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죄송한 마음이다. ‘장보기’ 하면 마땅히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야 하는데 대형마트가 대상이다. 웬만하면 전통시장이나 야채가게 등 소규모 점포를 이용하려고 노력하지만 식구가 적은 데다 근처에 마땅한 시장도 없어 늘 그러지는 못한다. 어쨌든 그래도 전통시장 물품이 상대적으로 값도 싸고 질도 높다는 말씀은 분명히 드린다. 거리나 시간 문제만 없다면 되도록 전통시장을 이용할 것을 권해드린다.

본론이다. 독자들은 대형마트란 공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온갖 물품이 저렴하고 넉넉하게 진열돼 있는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는’ 흡사 천국? 풍요로운 식탁을 약속하는 전 세계 각양각색 음식(재료)의 화려한 전시장?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기자가 볼 때는 고객의 지갑에서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빼낼까,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고객을 어떻게 속여 먹을까 오직 그 목적 하나만을 위해 작동하는 거대한 지뢰밭이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당한다. 곳곳에 숨겨진 지뢰를 피하려면 장보기의 철학, 장 보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필요한 것만, 필요한 만큼만

보통 마트에 가면 ‘무의식적으로’ 카트부터 꺼내 끌게 된다. 엄청난 용량이다. ‘천국’이 속삭인다. “다 채워, 꽉꽉 눌러 다 채우라구.” 결과는 늘 빤하다. 필요도 없는 것, 얼마 전 집에 사다놓은 걸 또 사기 일쑤고 다 먹지도 어쩌지도 못해 버리는 음식이 태반이다. 

그때그때 필요한 물품만, 그날그날 먹을 음식 재료만 산다면 굳이 카트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 장바구니면 충분하다. 물론 마트에 좀 더 자주 가야 하는 부담은 생긴다. 하지만 낭비하는 음식을 생각해보라. 돈도 아깝지만, 냉장·냉동실에 오래 처박아놓은 식재료는 맛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냉동실 저 구석에 몇 달씩 심지어 몇 년씩 썩고 있는 해산물이나 고기가 있는가. 조금만 부지런해지시라. 돈도 아끼고 오며가며 운동도 되고 무엇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진짜 천국이 기다린다.

이제 메뉴를 정하고 무엇을 살지 결정할 차례다. 오늘은 소불고기와 된장찌개나 해먹을까? 가만. 마트에서 소불고기를 파네? 야채도 들어 있고 양념도 다 돼 있네? 그냥 이거 사자! 당신은 또 마트 상술에 열심히 넘어가는 중이다. 마트 측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각종 간편 조리식품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언론이나 소비자 고발프로그램에도 숱하게 나왔지만,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유통기한이나 위생상태도 믿을 수 없다. 질 좋은 고기를 사 간장, 설탕, 마늘 정도만 더하면 맛있는 불고기가 탄생하는데 왜 이런 제품에 의존하는가.

된장찌개도 마찬가지다. 마트 측은 각종 야채를 미리 손질해놓거나, 아예 무슨 무슨 ‘찌개 재료’라는 이름을 붙여 포장 판매하곤 한다. 이 역시 권할 바가 못 된다. 재료 자체도 신뢰가 안 가지만 식재료는 그 부피가 줄어들면 그만큼 상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마늘을 예로 들어보자. 마트에 가면 바로 사용하라고 깐마늘, 다진마늘, 편마늘 등을 따로 포장해 판다. 이런 마늘은 대개 맛과 향이 약하고 썩기도 빨리 썩는다. 되도록 껍질이 붙어 있는 (통)마늘을 구입하는 게 현명하다. 물론 이런 마늘도 제철(여름)이 아닌 경우에는 상태가 안 좋을 수 있으니 유심히 잘 살펴보고 사야 한다. 

야채뿐만이 아니다. 과일, 해산물, 육류 모든 식재료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해산물은 살아 있거나 갓 손질한 것을 사야 한다. 생선은 대부분 미리 손질해놓은 것을 파는데 언제 손질한 것인지, 껍질은 탱탱하고 윤기가 있는지, 비린내는 안 나는지, 눈알은 맑고 투명한지 잘 확인해야 한다. 조개의 경우 보통 껍데기를 제거해 조갯살만 파는데, 물론 먹을 수는 있지만 국물을 내는 데는 부적합하다. 꽃게나 대게도 살아 있는 걸 사서 먹는 게 이미 죽었거나 냉동된 것보다 훨씬 맛있다. 

고기도 구이용·국거리용 등 미리 잘게 썰어놓은 건 가급적 피하자. 특히 보통 ‘민찌’로 불리는 간 고기를 많이 사는데 공기 접촉면이 넓어 매우 빨리 부패하는 종류다. 집에서 핸드 블렌더 등으로 직접 갈아서 먹는다면 훨씬 더 신선한 고기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할인상품을 경계하라

각종 할인상품도 피해야 할 지뢰다. 싸다고 무턱대고 사다간 ‘사기’ 당한 기분까지 들기 십상이다. 대표적인 게 이른바 ‘1+1 상품’인데 양에 현혹되지 말고 물품의 상태를 잘 살펴야 한다. 오래되거나 질 낮은 것, 잘 안 팔리는 것, 유통기한이 임박한 것, 그리고 사실상 제값 그대로 받으면서 싼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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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커피믹스 판매대. 할인·증정 상품 표시가 눈에 띈다. /연합뉴스

무게를 속이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부터 랍스터 할인 행사가 유행인데 광고에는 600g이라고 했지만 실제는 450g밖에 안 돼 문제가 되기도 했다. 쌀 한 포대를 할인 판매한다고 해놓고 20kg이 아니라 18kg짜리를 팔거나, 커피믹스를 10g당 얼마에 싸게 판다고 광고해 마치 1봉(12g)당 가격이 그런 것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가격은 변함이 없는데 말이다.

사실 쉽지는 않은 일이다. 쌀 무게가 원래 얼마인지, 광고한 무게와 정확히 일치하는지 안하는지, 식재료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 일일이 확인하고 기억하고 살긴 어렵기 때문이다. 차선책은 오직 하나. 앞서 강조한 대로 꼭 필요한 것만, 필요한 양만큼만 사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완벽한 대안은 아니지만 이런 자세로 장만 봐도 마트 측의 ‘장난’에 넘어갈 확률은 확실히 낮아진다. 

또 하나. 많은 것을 기억하진 못해도 자주 먹거나 좋아하는 음식 재료의 제철쯤은 되도록 파악하고 장을 보도록 하자. 맛있는 밥상을 차릴 수 있는 최선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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