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없는 귀농 정말 힘들지만 돌아갈 맘 없어요

[기획 소개]

경남도민일보는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에서 인생 2막을 활기차게 여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삶을 응원하는 '청바지'라는 기획을 시작합니다. 청바지는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에서 머리글을 따왔지만 젊음을 나타내는 대명사이자 귀농귀촌한 많은 베이비붐 세대가 즐겨 입었던 옷이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비록 수익은 이전 도시생활보다 적더라도 마음은 훨씬 부유해진 그들의 건강한 웃음을 지면을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추석을 며칠 앞둔 9월 하순, 창녕군 남지읍 마산마을이 떠들썩하다. 마을회관에서는 부녀회와 노모 회원들이 정성껏 장만한 음식에다 구수한 메밀묵 냄새가 풍기고, 마을 어귀에는 남자들이 모여 무슨 일을 하는지 소란스럽다. 지난 8월 초부터 매주 두 차례, 월요일과 금요일 오후 2시면 어르신들이 모여 장승을 만들어 왔는데 마침내 이날 1차 결실을 보게 됐다. 이 마을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시작한 장승을 이날 세우는 것이다. 마산마을을 명품마을로 가꾸는 사업에는 5년 전 이곳으로 귀촌한 한 부부의 정성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바로 안정숙(57) 씨와 남편 서덕윤(55) 씨다.

재능기부 갔다가 얻은 정보 '우리 마을에서도 해 보자'

"우리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잘 사는 게 꿈입니다. 작년부터 부녀회장을 맡아 마을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 가꾸기 사업을 해 작년에 행복마을로 선정됐고, 운영을 잘해 올해는 명품마을 사업을 합니다. 올 연말에는 창조적 마을로 신청할 계획입니다."

아내 안정숙 씨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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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숙 씨./김구연 기자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다고 손사래를 치던 부부는 자리에 앉자마자 마을 자랑을 늘어놓느라 여념이 없다. 몇 마디 대화로도 이들 부부의 마을에 대한 애착이 느껴진다. 귀농귀촌이 붐이라지만 개인주의가 강한 도회지에서 살던 사람들이 농촌에 정착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 부부에게서는 마을 주민들과 거리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주민들과 힘을 모아 더 나은 농촌마을을 만들고 있다. 이들 부부가 마을 주민 일원으로 잘 어울리게 된 비결이 있을까?

"시작은 봉사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림을 전공한 덕에 하루는 다른 마을에 벽화를 그리는 재능기부를 하러 갔는데 정부지원 사업 중 벽화작업 등이 있더군요. 그 마을 이장님이 정부 지원정책에 따라 행복마을, 명품마을로 가꾸어가는 과정의 한 부분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때 둘이서 '다른 마을 봉사활동도 좋지만 우리 마을에서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정책사업에 대한 검토는 물론이고 농사짓는 공부도 3년 동안 하면서 여러 정보를 받았죠. 아, 그리고 이곳은 우리 부부의 고향입니다. 어릴 때 같이 계셨던 분들도 아직 많습니다. 그분들이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안 씨는 마을 부녀회장을 하기 전 창녕군 귀농인협의회 일을 했다. 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아 일을 했는데 업무 협의차 군청 농업정책과 갈 일이 많더라는 것이다. 자연히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하루는 군청 담당자에게 '저 마을에서 하는 사업을 우리 마을에 적용할 수 없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죠. 그랬더니 너무 쉽게 '신청하시라'라고 하더군요. 그때 '아,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겠구나'라는 것을 느꼈죠. 이후로 마을 일을 하느라 뛰어다니면서 마을 어르신들께 도움도 요청하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게 됐죠. 그리고 고향이잖아요."재능기부 갔다가 얻은 정보 '우리 마을에서도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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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덕윤 씨./김구연 기자

조경업 하던 남편, 장모 모시려고 갑자기 귀농

부부가 고향으로 귀농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남편 서 씨가 말을 이어받았다.

부부는 창원에 터를 잡아 살면서 서 씨는 부산에서 조경업을 했고, 안 씨는 직장생활을 했단다. 조경사업은 건설경기와 함께 움직이는데 건설경기가 지속적으로 침체하면서 조경업도 타격을 많이 받고 있었다. 겨우 조경 일을 맡아 공사를 했지만 돈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자꾸 발생해 스트레스가 엄청 쌓였다. '일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회의감도 생기면서 마음속으로 귀농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귀농이 현실로 다가왔다.

"아직 귀농할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장모님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창원 상남동 아파트에 장모님을 모셨는데 살짝 치매 증세가 나타나더라고요. 그래서 장모님이 살던 곳으로 이사를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뒤 잴 겨를 없이 한 석 달 만에 땅 밀어 집 짓고 이사했죠."

그야말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귀농이었다.

부부는 언젠가는 귀촌해 제2의 인생을 살 것이라는 계획은 세웠었다. 그리곤 경북지역을 많이 찾아다녔다. 또 안 씨는 지리산을 염두에 두고 2년 넘게 산 주변을 돌아다녔다.

"엄마 모시려고 남지로 왔는데 아마 지리산으로 갔으면 지금쯤 약초나 버섯농사를 짓고 있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준비 없이 왔느냐면 귀농학교도 한 번 안 가봤습니다. 집을 다 짓고 나니 건축회사에서 묻더군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건지 아닌지. 만약 대출을 받을 것이면 건축비를 높게 잡는 게 유리하다고 귀띔하더군요. 우린 그런 것도 몰랐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라면 누구나 생각해봤을 듯한 귀농이 이들 부부에겐 뜻밖에도 어머니의 병환이 귀농을 앞당긴 결과가 됐다. 안 씨는 엄마를 모시려고 고향에 왔지만 정작 당신은 점점 더 건강이 악화해 지금은 요양원에 모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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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숙-서덕윤 부부./김구연 기자

약이 되는 채소 재배하는 미림농원

마을 일을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는 부부지만 기본적인 수입은 필수다. 도시에서 나름 여유를 가지고 생활했다 하더라도 그 경제력만으로 농촌생활을 할 수 없다. 부부는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하며 수익을 올릴까?

"아름다운 숲을 만드는 기분으로 살고 있습니다. 미림(美林)농원이죠. 시설하우스에서 기능성 작물인 단호박과 여주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천연초와 국화, 목련꽃잎차도 생산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귀농해 우리 능력에 맞는 농업이 어떤 것인가 하고 연구한 것이 구근류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해서 땅콩, 고구마, 도라지를 소위 '돈 될 만큼' 심었단다. 문제는 제때 수확해 팔면 돈은 됐지만 감당 못 할 정도로 일이 벅찼다고 했다. 농사 쉽게 짓겠다고 농기계를 장만하려니 가격이 비싸 이 정도 수익을 내고자 큰돈을 들여야 하는 게 맞는지 스스로 되물었단다. 생각한 것이 노동 집약적인 것, 그래서 귀농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했다. 또 도농업기술원 마이스터 과정에 들어가 배우면서 시설농업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노지 농사는 너무 힘들고 돈은 적은 데다 1년에 많아야 두 작기밖에 못 짓습니다. 하우스 농사를 하되 이곳 농민들이 하는 하우스 고추나 오이보다는 경영비용이 최소한으로 적게 들어가는 것을 짓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겨울 농사 안 짓습니다. 에너지 비용이 전체 경영비용 중 40~50%를 차지해 경영비용은 적게 들면서 농사를 알차게 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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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숙-서덕윤 부부./김구연 기자

그렇게 여름 농사 위주로 계획을 잡았고, 여주와 단호박을 선택했다. 부부는 요즘 트렌드는 건강식인 만큼 농작물도 건강식을 많이 찾는다는 생각에 농장 캐치프레이즈를 '약이 되는 농사를 짓자'라 하기로 마음먹었단다.

"지금은 하우스에 오이를 심었지만 휴경기인 9~11월 잠시 두세 달 지을 수 있는 작물입니다. 소득을 올릴 방안으로 선택한 것인데 전체적으로 여주와 호박 농사죠. 시스템도 1차 생산농업에서 벗어나 2차 가공농업으로 가고 있어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직접 판매도 해 3차 농업이기도 하네요. 판매는 먹어본 사람이 '효과 있더라'라고 소개해 줘 90% 이상이 인터넷 판매입니다. 물론 생활비를 충당하는 정도이긴 합니다."

한겨울 하우스 놀리고 여름에 바쁜 '청개구리식' 농사

이들 부부 이야기를 듣노라니 보통 귀농인과 한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귀농인들은 대부분 농사에 대한 지식이 얕다 보니 처음엔 그곳 농민들의 방식을 많이 따라간다. 하지만 이 부부는 하우스를 지어놓고 겨울 난방비가 많이 든다며 한겨울 농사는 하지 않는단다. 대신 다른 농민들이 한여름 농사를 쉬는 데 반해 이들은 오히려 여름 하우스 농사를 짓는다. 실제로 남지 하우스 농가 대부분 작기 사이클을 보면 겨울 농사다. 가을 무렵 정식을 해 사실상 1년 농사가 시작되고, 이듬해 6~7월이 되면 끝난다.

물론 엉겁결에 귀농을 했다지만 귀농귀촌의 최고 즐거움은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한창 더운 여름이 제일 바쁘다는 부부를 보며 '배짱이'이자 '청개구리식' 농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하우스 안에서 작업하려면 상당히 더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엔 더운데 하우스 안에서 일 어떻게 하느냐며 엄청 반대했죠. 그런데 우리가 기르는 여주가 숲을 이뤄 여름철이라도 하우스 안이 그렇게 덥지 않습니다. 숲이 있어 환경조절이 되더라고요. 오히려 노지보다 시원한 편입니다. 그리고 여름철엔 주로 수확하는 작업이라 장시간 하우스에서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즐거우니 하는 일도 다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어설펐던 귀농, 도시로 돌아갈 생각 없어

부부에게 귀농 이후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뭐가 있을까? 부부는 제일 먼저 웃음이라고 말한다. 몸은 고달프지만 이 생활이 즐겁다고 했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피곤하지 않으냐고 묻습니다. 물론 피곤합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끼던 피로와는 다릅니다. 도시에서는 피로가 누적되지만 여기에서는 육체적인 피곤함이라 다음 날 늦게 일어나면 됩니다. 최소한 피로가 누적되지는 않습니다. 비록 돈을 모으지는 못하지만 도시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안 씨의 대답은 단호했다.

남편 서 씨는 마을을 바꾸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인다.

"마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초·중학교까지만 다니고 마을을 떠났다가 30여 년 만에 돌아왔는데 마을은 옛날 그대로더군요. 한마디로 마을 리더들의 역할이 부족했던 것이지요. '정부 지원 정책 등을 잘 활용해 마을을 잘 살게 하겠다'라는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마을 가꾸기 사업을 시작한 것도 마을을 한번 바꿔보자는 것입니다. 마을을 바꾸는 데 우리 두 사람이 원동력이 된다면 참 보람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바뀌어 가는 중이지만 앞으로 5년 정도 지나면 우리 마을이 전국에서 주목받는 마을이 되어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부부는 마지막으로 귀농귀촌인들이 참고할 만한 조언도 곁들였다.

"엊그제 귀농학교에서 40명 정도 견학을 왔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이 한 1000평 되는 땅에 집 하나 짓고 농사지으려면 가격이 어느 정도 하는지 묻더군요. 저희가 이런 분들께 똑같은 대답을 해줍니다. 소규모로 큰 비용 안 들이고 농사짓는 게 시설하우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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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숙-서덕윤 부부./김구연 기자

아무래도 귀농자들은 농사짓는 게 서툴러 대규모 농사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경험도 없는 데다 대규모 농사를 지으려면 농기계 등 투자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것. 더구나 농사는 천운일 수 있는데 대규모 농사는 잘못하면 한 번에 되돌릴 수 없는 실패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귀농해 시설하우스에서 소규모로 시작하면 크게 손해 볼 일이 없습니다. 설령 한 해 농사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손해를 안 봅니다. 이듬해 충분히 만회할 수 있죠. 스스로 좀 더 노력하고 공부하면서 시설하우스 작부체계를 잘 세우면 4기작까지 가능합니다. 물론 공부를 안 하고는 알 수 없지만 작물에 대해 충분히 알고 나면 그렇게 큰 비용 안 들이고도 충분히 소득을 낼 수 있는 게 시설하우스죠. 여기 오신 분들께 그렇게 안내합니다."

귀농 5년 차 서 씨에게서 오랜 경험이 쌓인 농군의 전문성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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