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선택 존중 받은 시절

   
 
 
어머니 장롱 속 낡은 앨범을 꺼내 사무실 책장에 두고 틈틈이 스캔을 받는다. 필자가 세상에 나올 것이라 꿈조차 꾸지 않았을 때부터 아버지가 된 사진까지 앨범에는 어머니의 60년 삶이 담겨 있다. 앨범을 들추며 기억을 더듬는 시간여행이 잔잔한 재미가 있다.

사진은 1987년 2월 14일 고등학교 졸업사진이다. 그럭저럭 20여 년의 시간을 간직한 사진이다. 어머니 옆에는 중·고등학교 동창인 진상이가 섰다. 사진을 누가 찍어 주었는지 기억이 없다.

그 때는 몰랐지만 이 날은 87년 6월 항쟁의 원인이 되었던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딱 한 달 되는 날이었다. 필자도 그 6월의 거리에 함께하였고 그날의 기억은 퇴색되지 않고 지금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71, 61, 63. 학교와 집을 오가며 타던 버스 번호이다. 창원 대원동에서 당시 북마산에 있던 학교까지 한 시간 남짓 걸렸고,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언제나 만원이었다.

자율학습이 늦게 끝나는 날은 학교 뒷담을 넘어 뛰어야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었고 그러고도 놓치면 가야백화점까지 또 뛰어야 했다.

그것이 싫어 3학년 여름방학부터는 자율학습을 면제 받을 궁리를 하였다. 집도 멀고, 집 옆에 도서관이 있는데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성적이 떨어지면 다시 자율학습을 한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고3 2학기는 막차 놓치는 것을 걱정하며 뛰지 않아도 되었고, 돈 100원을 내고 창원도서관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말 그대로 자율학습을 하였다. 둘 다 성적은 약간 떨어졌고 대학도 낮추어 진학을 하였다.

아주 가끔은 그때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본다. 인생이 조금은 바뀌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그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스스로의 선택이었고 그런 선택을 믿어준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필자는 세 아이의 아버지다. 부모의 선택이 아닌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는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한다. 또 아이의 선택을 믿고 존중하는 선생님을 만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종은(창원시 대원동·http://kisile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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