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짝마다 마을마다 삶의 애환이…

하동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산과 강, 바다를 모두 끼고 있어 사시사철 먹을거리가 풍족한 고장이다. 배, 재첩, 참게, 은어, 고사리, 대봉감, 밤, 차(茶), 전어 등 그 종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그 가운데 '지리산과 섬진강의 운무(雲霧)가 빚어낸 오묘한 자연의 맛'이 담긴 하동차(화개차)는 세계 최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하동차 한 잔에는 색(色)·향(香)·미(味) 모두가 담겨 있다. 이번엔 야생차의 보고이자 이 땅에 처음 차가 재배되기 시작한 하동 화개골을 거쳐 산골 사람의 애환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전남 구례를 다녀왔다.

◇원부춘~가탄(12.6㎞)

토종 다래와 머루를 맛보다

지리산둘레길 하동 구간은 전반적으로 접근성이 좋지 않다. 하동읍에서 원부춘~가탄 구간의 시작점인 원부춘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하동읍에서 택시(2만 원)를 타거나 화개장터에서 하루 한번뿐인 버스, 그리고 택시(7000원)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거리보다 실제 산행시간이 긴 관계로 화개장터로 향하지 않고 바로 하동읍에서 택시를 타고 원부춘으로 향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차창 밖 풍경이 평화로웠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만지배 과수원을 지나자 악양 들판이 차례로 스쳐간다. 차를 타고 올라도 가파른 길을 따라 원부춘 마을회관 앞에 내렸다. 등산화 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길을 나섰다. 가파른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산을 향해 끝없이 이어졌다.

형제봉 활공장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마을에서 4㎞가량 올라야 형제봉 임도 삼거리가 나온다. 아스팔트와 시멘트 포장길이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임도였지만 임도를 따라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아름드리 나무가 있어 지루함이 덜했다. 마을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에서 길옆 야생초를 따는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마을에서 ‘청산별곡’이라는 이름의 팬션을 운영하는 이영숙 사장님으로 팬션을 찾는 손님에게 대접할 효소 진액을 담으려고 야생초를 채취하시다가 우리 일행과 마주친 것이었다. 시원한 성격에 호탕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한참을 오르는 동안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시는 통에 꽤 먼 거리를 올랐는데 시간가는 줄 몰랐다. 잠시 길옆 계곡물에 땀을 훔치고선 아주머니와 헤어졌다.

원부춘에서 일행보다 늦게 출발한 산악자전거 동호인도 꼬리를 감추었다. 형제봉 활공장까지 오르는 동호인이었다. 이제 산 속에는 우리 일행 말고는 아무도 없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가끔 들려오는 새소리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전부였다. 길을 오르면서 주변 나무를 둘러보고 행여 다른 모양의 나무가 있으면 연방 카메라로 그 모습을 담았다. 손가락 마디 굵기의 다래를 발견했다. 어릴 적 보았던 것이 분명한데 얼른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무작정 깨물어보았다. 그제야 ‘토종 다래’임을 확인했다. 크기는 작지만 맛과 향은 '키위'로 더 잘 알려진 다래와 똑같았다. 나무 열매에 맛을 들인 터라 지루한 오르막길을 걸으면서 눈은 숲으로 향했다. 열매가 없으면 나무 이름을 생각해보고 그렇지 않으면 저 나무는 어떤 용도로 사용한다는 짧은 지식을 되뇌며 걸었다. 활공장 임도 삼거리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머루 덩굴을 발견했다. 아직 알이 탱탱하게 여물지는 않았지만 머루 송이가 달렸다. 머루 한 송이를 따서 몇 알을 입속에 넣어 맛보는 데 덜 익은 탓인지 시큼한 맛이 강했다. 어린 시절 산과 들을 다니면서 따먹던 그 맛이 아련히 떠올랐다.

활공장 삼거리에서 3.5㎞가량 곧장 오르면 형제봉 활공장으로 향하고 왼쪽으로 꺾으면 둘레길이 이어진다. 화장실과 의자가 마련된 곳에서 여장을 풀고 잠시 산 아래 화개천과 주변 산을 조망했다. 둘레길을 다시 왼쪽으로 꺾어 아래로 내려서는 데 둘레길 표지판과 함께 ‘카페 하늘호수 차밭’이라고 적힌 앙증맞은 간판을 따라가면 된다. 이 구간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만나는 숲 속 흙길이다. 해발 800m 여기서부터 얼마나 더 내려가야 할지 긴장된다. 앞선 둘레길 경험으로 미루어 오른 만큼 내려가야 하기에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자연을 닮은 부부를 만나다

산 아래 동네가 까마득하다. 내려가는 길의 경사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간벌한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지만 체중이 앞으로 쏠리면서 발끝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숲 속이라 길이 미끄럽다. 쉼터까지 대략 40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하늘을 가린 울창한 숲 때문에 주변을 조망할 여유도 없다. 오로지 발끝만 쳐다보면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긴장한 탓에 오를 때보다 더 많은 땀이 흘러내렸다.

한참을 내려갔을 무렵 둘레 길옆으로 철조망이 길게 이어졌다. 경험상 그 숲 속에 뭔가 돈이 되는 것이 있는 것 같아 몇 번을 두리번거렸지만 도대체 뭐가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철조망까지 둘러쳐야 한다는 것이 야박하게 보였다. 한편으론 자식처럼 아끼는 농작물을 누군가가 몰래 가져가거나 훼손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동원하지 않았나 싶어 죄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하늘이 점점 낮아질 무렵 골짝 마을 지붕이 하나둘씩 시야에 들어왔다. 곧 얼굴을 들어낼 것만 같은 밤송이가 달린 밤나무, 녹색에서 주황색으로 변해가는 감나무, 지난 봄 열매를 내어준 매실나무가 마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케 했다. 나무로 만든 간판이 인상적인 ‘하늘호수 차밭’에 들어섰다. 앙증맞은 솟대, 주위 풍광과 아주 잘 어울리는 의자며 탁자, 나무판에 직접 새긴 그림 등이 산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었다. 반갑게 일행을 맞아주신 분은 배윤천 사장님으로 남편과 함께 이곳 화개골에 들어온 지 20년쯤 되었다고 말했다. 허기진 배를 채울 요량으로 부추전과 막걸리 한 병을 시켜 놓고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는 풍광이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했다. 화개천 너머 황장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손수 끓여 주신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나서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올 초 S&T중공업에서 펴낸 백두대간 종주기 <담대한 도전> 이었다. 지리산둘레길 종주를 끝내고 지금 두 번째 종주를 하는 박재석 사장님 일행이 이곳을 지나면서 건네주신 책이었다.

‘하늘호수 차밭’의 정원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고추, 허브, 매실나무, 더덕, 산초나무, 아주까리 등 없는 것 빼고는 거의 다 있을 것 같은 식물원을 연상케 했다. 하루에 몇 사람이나 이곳을 찾을지 모르지만 주인은 그런 기다림을 즐기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자연과 하나가 된 순박하고 푸근한 인상이 너무나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가진 것이 적어도 행복한 그런 얼굴이었다. 아직 갈 길이 멀어 일어서려는 데 사장님의 부군인 양진욱 씨가 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일행이 한참을 내려왔는데도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해주셨다. 언제 시간이 나면 다시 한 번 들러 이들 부부가 겪은 척박한 산골 생활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 부부는 현재 <땔나무꾼과 하늘호수>라는 이름의 블로그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사시사철 따른 산골 생활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고 있다. 이곳에 다녀간 이종성 시인은 자신의 시집 <바람은 항상 출구를 찾는다>에서 이들 부부 시(詩)를 만들었다. ‘하늘호수와 창포 -양진욱·배윤천 부부에게’라는 이름의 시다.

하늘호수 출렁이는
저 파안대소

호숫가 노란 창포 피는
저 고운 미소

어느 절의 단청이
늙어도 저리 고울까

어느 범종의 울림이
아파도 저리 맑을까

둘이만 먹는 한솥밥이 있다
둘이만 덮은 한이불이 있다


둘레길은 중촌마을을 지나 정금 차밭까지 완만하게 이어진다. 중촌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 오른편 산비탈에는 야생 차밭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정금 차밭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돌아서면 대비암까지 비교적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라 체력 소모가 많다. 백혜마을을 거쳐 가탄마을로 내려서면 간판이 인상적인 길가(吉佳) 슈퍼가 나온다. 이 코스는 초반부터 오르막 연속에다 급경사 내리막길이 많아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산행하는 것이 좋다.

◇가탄~구례 송정(11.3㎞)

걸어서 전남 땅에 들어서다

가탄마을 앞 화개천을 가로지르는 가탄교를 지나 법하마을로 들어서면 16구간이 시작된다. 법하마을은 십리 벚꽃길이 지나는 마을로 차(茶)를 만드는 집이 여러 곳 있다. 마을에서 조금 내려가면 화개장터가 나온다. 가수 조영남의 노래로 더 유명해진 화개장터는 영·호남을 아우르는 만남과 화합의 장소로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무대이다. 전남 구례 사람과 화개 사람이 한 데 모이는 장소로 옛날에는 5일장 형태로 운영되다 이제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덕에 상설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법하마을을 가로지르는 둘레길은 차밭과 밤나무 숲으로 지루한 오르막이 계속된다. 한참 숨을 몰아쉬면서 5부 능선 정도 오르면 산죽 터널이 나오고 적송과 편백, 낙엽송이 어우러진 숲이 나온다. 40분 남짓 오르자 하늘이 가까워지면서 둘레길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은 작은재로 해발 350m 높이로 경남과 전남의 경계다. 이정표 오른쪽은 황장산과 촛대봉, 왼쪽은 화개장터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정표를 따라 곧장 가면 전남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 기촌마을로 향한다. 숲길을 걷다 보면 중간에 묵힌 밭이 나오는 데 기록에 따르면 이곳은 어안동 묵답으로 그 옛날 논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자 이 높은 산골까지 와서 산을 깎아 논을 만들고 벼를 심어야 했던 옛사람의 고단한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어안동 묵답을 지나면 기촌마을과 팬션촌으로 유명한 은어마을이 보이는 언덕배기가 나온다. 산자락을 깎아 만든 팬션단지의 모습이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아 왠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밤나무 농장을 따라 아래로 한참을 내려서면 피아골로 접어드는 길목인 기촌마을과 만난다. 때마침 교회 예배 시간인지 교회에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도시의 교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무화과 열매가 탐스럽게 열린 교회 담벼락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연곡사와 피아골로 향하는 길이 이어진다.

외곡천을 가로지르는 추동교를 건너 추동마을로 향하는 길은 거의 등산 수준이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오르는 길은 법하마을에서 작은재 구간을 연상케 할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황토벽과 대나무로 만든 대문이 인상적인 전형적인 산골마을 풍경이 다리품을 팔아 오른 수고를 잠시나마 덜어준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차밭 풍경이 이채롭다. 

밤나무 숲을 벗어나 산허리쯤에 이르자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귓전을 때렸다. 눈 아래 정말 환상적인 풍경이 발걸음을 붙잡았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동서 화합의 상징으로 건설된 남도대교(화개~광양)가 펼쳐졌다. 지나온 길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해발 고도 400m 이상 오른 셈이다. 둘레길 이정표 나무 의자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는 데 정말 힘든 구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쉼터도 없어 간식과 마실 물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목 아재까지 산 능선을 따라 비교적 편안하게 걸을 수 있어 한결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목아재로 내려서자 둘레길 안내도와 나무 의자가 나왔다. 이곳은 당재로 이어지는 둘레길 17구간 시작점으로 오른쪽 임도를 따라 오르면 농평마을로 향하고 반대는 화개와 구례를 잇는 국도로 내려가는 길이다. 목아재~당재 구간은 송정마을에서 3.2㎞ 지점에 있는 이곳 목아재까지 접속구간을 올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례에서 연곡사행 버스를 타고 연곡사에서 내려 당재로 갔다가 다시 목아재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다. 어떤 경우라도 목아재에서 송정마을까지 접속구간 3.2㎞가 더해진다.

이제 1시간 남짓이면 구간 종점인 송정마을이다. 목책 난간을 설치한 둘레길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손에 잡힐 듯 길게 뻗은 섬진강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게 다가왔다. 지리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흘러든 물이 하나가 되어 강을 이루고 그 강은 다시 바다와 만나고자 쉼 없이 흘러간다. 오르고 내린 발걸음은 송정마을과 점점 가까워짐을 알린다. 왕시루봉에서 발원한 물은 송장계곡을 따라 아래로 흐른다. 지친 발을 계곡물에 담그고 잠시 쉬어간다. 드디어 송정마을에 도착했다. 다음 17구간 목아재~당재 둘레길에 다시 이곳에 들려 하룻밤 묵어갈 계획을 뒤로하고 화개장터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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