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항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탄다는 것은 밤으로 가는 여행이고, 바다를 건너는 여행이다. 여행자에게 그건 낯설지만 익숙하기도 한 또 하나의 세계를 맛보는 경험이다. 여럿이 가든 혼자 가든 칠흑같이 펼쳐진 밤바다 앞에서 자기 자신을 독대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과정이다. 목적지를 향해 거쳐 가는 길과 방법, 만나는 사람에 의해 여행은 완성된다. 제주도는 육지 사람들에게 아직도 손쉬운 여행지는 아니다. “제주는 해외니까”라는 말은 그저 나오는 말이 아니었다. 평생에 한 번 마음먹어야 갈 수 있는 곳. 그래서 신혼여행지로서 으뜸으로 치는 곳이었다. 몰려가는 신혼부부를 향해 “제주에 가면 딸 낳고, 경주 가면 아들 낳는다”라고 던지는 말은 여러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다. 제주를 가고 싶으나 비용이 많이 들어 정작 갈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것을 위안하는 말이기도 하고, 제주 쏠림현상을 슬쩍 낮춰보겠다는 심사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이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당시 한국 사회를 또 그대로 담은 말이기도 하다.

/권영란 기자

어쨌든 1990년대 이후 한반도에 불어 닥친 여행 문화로 항공편은 더 늘어났고 제주도를 좀 더 손쉬운 여행지로 다가오게 했다. 또 2005년 이후 제주 올레길이 한 구간 씩 만들어지게 됨으로써 ‘걷기 열풍’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주로 몰려갔다. 그리고 삶을, 생활을 바꾸고픈 또 많은 사람들이 제주에 살기 위해 갔다.

삼천포에서 제주 가는 배가?

“내 평생에 제주도는 처음 가봤다아이가. 비행기 타는데 무시버 죽는 줄 알았다. 아이고 바람도 어찌나 센 지 날아가삐는 줄 알았다아이가. 넘들이 제주도, 제주도카더만 내는 잘 모리것더라. 근데 햇볕이 포슬포슬하더만 눈앞이 환해지는데 바다가 파랗더라고. 그리 예삔 바다는 내 평생에 처음 봤다아이가.”

1980년대 초반이었을까.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생전 처음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어머니는 온 동네를 다니며 은근히 자랑을 하고 다녔다. 제주관광이라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제주도는 경남 남해안 사람들에게 지리적으로는 가깝다. 하지만 경남 서부 함양, 산청지역 사람들에게 제주도는 머나먼 곳이다. 항공편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김해공항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사천공항이 있지만 금요일과 일요일만 운항 스케줄이 있고 게다가 그마저도 낮 시간대 운항으로 여행자가 이용하기에 썩 적합한 것이 아니다. 결국 1시간 또는 2시간 이상을 달려 김해공항까지 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2012년 3월, 제주도로 가는 전혀 새로운 여행 방법이 생겼다. 하늘길이 아니라 뱃길이다. 경남 서부 사람들은 삼천포항에서 제주를 갈 수 있게 됐다. 밤배여서 시간을 헛되이 사용치 않아도 좋다. 제주로 가는 여객선은 두우해운에서 운항하는 것으로, 두우카페리 ‘제주월드호’이다. 취항한 지 만 2년이 됐지만 아직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듯하다. 제주를 가고픈 경남서부 사람들에게는 제법 유용한 뱃길이다. 밤새 뭍에서 섬으로 달려가는 여객선으로 삼천포항에서 제주여객터미널까지 꼬박 8~10시간이 걸리는 뱃길이다.

/권영란 기자

어설프게 알다간 출발도 못한다

아차, 출발 장소를 잘못 알았다. 삼천포여객터미널로 가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제주에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는 삼천포여객터미널이 아니라 삼천포에 있는 ‘사량도 제주카페리선착장’ 또는 ‘사량도 여객선 터미널’로 가야 했다. ‘배 타고 제주여행’ 출발 첫 번째 착오였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게 한 밤의 삼천포 도심을 우왕좌왕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었다. 배 시간은 충분히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차, 승선 시간마저 잘못 알았다. 매주 화요일 출항 시각은 자정이 맞았다. 하지만 차량을 가져가는 승객은 출발 시간보다 2시간 일찍 여객터미널에 와서 승선 절차를 밟아야 했다. 여유로웠던 시간은 금세 날아갔고 순식간에 긴장감이 흘렀다.

‘아, 며칠 동안 준비했던 제주여행은 물거품이 되는 구나.’

약간의 허탈감과 함께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지,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순간이었다.

“지금 빨리 승선장으로 가서 트럭들 맨 앞으로 가세요. 무조건 맨 앞으로 가는 겁니다.”

직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차는 달렸다. 하지만 사방이 깜깜한 항구는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무조건 앞에 가는 트럭을 앞질러 냅다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5톤 화물 트럭의 대열 사이를 달려 무조건 앞으로 갔고, 무전기를 들고 있던 승선 안내 직원이 차량을 재빨리 배 안으로 넣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배 타고 제주여행’ 출발 두 번째 착오였다. 그야말로 ‘혼을 빼놓는’ 승선이었다.

제주월드호 3등급 선실 풍경

갑판 위를 올라 선실을 찾아 들어가니 비로소 웃음이 났고 여유가 생겼다. 비수기여서 그런지 3등급 선실 안은 사람이 적었다. 선실이라고 해봤자 칸을 질러놓았을 뿐 사방이 훤히 다 보였다. 1등급 선실은 2인 침대, 2등급 선실은 4인 침대, 3등급 선실은 10명~15명 정도 사용할 수 있는 다다미방이다.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 또는 온 가족이 갈 때는 3등급 다다미방을 이용하면 다 같이 둘러앉아 놀거나 잠을 자기에 무리가 없을 듯했다.

/권영란 기자

“거기 담요를 깔고 자리 잡으면 돼요. 가방은 적당히 사물함에 넣고요.”

벌써 자리를 잡고 비스듬히 앉아있던 옆 자리 아가씨가 고참병처럼 한 마디 던진다.

각 선실마다 한 쪽에 하늘색 담요가 겹겹이 쌓여 있다. 직원 안내에 따르면 한 사람 앞에 2장씩의 담요를 사용할 수 있다.

승객이 별로 없어선지 맞은 편 5~6명의 아주머니들은 담요를 2겹, 3겹으로 깔고 가운데 소주와 안주거리를 두고 벌써 불콰해진 얼굴로 목소리가 높아지고 수다스럽다. 뒤 편 선실에는 서넛이 화투를 하고 있나본데 엄청 조용했다.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소리를 죽이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리 치면 재미가 없을 건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마음씀씀이에 또 쉽게 감동한다.

화장실은 남녀 따로 나뉘어 있고, 들어가면 두 칸씩 있다. 세면대와 큰 거울이 있다. 배 중앙에 매점과 안내데스크가 있었는데 그것을 중심으로 선실이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밤바다를 건너는 법

배는 이내 출발했다. 삼천포항 불빛이 천천히 멀어졌지만, 한참을 가도 삼천포화력발전소 불빛은 화려하게 빛났다. 어둔 밤바다에서는 그 불빛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였다.

/권영란 기자

그리고 마침내 칠흑 같은 바다만이 오롯이 다가왔다. 새벽 2시를 넘은 바다에는 겨울이지만 차갑지 않은 밤바람이 갑판 위를 어슬렁거리고, 잠들지 못한 승객 두엇이 나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담배를 피웠다.

일행과 함께 갑판 후미에 앉아 검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배가 지나온 길 위를 내가 가볍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일행 중 누군가가 말했다.

배가 지나온 위로 쓸어놓은 듯 물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린 윤슬이 길을 내고 있었다.

제주로 가는 뱃길은 밤으로의 여행이자 ‘해저 이만 리’ 심해로의 여행과도 같았다.

갑판 어디선가 간간히 캔을 따는 소리가 들리고, 담배 연기를 뿜는 소리가 들렸다. 여행의 설렘이든 잠 자리의 불편이든 또 누군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도 공간도 경계가 불확실한 밤이었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뜨면 적도 어딘가를 지나고 있을 것 같은 긴 행로였다.

새벽 노을과 함께 제주에 닿다

선실로 들어가 누웠다. 가무룩하니 잠이 들었나보다.

눈을 뜨니 사방이 조용하다. 슬그머니 선실을 나와 갑판으로 나갔다.

/권영란 기자

갑판으로 통하는 출입구 문을 열자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다가왔다. 바다 저편 위로, 수평선 위로 따스하나 붉은 빛이 띠를 두른 듯 길게 걸쳐져 있다. 바다는 여전히 검고, 검은 하늘은 높이 올라갈수록 점점 푸르다. 그 하늘에 가느다랗고 하얀 달이 떠있고 별 하나가 그 달을 바라보고 있다.

겨울 아침은 늦게 찾아왔다. 시간은 어느새 오전 6시를 훌쩍 넘었다. 밤새 꺼지지 않았을 항구의 불빛과 함께 멀리 제주항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저리 가까이 보여도 아직 한 시간은 더 가야 합니다.”

옆에 선 낯선 남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바다 위에 걸쳐있던 길고 붉은 띠는 점점 두꺼워졌고, 점점 붉어졌다. 그 빛이 다시 넓게 퍼지면서 환해질 무렵 배는 제주항에 도착했다. 미처 물러가지 못한 어둠과 붉은 기운이 제주항을 따뜻하게 감싸고, 그 아래 제주 바다가 점차 푸른빛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정물과도 같은 그 풍경 안으로 제주항의 부산스러움이 슬몃 끼어든다. 제주항에는 이미 대형 여객선이 여러 척 정박해 있었고, 그 뒤로 제주 원도심이 눈에 들어왔다. 갑판 후미에서는 두 사내가 닻을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은 밤새 제주월드호의 항로를 따라 마침내 제주 바다에 닿았다.

/권영란 기자

알아두면 좋은 정보

삼천포항에서 제주항까지 운항하는 여객선은 두우해운의 두우페리 제주월드호이다. 두운해운은 본사가 서울에 있고, 삼천포지사와 제주지사를 두고 있다.

1. 출항 시간
요일마다 출항 시간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한다. 자정 출발과 오후 10시 출발이 있다. 차량을 가져갈 경우는 2시간 전에, 그렇지 않을 경우도 1시간 전에 여객터미널에 도착해야 한다. 삼천포 시내는 식당이나 일반 가게들이 오후 9시경이면 문을 닫아 10시면 도심이 캄캄해지기 때문에 초행길인 사람들은 일치감치 서둘러 움직이는 것이 좋을 듯하다.

2. 운임료
각 선실마다 다르다. 1등급, 2등급, 3등급

3. 차량 운임료
차량마다 책정가가 정해져 있다. 차량을 가져갈 때는 운전자 1인은 운임료가 50%로 할인된다. 경차 소유자는 3일 이상 여행을 할 경우 제주에서 차량 대여를 하기보다는 차량을 가져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 주유를 해야 하는 경우
삼천포는 오후 10시가 지나면 도심에서 불빛을 찾기가 힘들다. 영업을 하고 있는 주유소를 그만큼 찾기가 힘들다. 미리 주유를 해놓는 준비가 필요하다.

5. 그 외
선실에서는 가볍게 술을 마실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놀이를 할 수도 있다. 매점에서는 음료나 술을 살 수 있지만 가격이 비싼 점이 있어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여럿이 갈 경우는 화투나 트럼프, 보드판 등을 준비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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