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자너메 아하수에로 왕 비문을 배경으로
이란에서 가장 역사 깊은 도시 3곳을 꼽으라면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사제국의 수도였던 이란 남서부 있는 슈쉬(Shush) 이란 남부의 페르세폴리스가 있는 쉬라즈(Shiraz)그리고 이란 중부 하메단(Hamedan)이다.

이 세 도시의 공통점은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로 슈쉬에는 겨울궁전, 하메단엔 여름궁전, 쉬라즈엔 정치, 행정 궁전이 있었던 곳이다. 모두가 당시 지역, 기후에 걸맞은 궁전을 지어 왕이 계절마다 이동하면서 집무를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중동 지방 대부분 영토를 장악한 페르시아 왕들은 한여름 더울 땐 약 4천 미터의 알반드(Alvand)산 중턱 고원 지대에 위치한 해발 1,830m 하메단에 여름 궁전을 지어 집무를 했다. 한겨울 추울 땐 서남부 곡창지대 슈쉬 겨울 궁전에서 집무를 했으며 고대 페르시아 설인 노루즈 때는 이웃 여러 나라 사절단이 함께 모여 설날 행사를 치른 곳은 쉬라즈였다.

비문 바로 옆에 있는 간자너메 폭포
필자는 이번 연초에 4번째로 하메단을 찾았다. 찾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는 혼자 들떠 감동에 휩싸인다. 이번엔 차를 몰고 하메단을 탐방한 터이라 시내 지리도 익히고 제대로 못 가본 곳도 찾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다고나 할까?

하메단 호메이니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길이 나 있다. 이 중에 이란에서 치과대학으로 이름난 '부알리 시나 치과대학'이 있는 방향으로 올라가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오르면 구약시대 바사 제국의 다섯 번째 왕인 아하수에로 왕의 비문이 있는 간자너메(Ganjnemeah) 계곡이 나온다. '간자'는 보물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너메' 책, 편지의 의미로 값진 보물이 숨어있는 장소로 해석할 수 있다.

워낙 해발 고도가 높아 겨우내 눈에 뒤덮여 있는 지리적 특징이다. 필자가 찾은 날도 눈에 뒤덮인 모습이 더 정겨워 보였다. 비문 오른쪽에 낙폭 9m 간자너메 폭포가 힘차게 물을 쏟아 붓고 있었다. 민둥산인 알반드 산 계곡에 쌓인 눈이 녹아내리기 때문에 1년 내내 폭포수를 감상할 수 있다.

비문에 대한 역사 그리고 번역된 내용 소개
이 계곡은 여름이 제철이다. 계곡 주변에 숲이 울창해 가족 나들이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한여름에 시원한 계곡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기 때문에 심신을 달래기에 최고의 장소이다.

이 간자너메 계곡 절벽에 상하 2개의 비문의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다. 다리오 왕의  아들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 기간인 BC 486-464년 사이에 비문을 새겨졌기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 년 전 유적인 셈이다. 가장 완벽하게 남아있는 원형 유적이다.

당시 아하수에로 왕이 살았던 궁터 발굴 현장
이 비문이 세상에 빛을 발한 것은 1,840-1,841년 프랑스의 화가이자 고고학자인 이유게네 프란딘(Eugene Flandin)에 의해 발견됐다. 발견 후에 고대 쇄기문자로 기록된 비문을 해석하기란 무척 어려웠다. 당시 통용되었던 세 개의 언어(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빌로니아어)로 각각 20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문을 새겼다.

이 비문은 당시 왕의 대로로 통하는 케르만샤 비헤스툰 비문과 그 내용이 비슷하고 새겨진 언어와 같은 것이 큰 특징이다. 이후 영국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인 헨리 라우리산(Henry Rawlison)에 의해 해석됐다.

비문 바로 밑에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해 놓은 간판이 있다. 당시 정치 사회를 지배했던 조르아스터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비문 내용은 대강 이런 것이었다.

"위대한 신 아후라마즈다(Ahura Mazda), 모든 신 중에 가장 위대하시며, 이 땅과 하늘과 사람을 창조하신 분, 그분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셨고, 그분이 바로 쎌서스(아하수에로)왕을 세우셨다. 많은 왕 중에서 뛰어난 왕, 많은 통치자 중에서 뛰어난 통치자, 나는 위대한 왕 쎌서스, 왕 중의 왕이며 수많은 거민들이 있는 땅의 왕, 끝이 없는 경계를 가진 거대한 왕국의 왕 아케메니안의 군주 다리오의 아들이니라"이 비문이 바로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왕의 비문이다.

이 비문을 보면서 구약 성경 에스더에서 나오는 주인공 아하수에로왕이 에스더를 새 왕비로 맞아들이는 생생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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