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반민특위 일으키려 이 책 썼다”

지난 1일 삼일절을 기해 〈일제강점기 인명록Ⅰ-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라는 두꺼운 책이 발간됐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진주지역과 관련된 인물 3387명의 행적을 낱낱이 담고 있다.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집대성한 인물은 김경현(40) 경남근현대사연구회 연구원이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 “제2의 반민특위를 일으키고자 이 책을 썼다”는 그의 바람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 개인이 5년 만에 이뤄냈다고 생각하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는 이 책에 실린 3387명의 관공리(공무원)·유력자를 모두 친일파라고 단정짓지는 않는다. 다만 진주지역과 연관된 일제강점기 면서기, 순사 같은 말단부터 경방단 등의 관변단체 인물까지 망라하고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 직원록이나 신문, 간행물, 회고록, 자서전을 일일이 대조해서 잘못되거나 동명이인을 가려내고 그들의 등급, 봉급에서 바꾼 일본이름, 행적을 세세히 실었다.
그 중에서 ‘시일야방성대곡’으로 항일 언론인으로 알려진 위암 장지연의 친일 행적도 담고 있다. 위암이 〈경남일보〉주필로 있던 시절 1910년 11월 2일자 이 신문에 일본왕 생일(천장절)을 기념해 제호에 일장기를 실은 것과 〈경남일보〉를 떠나 마산에서 생활했던 때인 1915년부터 1917년까지 〈매일신보〉에 실은 일제 찬양 글을 담고 있다.

일제 면서기부터 관변단체인물까지 3378명 행적 세세히 기록

그가 10여 년 동안 관심 있게 모아온 자료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인명록 집필에 돌입한 건 지난 2001년. 당시 그는 진주 〈명석면사〉 발행을 마무리 한 뒤였는데 진주에서 민족문제연구소 당시 조문기 이사장과 한상범 소장을 만나 친일인명사전 발간 계획과 관련, “일제 잔재를 극복하는 역사문화운동의 단초를 여는 작업인데 지역인명록이 기본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주지역인명록 집필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간된 진주지역인명록을 이야기하자면 그의 역사의식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교시절 〈백범일지〉, 대학시절 읽은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이 그가 이 길을 가게 한 시초다. 그는 “일제식민지를 배제하고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는 현실에서 내가 사는 이 지역의 연구부터 해야겠다고 맘 먹었다”고 전했다. 경상대 사회학과 재학 당시부터 그는 역사사회학에 흥미를 두고 있었다. 진주민란, 형평운동이라는 자랑스런 역사의 물줄기도 있지만 역사학자들이 근현대사에서 친일문제와 해방 후 좌우익 문제를 기피하는 현실은 더욱 그를 지역사에 심취하게 했다.
지난 91년부터 7년 동안 〈진주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98년 근현대시기 춘사 나운규가 영화 홍보차 진주극장을 찾았던 이야기,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가 신식무용공연을 했던 일, 진주 최초의 교회 등 진주지역의 재미난 이야기를 집대성한 〈진주이야기 100선〉을 내기도 했다.
그 책을 계기로 본격전인 역사가의 길을 들어서게 된다. 바로 관에서 펴내는 사서 중에서는 전국에서 최초로 면단위 지역의 친일혐의자, 좌우익에 대한 근현대사를 적나라하게 다뤄 화제가 됐던 진주 〈명석면사〉편찬을 맡으면서부터. 사돈팔촌까지 연결되는 혈연, 지연, 학연이 얽힌 지역에서 이데올로기 문제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발간을 앞두고 공람을 했을 때 난리가 났단다. “일제강점기 고등계 형사로 ‘고문귀’라고 불릴 정도였던 하판락이라는 사람의 행적을 실었는데 그 문중에서 항의가 거셌다.” 결국 하판락이라는 이름은 빠지긴 했지만 그의 끈질김으로 삭제된 기록은 남겼다.

최초 면단위 근현대사 <명석면사> 발간 후 인명록 집필 결심

“명석면의 한 단면을 잘라 우리나라 역사와 대화를 한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모든 역사가 중앙사 위주인 현실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 셈이다. 잊혀진 기억 속의 민간인학살, 보도연맹사건은 물론 삼청교육대, IMF당시 면민 생활상 등의 현대사도 고스란히 담았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지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이기에 일제강점기 진주지역 인명록도 태어날 수 있었다. 그는 해방 후 반민특위만 제대로 가동됐다면 이런 작업이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일제잔재 청산이 없었기에 한 연예인의 종군 위안부 누드 파문, 친일파 자손의 조상 땅 찾기 소송, 한 교수의 친일론 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친일파 처단이 목적이 아니라 진상규명이 되어야 하고 그래야 반성을 하고 화해가 이뤄진다”는 그는 과거를 덮어두고서는 밝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진주지역인명록 발간의 방법과 모델을 통해 다른 지역에도 연구 성과가 나와서 결국 〈친일인명사전〉발간으로 이어지길 그는 바란다.
이 책을 만들면서 백과사전을 만드는지 혼자서 무모하다는 회의감이 들 때는 목숨을 바쳐 가며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를 생각했다는 그는 곧 새로운 연구에 착수할 계획이다.
“해방정국의 지역사의 변동에 초점을 맞춰 일제강점기 인적구조가 해방 이후 어떻게 재생산되었는지 연구를 준비중이다. 한마디로 ‘~카더라’에서 실증적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