습. 

농사를 하면서 출판 일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외주 편집 일을 했다. 귀농 이듬해에 '상추쌈'을 차렸다.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걱정스러워하던 이들도 두 가지를 병행하겠다고 하자 오히려 안도를 했다고. 부부는 '농민으로만 살아가기가 어렵다. 투 잡, 스리 잡이 아닌 농민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왜 '상추쌈'일까. 전 씨는 "상추쌈이 맛있잖아요. 맛있는 걸 좋아합니다"라면서 허허 웃었다. 상추는 추운 데서도 잘 버티고, 맛도 좋다고 덧붙였다. 한번 듣고 이름을 잊지 않고, 시골에 있다고 하면 잘 어울린다고들 한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지금까지 <스스로 몸을 돌보다>, <나무에게 배운다>, <다시, 나무에게 배운다>, <한 번뿐인 삶 YOLO>를 냈다.

지난 19일 오후 하동군 악양면 '상추쌈' 출판사 사무실에서 전광진(왼쪽), 서혜영 씨 부부가 지금까지 만든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출판사의 첫 책인 <스스로 몸을 돌보다>는 20대에 폐결핵 판정을 받은 저자가 20∼30년 간 투병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건강을 돌보는 방법을 적은 책이다. '제도권 의료 시스템의 덫을 넘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680쪽으로 꽤 두툼하다. 환자에게 지침이 될 수 있는 책이기에 나와 있는 논문을 확인하고 책을 만드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4년 만에 책이 나왔다. 아이 셋을 키우는 자신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 책이라고 했다.

<나무에게 배운다>는 니시오카 쓰네카즈라는 목수 장인이 구술한 내용을 시오노 요네마쓰 선생이 엮은 글로, 일본에서는 출판 후 30년이 된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다. 1996년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소개됐다. 부부는 서울에서도 이 책을 읽었고, 하동에서도 저녁에 아이들을 재우고 서로 이 책을 읽어줬다. 굉장한 힘을 얻었다고 했다. 지인들에게 책을 사서 선물하기도 했다.

그런데 책을 냈던 출판사가 문을 닫으면서 책이 절판됐다. '우리가 다시 책을 내보자'라고 생각하게 됐다. 저자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직접 만나기도 했다. 대형 출판사와 출판권 경쟁도 있었다. 절절한 마음이 통했던지 저자는 '상추쌈'을 택했다. <다시, 나무에게 배운다>는 <나무에게 배운다>의 일본 저자가 장인의 제자들의 구술이야기를 쓴 것이다.

<한 번뿐인 삶 YOLO>는 출판사와 30분 거리에 있는 전남 구례에 사는 권산이라는 저자와 그의 아들 권영후가 주고받은 편지 글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오늘의 즐거움을 내일 때문에 유보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책을 내면서 저자와 부부는 수시로 만났다.

부부는 일본·남북요리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지역에서 책을 내면서 새로운 실험도 하고 있다. 인세를 직접 지은 농산물로 지급하기도 한 것이다. 전 씨는 "서울에 대안교육 격월간 잡지 <민들레>가 있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구독료를 돈 말고 다른 것으로 받았습니다. 곡식을 주거나 일을 해주는 형태로요. 저희도 농사를 지으니까 도시에 있는 저자, 번역자, 디자이너 등에게 계약할 때부터 곡식으로 줘도 되느냐고 묻고, 가능하다고 하면 직접 지은 쌀, 토종밀을 1년 내내 보내드렸어요"라고 말했다.

올해 봄부터 계절별로 재일동포 김송이 씨와 하동에서 일본·남북 요리를 함께하는 1박 2일 프로그램도 계획 중이다. 음식과 이야기를 버무려내는 이 프로그램의 결과물을 책으로 만들고자 한다.

부부는 앞으로 마을 이야기를 책으로 낼 계획이다. 서 씨는 "하동에서 살면서 마을이라는 우주가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을을 이어주는 것은 이야기입니다. 구순이 넘은 할머니가 마을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방식으로 공동체가 이어지는지 그런 식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으려고 해요"라고 설명했다.

부부는 "지역에서도 출판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기술적으로도 가능하고, 여건도 좋아졌다. 지역에 훌륭한 콘텐츠를 가진 저자도 많다. 하동에서 농사를 짓고 살기에 시각이 굉장히 달라졌다. 그런 부분을 책에 담아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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