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갈등으로 고향 대신 차가운 농성장…설 연휴 '반납'
자신에게 닥친 일이 '부당하다'며 한 번이라도 싸워본 이들은 종종 "세상의 벽이 너무 높다"고들 한다. 장기간 노사 갈등으로 설을 농성장에서 지낸 진해동의요양병원 간병노동자와 (주)케이비알(KBR)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신을 투사가 아닌 평범한 서민이라고 했다. 길가 농성장에서, 노조 사무실에서 명절 연휴를 지낸 이들은 처질 법도 했지만 농성장에서 만난 이들 표정은 밝았다.
11일 오전 진해 중앙시장을 지나자 비닐과 천막 한 동으로만 한겨울을 지내는 진해동의요양병원 간병노동자 농성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날 현재 72일간 고용보장 투쟁 중인 간병노동자 허순자(64) 씨가 홀로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설거지를 하던 허 씨는 "어서 오세요. 곧 지부장 올 텐데"라며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20분 남짓 지나자 간병노동자 대표(보건의료노조 창원시지부장)인 김주희(65) 씨가 천막으로 들어왔다.
계약 만료 뒤 재계약을 하지 않아 실직한 이들 33명은 모두 최소 50대 이상인 여성으로 명절 음식에다 시댁 방문으로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하지만, 허 씨는 이번 설에 남편과 두 아들만 함양 시댁으로 보냈다. 설 연휴 3일간 간병노동자 2명, 보건의료노조 울경본부 간부 1명 등 3명씩 한 조를 이뤄 주·야간 농성장을 지켰다.
이들은 "설을 보도블록 위에서 쇨 줄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하던 대로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그렇게 과한지 이해할 수 없다. 병원 측과 제대로 된 교섭이라도 하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날 오후 3시 창원시 성산구 웅남동 (주)케이비알 노조 사무실에는 조합원 2명과 박태인 금속노조 케이비알지회장이 함께 있었다. 이들은 조합원이 들고온 떡과 튀김을 나눠 먹고 있었다. 박영희(57) 씨는 "25년간 일했다. 2003년 한국강구 시절에는 6개월간 장기 파업을 하기도 했지만 추석을 앞두고 투쟁을 정리했다. 이번 설처럼 뒤숭숭한 명절은 회사 들어오고는 처음"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사측의 기계 반출 계약, 노조 간부 4명 해고 등 노사 갈등이 6개월째를 맞지만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박태인 지회장은 "간부 4명 월급 통장을 가압류해 월급을 못 받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 후포항이 고향인 부지회장은 돈도 없고, 연휴도 짧아 귀향을 포기하고 결국 노조 사무실을 지켰다"며 씁쓸해했다. 박 지회장은 "대표이사가 진정성 있게 교섭에 임해 조합원 고용불안을 빨리 해결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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