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를 '무모한 흥분'으로 폄훼…사설조차 싣지 않는 무관심

남녘의 작은 도시 마산이 시끄럽다. 이은상 시인의 시비를 마산역 앞에 세우면서부터다.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마산관리역과 국제로타리클럽은 지난 2월, 마산 역광장에 가고파 노래비를 건립하면서 철거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사비석과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노래비는 마산역 허인수 역장이 국제로타리클럽에 제안해 마산역 광장에 세웠다.

이은상이 누군가? 이은상 시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마산문인협회는 '이은상은 국가의 검증을 받은 애국지사이자 민족시인'이라고 극찬하는가 하면 시비철거 대책위는 '시류에 편승해 권력의 편에 섰던 마산정신과 배치되는 인물'로 "마산의 자랑이 아니라 수치"라고 비판했다.

이은상은 이승만의 부정선거에 항거해 일어났던 3·15의거를 일컬어 '무모한 흥분으로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요,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고 폄훼하기도 했다.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수립한 전두환 정권을 '특수한 상황에서는 강력한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 일반 여론'이라며 권력에 아부한 인물이기도 하다. 민주공화당 창당 때 창당선언문 초안을 작성하고 박정희 대통령 추도가의 가사를 작시하기도 했던 인물이 이은상이다.

이은상에 대한 평가는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언론도 마찬가지다. 〈경남도민일보〉는 노래비 건립 당시부터 사실 기사를 비롯해 여론, 칼럼, 사설 등 20여 회에 걸친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가 하면 창간 67주년을 맞아 '할 말 제대로 하는 강한 신문이 되겠다'는 〈경남신문〉은 시비설립 전후 서너 차례의 사실 기사와 양시양비론적인 오피니언 기사 한두 편이 전부다. 단 한 편의 사설조차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불편부당, 공명정대한 신문이 되겠다', '긍지를 갖고 책임을 지겠다'는 신문, '신뢰받는 향토지', '봉사하는 신문이 되겠다'는 신문이 지역의 쟁점논쟁에 대한 의견이 없다는 것은 언론으로서 역할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지역이 나아가야 할 바른길을 제시하려 한다면서 지역현안에 대해서는 소신 없이 눈치를 본다는 것은 언론이 가야 할 길이 아니다.

마산을 일컬어 민주의 성지라고 한다. 이승만 독재를 물리치고 이 땅에 민주주의의 씨앗이 된 3·15의거와 부마항쟁의 혼이 숨 쉬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자유와 정의, 민주'의 3·15정신이 숨 쉬고 있는 도시. 이런 유서 깊은 마산에 3·15를 부정하고 군사쿠데타를 정당화하고 독재권력을 미화한 인물의 시비를 마산의 얼굴인 역 앞에 건립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이 할 말을 잃으면 사회는 병들고 부패하고 만다. 오늘은 3·15의거가 일어난 지 53주년이다. 마산이 민주화의 성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마산시민의 삶이 3·15정신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한쪽은 토착 세력이 되어 권력의 편에 서고 다른 쪽은 3·15정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3·15영령들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신정권과 광주 시민을 학살한 정권이 가능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불의의 편에서 권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과 시류에 편승해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문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역사다. 다시 53주년을 맞는 3·15, 영령들께 부끄럽지 않은 민주성지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불편부당, 공명정대한, 할 말을 하는 언론이 있어야 한다. 불의의 역사, 토착 세력을 두둔하는 신문이 있고 권력의 편에 선 문인들이 있는 한 마산의 정신은 꽃피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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