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거쳐 정치권력 장악”

보도연맹원 학살과 지역사회의 지배구조(경남도민일보 김주완 부장)

경남은 지금까지 민간인학살 피해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보도연맹원은 줄잡아 1만명 이상이 학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경남에서 당시 학살을 직접 수행한 주체는 누구였을까. 최철용(경남경찰국장), 신영주 경남경찰국 사찰과장 등 십수명을 헤아릴 수 있다.

이러한 가해자 가운데 마산에서 보도연맹 결성을 주도하고 학살에 관여한 김종신(보도연맹 사업부장, 국민회 간부)의 행적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그야말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등 각분야, 각계층에 걸쳐 적어도 마산을 움직이는 데에 필요한 중요한 역할이라면 거의 다 해 온 정상의 인물’, ‘마산을 상징하는 인물’로 우익인사들 중에서도 가장 출세한 사람이며, 지역지배세력들이 살아온 발자취로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의 이력에서 특히 눈 여겨 봐야할 점은 1950년대의 삶이다. 사실 한국전쟁 이전에도 그가 몸담은 우익단체 인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권력에 도전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전쟁 직전인 50년 5월 30일 치러진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우익계열 후보들이 나왔지만 큰 표차로 연거푸 패했다.

그러나 상황은 6·25가 터지고 나자 180도 달라졌다. 52년 4월 25일 지방선거에서 자유당으로 출마한 김종신과 대한청년단으로 출마한 유석형이 시의원으로 당선되고, 열흘 후에는 김종신이 마산시장으로 당선된다. 뿐만 아니라 김종신은 54년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권태욱(2439표)은 물론 허윤수(1만514표)를 제치고 1만7372표를 얻어 당선된다. 이는 한국전쟁이 김종신과 유석형을 비롯한 우익세력의 기반을 강화시켜줬다는 점을 입증해 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처럼 학살을 수행하거나 관여한 이들은 이후에 어떤 불이익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승승장구 승진을 하거나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을 확대해 왔다. 또 지역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함께 누리면서 극우반공이념으로 뭉친 사람들끼리 기득권세력을 형성해왔다.

이로 인해 계속 마산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김종신이나 문삼찬, 손문기, 유석형, 강태호, 그리고 당시 경남경찰국장과 사찰과장, 특무대 요원 등을 지냈던 사람들은 여태껏 단 한번도 공식적인 비판을 받거나, 죄상을 폭로당한 적이 없다. 그들이 지역사회의 모든 권력을 장악해왔기 때문이고, 또한 그들의 우산 아래서 기득권을 이어받아 새로운 토호세력으로 성장해온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지배세력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반공주의가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지역사회와 국가사회의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한 앞으로도 보도연맹원 학살과 같은 비상식적이고, 반인류적인 국가범죄는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가해자 규명작업이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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