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자 추위가 더해지는 듯하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1910년 2월 14일 혼불을 태우고 순국하신 분이 바로 안중근 의사다. 벌써 젊은이들 사이에서 초콜릿 이야기가 나온다. 무척 속이 상한다.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한심하다. 밸런타인데이가 바로 2월 14일이다. 그날은 여성이 사랑하는 남성에게 초콜릿 선물을 하는 날이다. 원래 교회에서 거룩한 성인의 이름을 빌려 기념일로 정한 것인데 일본의 초콜릿회사가 이를 변용하여 안 중근 의사의 순국일을 다디단 초콜릿을 이용하여 일본에 대한 배일 항일 의식을 묽게 만들려 했던 영악한 의도가 있으며 그 의도 너머에 아직도 그들의 내선일체나 만한지(만주·한국·중국) 일체론이 시들지 않고 있음을 느낄 때 너무도 분하고도 섬뜩하다.

세계역사상 누구라도 처음부터 세운 뜻을 이룬 분들은 흔치가 않았다. 100여 년 전 만주에서 독립군 대장이 되어 군자금 확보 위해 여러 지역을 돌아보고 안 의사가 기지로 돌아와 보니 일본군 포로를 처형하고 있었다. 불쌍하게 여긴 안 의사는 지금 저들은 약한 자들이다. 저들을 마구 처형한다면 우리가 일본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는가! 살려서 돌려보내라고 명령한다. 한데 우리 독립군들은 그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그 포로들은 감사의 말도 하지 않은 채 너희 기지도 알았고 병력도 알았으니 이제 끝이다 하고 돌아갔다.

걱정한 대로 그들은 왔고 우리의 독립군들은 거의 전멸 당하였다. 모두 안 의사에게 손가락질하였다. 너의 공명심에 우리가 이렇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안 의사는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심지어 독립군의 상가에서조차 외면당하고는 더욱 깊은 실의에 빠졌고 그때 이토가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래 내가 졸개는 용서하였지만 대장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준비하였고 실행에 옮겼다. 이토를 저격한 총에서 총알 한 방이 남았고 이를 취조한 일인 검사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라 독립운동을 위한 전쟁이었음을. 그래서 만국공법에 의한 포로로 대우해달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독립투쟁이 더욱 가열될 것을 우려한 일제는 황급히 재판을 진행하고 여순 감옥에서 사형집행에 들어간다. 이를 안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님은 손수 흰 수의를 지어주시며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 가장 거룩한 죽음임을 알리고 어머니보다 앞에 숨을 거두는 것을 불효로 삼지 말라고 하셨다. 순국 직전 안 의사를 돌보았던 지바도시치라는 간수는 안 의사의 인품과 지성, 나라 위한 국혼과 동북아 평화애호사상에 감읍한 나머지 글을 부탁하였다. 이를 약속한 안 의사는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글을 써주고 단지 손으로 이를 증명해 주셨다. 지금도 지바도시치 가문에서는 가신으로서 안 의사의 제사를 계속 올리고 있다고 한다.

2월 14일은 일제의 사주를 받는 초콜릿회사의 영악한 의도가 살아 숨 쉬는 날이다. 그것은 우리의 기개와 의분의 표상이셨던 안 의사의 충정을 덮었으며 역사의식 희박한 우리나라 과자회사도 무의식중에 끌려가고 있다. 이를 보고 있는 그들은 지금 여우같이 웃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동북아에서 진정 평화 애호국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철저히 일본을 알고 극복하는 일이다.

   

과거 전범국 독일의 처세와는 전혀 노선이 다른 일본이 이런 식으로 가면 국제신인도와 양심 없는 나라로 전락할 것이며 그로 인한 우리의 국격은 상대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2월 14일은 우리 집에 조기를 달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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