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적 이해관계로 거짓 수치 생산…창원도시철도 검증 시민 요구 수용해야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가장 확실하게 '공증'해주는 지표가 있다. 수백, 수천억 원의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이른바 대형 공공개발 사업이 그것이다.

가히 전국적인 현상이다. 가까이는 돈 먹는 하마가 된 거가대교, 마창대교, 김해경전철, 가포신항이 있고 시야를 넓히면 용인 경전철, 인천공항철도, 여수 엑스포 등이 대표 선수들이다. 모두 몇 배씩 뻥튀기된 '수요 예측'에 근거해 공사를 벌였다가 MRG(최소운영수익보장) 등에 발목 잡혀 수백억~수조 원의 혈세를 낭비했거나 하고 있는 사업들이다.

첨단 과학기술이 일상까지 파고든 시대에 대체 이런 한심한 일이 무한 반복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얼마 전 열린 한국공간환경학회 학술대회에서는 수요 예측 실패의 원인을 분석한 강현수 중부대 교수의 논문이 발표돼 관심을 끌었다. 전 세계 관련 사례를 모아 수십 년 동안 이 문제를 파고든 덴마크 학자 벤트 플뤼비아의 연구 내용을 소개한 논문이었는데, 가장 흔하면서도 핵심적인 요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의적으로 예측을 조작하는"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였다.

메커니즘은 간단하다. 정치가와 관료, 사업 수행 기업, 해당 지역의 유력 집단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업이 성사되도록 예측 전문가에게 압력을 가한다. 직접적일 수도 있지만 눈빛만 봐도 통하는 '무언의 압박'도 있을 수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압력에 굴복하거나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거짓 수치를 만들어낸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공사만 시작되면 엄청난 권력(표나 연줄)과 돈이 내 손에 떨어지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수요·편익의 과잉 예측과 비용·폐해의 과소 예측은 당연한 수순이다. 몇 년째 시끄러운 신공항 입지 논란이 좋은 참조가 될 수 있다. 경남·부산·대구 각 지역의 수요 예측과 정부의 그것이 판이했던 지난 2011년 상황은 '과학'이 아닌 '이해관계'가 최우선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원인이 이러하다면 처방 역시 정치·경제적 요인 해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강현수 교수는 공공사업 대부분을 주도하고 있는 중앙정부에 일단 가장 큰 책임을 묻는다. 사업 추진으로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 정치적 이득이나 권력을 얻으려는 대통령과 정치인, 관료들의 자성은 물론, 수요 예측 실패시 이와 관련된 정부 당사자나 전문가·기관의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설기술관리법 등 현행법에도 처벌 조항이 있긴 하나 요건이 모호하고 강도도 약하다며 이를 대폭 강화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지방분권도 대안이다. 강 교수는 "공공사업을 기획·집행하는 중앙정부 권한을 나누면,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로부터 더 많은 예산을 따내기 위해 불필요한 공공사업을 벌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 지역이 보유한 예산 중심으로 사업을 벌여 책임성을 높이자는 이야기다. 그는 또 예측 과정의 정보 공개 등 투명성 강화와 자유로운 토론에 기반한 시민사회 참여 확대, 새로운 예측 기법 도입, 사업을 관리할 전문기관 양성도 강조했다.

   

마음만 먹으면 실행이 어렵지 않은 대안들이다. 이런 '정답'을 뻔히 알면서도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사악한 '오답'을 계속 써내는 집단 사기극은 이제 그만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마침 최근 창원은 하루 12만 7000명이 이용할 것이라는 시의 도시철도 수요 예측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려 6468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이다. 타당성 공개검증 등 시민사회 요구에 대한 창원시의 과감한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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