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임단협 분석 "과도한 혜택·위법 없어"…강성노조론 먹히는 이유는?

진주의료원 사태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시민의 '노조 혐오 정서'다? 다소 비약적이지만 전문가들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했다.

경남도는 "진주의료원 노조(보건의료노조 진주의료원 지부)가 워낙 '강성·귀족노조'라서 더는 공공의료를 수행할 수 없고, 이 노조원에게 줄 돈으로 서부 경남에 다른 형태로 공공의료를 확대하겠다"며 폐업의 주된 이유를 '강성노조 탓'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주의료원 노조가 왜 '강성·귀족노조'인지 증명하는 자료를 쏟아냈다. 지난 9일 도가 발표한 '진주의료원 노조 실상'과 이틀 뒤인 11일 나온 '진주의료원 노조, 진료비 과다감면 현황'이 대표적이다.

이들 자료는 대부분 진주의료원 경영진과 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진주의료원 노조 실상' 자료에는 진주의료원 단체협약 45개 항을 발췌해 '강성노조 해방구'의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도내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진주의료원 단체협약에서 과도한 조항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이런 전문가 의견에도 도의 '강성·귀족노조' 논리는 제법 먹히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두고 홍준표 지사와 경남도가 국민 사이에 널리 퍼진 이른바 '노조 혐오' 정서를 적절히 이용한 탓으로 풀이한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경남도민일보DB

◇다른 노조와 단체협약 비교·분석해 보니 = 최근 경남도민일보는 마산의료원지부, 진주의료원지부, 경상대학교병원지부, 경기도 의료원 소속 6개 병원 지부 등 보건의료노조 소속 9개 노조와 창원지역 금속노조 현대로템지회 등 10개 단위 노조 단체협약문을 입수해 2명의 지역 노동 전문가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전문가들은 진주의료원 단체협약이 다른 노조에 비해 과도한 조항은 극히 드문 일반적인 협약이라고 했다. 특히 경기도 의료원 소속 6개 지부와 진주의료원지부 단체협약은 '보건의료노조 의료원 지부 표준 단체협약'에 기반을 두고 있어 일부 조항을 제외하고는 거의 같았다.

이종래(전 경상대 교수)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은 "이 정도 내용으로 '강성·귀족노조'라고 하는 것은 좀 과하다. 홍 지사가 오히려 '노조 혐오' 정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다"면서 "사실 진주의료원 경영 부실이나 난맥상은 10년이 넘은 문제다. 강성노조가 주된 원인이라는 분석은 맞지 않다. 지금이라도 도가 의료원이 왜 이렇게 부실화됐는지 자세히 분석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주 노무사 검토 의견은 더 구체적이었다. 최 노무사는 "기존 권리 저하금지, 조합활동 보장, 유니언숍 규정, 사전에 인사이동 명단 노조 통보 등 경남도가 문제로 지적하는 단체협약 내용 대부분이 경기도 의료원 노조와 같고, 더욱이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 등 대부분 관련 법에 근거가 있는 내용들"이라면서 "금속노조 단체협약 등에도 비슷한 내용이 많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이런 내용을 사기업도 아닌 광역행정기관인 경남도가 마치 심각한 위법인 것처럼 다루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단체협약 접하지 못한 노동자 90% = 이처럼 노동 전문가들은 진주의료원 단체협약이 맹비난을 받을 만큼 '귀족·강성'인 부분은 적다고 공통으로 지적했다. 그런데도 도의 이런 다소 거친 논리가 국민 사이에서 '먹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0년 현재 전체 노동자 노조 가입률 9.7%, 노동자 100명 중 90명이 단체협약을 경험하지 못했다. 또한 1980년대 말과 1990년 초까지는 현대차나 현대중공업의 단체협약 내용이 그해 금속산업 전체 임금 인상 기준 같은 역할을 했지만 그 이후 '임금 및 단체협약 갱신' 싸움은 공장 안에만 머물고 공장 밖 시민과는 상관없는 일이 됐다. 노조는 그들만의 공간에 머물렀고, 시민은 노조와 연대 고리를 끊었다.

2008년 촛불 집회에서 노조나 진보정당 깃발이 나부끼면 "깃발 내려"라며 제지한 일은 사회적 연대가 사라지고 시민들이 정규직 노조에 정서적 반감이 얼마나 심한지 잘 드러난 예였다.

특히 경남도가 제시한 '진주의료원 노조, 진료비 과다감면' 자료는 이런 도민 정서를 자극할 만했다.

진주의료원 단체협약 44조(의료비감면)에는 조합원 본인과 배우자, 부모·자녀와 배우자 부모까지 입원 진료시 1인실 기준 9만 원 중 8000원만 내면 되도록 규정돼 있다. 또한 진료비 중 본인부담금의 50% 감면, 외래 진료시 진찰료 전액을 감면하도록 했다. 더불어 초음파 진단비와 MRI 등 비보험 진료시 50% 감면 조치되며, 치과 보철과 비보험 수술료도 50% 감면, 10년 이상 재직한 퇴직 조합원에게도 현직 노조원과 동일한 혜택을 보도록 했다. 이는 경기도 의료원이나 경상대학교 병원 단체협약과 비교해도 다소 많은 혜택이었다.

시민 김모(46·창원시 의창구 소계동) 씨는 "일반 사람 눈으로 보면 이런 단체협약들은 과하게 느껴진다. 직원 200명인데, 하루 환자 200명 본다? 공공의료는 필요하지만 솔직히 내일모레 문 닫을 회사(의료원)에서 가족까지 의료비를 이렇게 많이 감면받고 이 정도의 복지를 누렸다는 게 말이 되느냐. 홍 지사의 대화 없는 강공 일변도도 문제지만 왜 노조에 시민들이 비판적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주도했던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 박점규 집행위원(전 금속노조 비정규직 국장)은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박 위원은 "대학을 졸업하고 이른바 빵빵한 스펙을 갖고도 현대차 생산직 정규직으로도 들어가기 어려운 현재 고용 지옥에 대한 분노가 자본과 정권이 아닌 정규직 노조로만 향하고 있다"면서 "귀족노조론은 이미 노무현 정권 때부터 정규직 노조 공격용으로 쓰였다. 그런데 이런 공격을 이겨낼 만큼 사회 개혁 주체로 (노조가)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까 다소 과도하지만 이런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노조 혐오 정서는 이런 맥락에서 확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남도에 부메랑 될 수도 = 경남도가 광역행정기관인데도 이런 정서에 기대 합법적인 단체협약을 부정하고, 노골적인 노조 적대시 현상이 지속되면 부메랑이 돼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조태일 정책국장은 "광역행정기관이 합법적인 단체협약을 스스로 깨고, 마치 대단히 비도덕적인 양 공격하면 이는 도내 노사 관계를 파행으로 몰고, 분쟁을 격화하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 국장은 "도는 사기업이 아닌 광역행정기관이다. 그런데 헌법과 노동관계법에 보장된 단체협약을 전근대적인 노조관으로 이렇게 함부로 하고 노사 관계를 파행으로 몬다면 다른 사기업들에 단체협약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는 그릇된 메시지로 작용할 것"이라며 "도내 노사 분쟁이 격화됐을 때 사용자가 '너희는 우리보다 더했지 않느냐'고 따졌을 때 도가 무슨 낯으로 행정 지도나 조치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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