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적으로 순식간에 그려야 좋은 그림이 나와요"

김혜련(44) 작가는 사람들에게 '쌀롱 언니'라고 불린다. 그는 김해시 내동에 있는 문화카페 '재미난 쌀롱' 운영자다. 이 카페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이런저런 신나는 일을 꾸밀 때도 항상 중심에 있다. 이런 일로 언론에도 자주 등장했다. 화가로서 그를 만나는 일은, 그래서 조금 낯설다.

가을이 절정인 10월 어느 날 그가 일하는 재미난 쌀롱을 찾았다. 예상외로 그는 화가로서 자신을 만나러 와줘서 아주 고맙다고 했다. 

1년에 한 번씩은 꼭 전시 열어요

-혹시 화가로 불리면 낯설지 않아요?

"아니요. 부산 화랑에서 1년에 한 번은 전시를 해요. 1년에 한 번씩은 오로지 작업에 집중하죠. 사실 전시 기간에는 전시 장소에 일부러 안 가보는 편이에요. 일단 나는 작품이 잘 팔리는 작가가 아니에요. 그래서 갤러리를 하고 계신 분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아요."

-무슨 부담을 준단 말인가요?

"그 사람들로서는 전시를 하면 어떻게든 작품을 팔아줘야 하잖아요.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거죠. 어차피 안 팔릴 그림인데 싶어서 아예 연연해 하지 않아요. 그래도 1년에 한 번씩 전시를 하는 건 작가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죠. 사실 저는 그림을 그릴 때가 제일 좋아요. 그런데 그걸로만 먹고살 재능이 없잖아요. 팔리는 그림을 못 그리니까. 그래서 전시는 그냥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자신에게 주는 숙제 같은 거예요. 올해는 3월에 했고 내년에는 가을 즈음에나 전시회를 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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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련 화가./사진 제공 강대중

-그래서 자신은 본업이 화가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림 그리는 일이 내 일이에요. 그 본업이 돈이 안 될 뿐이지. 돈이 되도록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서는 아직 좀 애매해요. 솔직히 내 그림이 돈이 안 된다고 생각은 안 해요. 그림이 조금 선명하고 특이해서 가정집 같은 평범한 장소에는 안 어울려요. 이상한 장소에 어울려요."

-이상한 장소?

"뭐 술집 이런 곳이죠. 인테리어 소품으로 쓸 만한 장소에서는 어울릴 수 있다는 거죠. 그거를 내가 스스로 이해할 수준 안에서 형태를 달리하려고 고민하고 있어요. 내년 가을에는 지금보다 조금 다른 그림들로 전시를 할 것 같아요."

-작품이 주로 인물화잖아요. 모델이 있나요?

"그렇지 않아요. 작업 형태는 여러 가지인데, 물론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릴 때도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은 내 팔이 시키는 대로 해요. 내 손의 힘이 가는 데로 나오는 형태를 이어가는 식이에요. 어떻게 그려야지 이런 게 없어요. 그래서 내 그림은 제목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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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련 화가./사진 제공 강대중

즉흥적으로 작업하는 게 내 스타일이에요

-밑그림이 없겠네요. 그럼?

"전혀 없어요. 나는 밑그림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바로 작업 들어가요. 난 작업 속도가 빠른 편이에요. 그건 내가 즉흥적으로 작업을 해서 그래요. 예를 들어 사람들하고 술을 마시다 열 받잖아요. 그럼 바로 캔버스 앞에 가서 30분 만에 그림을 그려내요. 나는 계산을 하고 그림을 그리면 그림을 망쳐요. 계획하지 않아야 해! 그런 게 희한하게 반응도 좋아요. 스스로 만족감도 커요. 그 짧은 시간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집중해서 그리거든요. 풍경이나 예쁜 장면을 보면 저도 사람이라 참 좋지요. 그런데 솔직히 내 눈으로 보는 것만큼 아름답게 표현할 자신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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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련 화가 작품./김혜련 제공

-하루에 작업 시간을 어느 정도 정해두나요?

"아니요. 내가 지금 작업실이 따로 없기도 하고요. 요즘은 주로 집에서 작업을 하는데, 여기 말고 이전 가게(부뚜막 고양이) 할 때는 가게 2층에 작업실이 있었거든요. 그림 그리고 싶으면 뛰어올라가서 그리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 가게(재미난 쌀롱)는 장소가 좁아서 그럴 만한 공간이 없어요. 게다가 나는 출퇴근하듯 그렇게 시간 정해놓고 하는 작업은 못해요. 그냥 그리고 싶을 때 확 그리는 게 작업 효율이 높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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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련 화가./사진 제공 강대중

-스타일 자체가 그런 사람이구먼.

"그렇죠. 예를 들어 전시 일정이 잡히잖아요? 나는 머릿속으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구상, 구도 그런 걸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다가 막상 작업 들어가면 진짜 순식간에 하는 편이에요. 어깨가 고장날 정도로 그림만 그리죠. 붓에다 힘을 주면서 그려내니까 사람들이 내 그림 보면 남성 화가가 그린 작품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혹시 미대 나왔어요?

"전산관련 학과 나왔어요. 컴퓨터 전공. 나는 컴퓨터 관련 책도 쓴 사람이에요. 교학사에서 냈는데, 정말 안 팔렸어요. 하하. (찾아보니 진짜다. 교학사에서 2009년 발행한 <작은 회사 사장님이 꼭 알아야 할 엑셀 함수 plus 실무기술>이란 책이 있다.) 20대 중·후반에는 컴퓨터에 완전히 빠져 살았어요. 그때는 거의 서울에 가 있었죠. 지금 컴퓨터는 아예 안 해요.

학교 다닐 적에 미술 관련 학원도 다닌 적도 없고 미술 관련해서 상 한 번 받은 적이 없어요. 미술하고 관련이 하나도 없었어요. 지금도 그런 부분에서 아쉬운 건 없어요. 나는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요. 나에게 그 행위는 놀이일 뿐이거든요. 그 놀이를 죽을 때까지 한다는 생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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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련 화가./사진 제공 강대중

스승 없이 어깨너머로 그림 배웠죠

-그럼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어요?

"그림은 28살 때 그려봤어요. 그때 부산에 일요화가회라는 모임이 있었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무작정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나오더라고요. 거긴 그림을 가르쳐 주는 데가 아니라 그냥 좋은 경치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모임이었어요. 거기서 그냥 어깨너머로 그림을 배웠어요. 그래서 나는 스승이 없어요. 물론 심리적인 스승은 세 분 있어요. 일요화가회 할 때 맨 처음 나한테 그림에 대한 생각을 불어 넣은 분이 계시고요. 그리고 유명한 윤석남 선생님. (올해 76세인 미술가 윤석남은 현재 우리나라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로 불린다. 그는 마흔이 넘어 미술을 시작했다.) 그렇게 유명한 분이 내가 이전에 하던 부뚜막 고양이란 카페에서 전시를 해 주셨어요. 내부가 좀 어수선해서, 이런 데 작품을 두게 해서 미안하다니까, 나는 내 작품이 어디서든 누구한테 보인다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 하시는 거예요. 그런 부분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그다음에 피아니스트 연세영 씨. (데이드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데, 피아노 치는 화가로 유명하다.) 이 세 사람이 나한테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정신적으로 영향을 준 분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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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련 화가 작품./김혜련 제공

-차라리 미술 전공자로서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조바심 같은 거는 없겠네요.

"네. 그런 거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부담감이 없어서 내 그림이 자유로울 수 있었어요. 내 터치에 대해서 누가 태클을 걸어도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아요. 지금 내가 소속되어 있는 작가 모임이 없어요. 미술협회에서도 계속 들어오라는 데 나는 안 들어가요. 이유가 있어요. 그런 데서 활동을 하니 갈등이 생기더라고요. 전공자와 비전공자 사이의 갈등. 전공자에게 내가 비전공자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 그러면 싸움이 되더라고요. 괜한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안 해요. 속 편해요.

가끔 사람들이 내 그림 사가면서 진짜 화가시냐고 물어요. 내가 미협에 등록이 안 되어 있더라면서. 그럼 나는 협회 가입 조건은 되지만 굳이 할 이유가 없어 일부러 안 한다고 설명을 하긴 하죠. 솔직히 그런 소리 들으면 불편하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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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련 화가./사진 제공 강대중

희로애락 골고루 담은 그림 그리려고요

-지금 재미난 쌀롱에 걸린 그림들 보면 인물화지만 풍경 같기도 하네요.

"그래도 옛날 그림하고 비교하면 많이 밝아진 거예요. 웃고 있잖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는 그림은 나한테 있을 수도 없었어! 내가 그림 그리는 방식이 감정의 표현이나 해소 같은 거잖아요. 그 감정은 주로 힘들고 지치고 화내고 하는 것들이었어요. 행복하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작품에 어쨌거나 삶의 희로애락이 골고루 들어가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안 그래도 부산에 친한 갤러리 관장님이 얼마 전에 그림 방향에 조금만 손을 보자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솔직히 그거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은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꼭 돈이 되고 그런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이해할 만한 변화였으면 좋겠어요. 이것 역시 내가 만족할 만한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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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련 화가./사진 제공 강대중

-카페 말고 요즘엔 뭐해요?

"요즘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요. 2009년에 부뚜막 고양이란 카페를 열었을 때예요. 먹고살려고 차렸는데 일에 치이고 그러니 우울증도 오고 그랬어요. 그래서 마음을 바꿨죠. 그림을 꼭 캔버스에다만 그리는 건 아니다. 제가 미술 전공을 했으면 이런저런 장르로 작업 경험을 많이 해봤을 건데 그때 전 너무 몰랐던 거죠. 어떤 계기로 모든 행위가 작업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왔어요. 그래서 카페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그게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그 벽화를 시작으로 테이블도 칠하고 카페 모든 걸 다 바꿨어요. 그때부터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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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련 화가 작업실./사진 제공 강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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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련 화가./사진 제공 강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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