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경남예술인]한국 예술의 선구자들

◇전각 = 석불 정기호(1899~1989)는 근현대 전각가로서 중국과 일본에까지 명성을 날린 독보적인 장인이다. 1948년 대한민국 1호 국새인 태극인용을 만들었다.

정기호는 1899년 8월 창원군 상남면 지귀리(현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에서 태어났다. 16살이 되자 중국으로 건너가 전각장인 황소산에게서 10년 동안 전각을 배웠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전각을 배우면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1945년 귀국해 당시 마산에 '고죽당'이란 도장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부산으로 가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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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 극작가며 연출가인 동랑 유치진(1905~1974)은 근대 연극사에서 최고 희곡작가로 꼽힌다.

통영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나서 귀국해 1931년 극예술연구회를 창립하고, 극단 현대극장(해방 전), 극단 극예술협회(해방 후)를 조직했으며 한국무대예술원을 설립하는 등 한국 연극 전반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 경남 연극이 1920년대 통영, 진주를 중심으로 발전했고, 해방 후 진주, 마산을 중심으로 경남 지역에서 활발하게 연극 활동이 이뤄진 것도 널리 보았을 때 모두 유치진으로 말미암는다.

◇영화 = 1920~30년대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영화부 소속으로 많은 활동을 펼친 영화인 중에 경남 출신 영화감독 강호(1908~1984)가 있다. 강호는 1908년 창원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봉곡리에서 태어났다. 12살이 되던 1920년 일본에 건너가 고생하면서 그림을 배웠다. 귀국 후 1927년 카프에 가입해 선전미술활동을 벌인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를 시작해 <암로>(1929), <지하촌>(1931)을 만들었다. 1946년 월북, 영화를 만들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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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창원이 낳은 한국대표예술가>(고향의봄기념사업회 2010), <경남지역 영화史>(이성철 호밀밭 2015), <경남연극인물사>(한국연극협회 경상남도지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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