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서북 방향에는 소규모 전통시장이 있다. 대략 73보인데 걸어서 48초이며 날일 자 행마로 가도 1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이다. 참기름 파는 가게를 지나 몇 군데의 채소가게를 설렁설렁 지나면 단골 채소가게가 나온다. 겉보기에 여느 채소가게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유난히 사람들이 몰린다. 엊그제 돈 만 원으로 당근 두 개, 오이 세 개, 양배추 한 통을 샀더니 겨우 500원이 남았다. 875원짜리 대파 한 단을 500원에 반 단만 달라고 하니 아주머니가 씩 웃으며 대파 한 뿌리를 봉지에 슬쩍 넣어 주었다. 그러고는 그냥 덤이란다.
2001년 2월 26~27일. 나는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이 열리는 대회장인 서울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있었다. 이세돌 3단이 이창호 9단을 상대로 첫 세계대회 결승전을 치르는 역사적인 곳이었다. 나는 당시 넷바둑(현 엠게임 바둑) 운영자로 세계 최초의 인터넷 생중계를 담당했다.숨을 졸이던 결승 1국과 2국이 끝나자 대국장의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결과는 이세돌 3단의 압승. 18세 소년이 세계대회 13회 우승의 이창호 9단을 상대로 해서 연속으로 불계승을 거두자 사람들 이목은 이세돌 3단에게 집중되었다.이른 아침부터 대국
1956년 출생 조치훈 9단, 현재 세계바둑계를 주름잡는 신진서·최정 9단을 아는 지금 바둑 세대에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겠다.부산에서 태어나 겨우 여섯 살 코흘리개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기원 최연소 입단을 기록하고 대삼관(본인방, 명인, 기성)의 위업을 세 번이나 쌓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불과 25세 나이에 쓴 그의 자서전 라는 책은 바둑을 잘 모르는 이에게도 인생의 교훈과 지혜를 전해주고 있다. 마지막 초읽기까지 한 수, 한 수에 심혈을 기울이는 그의 바둑 두는 모습은 삶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
2023년 9월 18일, 진주시는 프로기사 변상일 9단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각종 스포츠 스타나 문화예술인들이 지자체 홍보대사로 위촉된 것은 많았지만 바둑 프로기사가 위촉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2013년 서울시는 불세출의 천재기사 이세돌 9단을 '서울시 차 없는 날' 홍보대사로 위촉했지만 정작 고향인 전남 신안군에서 홍보대사로 위촉했다는 기사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다. 그에 비해 변상일 9단을 진주시 홍보대사로 위촉한 진주시 안목과 혜안은 대단히 높이 살만하다. 변상일 9단은 앞으로 2년간 국내외 활동을 하게 된다.
1882년 갑신정변의 주모자였던 풍운아 김옥균은 정변에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했다. 그는 망명지 일본에서 바둑 네 가문 중 으뜸인 본인방가의 당주였던 슈에이와 깊은 교류를 한다. 김옥균은 슈에이와의 만남에서 이렇게 묻는다."본인방은 바둑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가?"본인방이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김옥균은 "바로 천축국일세"라는 뜻밖의 말을 남긴다. 천축국은 인도를 이르는 말이다. 22세로 문과에 장원급제한 당대 지식인이었던 김옥균은 바둑이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 않고 인도에서 시작해 남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다시 일본열도로 건너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듣다 근래 홀연히 사라져간 영웅들을 회상했다. 요즘 이슈화되는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등 여러 독립운동가를 떠올리겠지만 내가 회상한 영웅들은 그렇게 큰 영웅들이 아닌 내 가슴에 품어 왔던 작은 영웅들이다.직간접적으로 내 삶에 영향을 미쳤던 유·무명의 바둑 영웅들에 대한 짧은 회상이다.백두 박종열, 40대부터 머리가 세 백두(白頭)로 불리던 바둑 프로기사이다. 서울 선릉역 인근 강남기원에서 처음 뵈었다. 내가 바둑에 빠져있을 무렵, 뵐 때마다 지도대국과 복기를 조근조근 해주시던 분이었다
8.15.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이 숫자만 보더라도 숫자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광복절. 우리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인 일제 35년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비로소 빛을 되찾았다는 의미이다.어떤 사람은 815라는 숫자에서 IMF 구제금융 체제가 시작되던 1998년,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등 외국산에 맞서 콜라 독립을 선언하며 출시한 범양식품의 815 콜라(1999년 시장점유율 13.7%)를 떠올릴 수도 있다.이 어떤 사람에 속하는 필자는 어느 독립군 무명용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일송정 푸른 솔 사이로 말을 타고 만주벌판을
한 판의 바둑은 초반, 중반, 종반으로 나뉜다. 이를 보통 초반 포석, 중반 전투, 종반 끝내기로 부른다.포석은 집 자치가 유리하도록 곳곳에 돌을 벌여놓는 것으로 귀와 변에서의 정석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 채의 집을 짓는다 하자. 집을 지으려면 터를 닦아야 하고 터를 닦은 후, 기둥을 세운다. 이 기둥을 좁게 세우면 집의 크기가 작아질 것이고 멀리 세우면 지붕이 무너지게 된다. 적당한 거리로 기둥을 세워야 튼튼하게 집을 지을 수 있다.포석도 이와 다름없다. 포석은 자신이 차지하고 싶은 영토의 적당한 거리에 기둥을 세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계사년 1593년 7월에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 "절상호남국가지보장 약무호남시무국가(竊想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是無國家)"라고 했다. 이는 "가만히 생각하건대, 호남은 국가의 보루이다.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란 뜻이다.이를 현대의 관점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이 표현했다면 어떠했을까? "절상호남국가지보장 약무영남사 시무국가사(竊想嶺南史國家之保障 若無嶺南史是無國家史). 가만히 생각하건대, 영남의 역사는 국가의 보루다. 만약 영남의 역사가 없으면 국가의 역사도 없다"라고 읊었을지 모르겠다. 왜냐
는 대한민국 만화계에 한 획을 그은 김수정 화백의 주인공 캐릭터다. 김수정 화백의 고향은 경남 진주이다. 그러면 1억 년 전, 옛날이 너무나 그립고 보고픈 엄마 찾아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고향은 어디일까? 어쩌면 진주 진성면 가진리가 아닐까 한다. 진주 가진리는 새발자국 화석과 함께 공룡발자국 산지이기 때문이다. 새발자국 화석은 어쩌면 자신을 시조새로 오해하고 있는 암컷 타조 '또치'의 발자국일지 모르겠다.1983년 월간 보물섬에 연재한 는 와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 캐릭터이지만 진주
바둑에 사석작전이란 전술이 있다. 나의 돌을 희생함으로써 더 큰 이득을 얻는 전술이다. 버림으로써 크게 얻는 것.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라면 생각해내기 어려운 기술이다. 버려야 할 돌을 무겁게 끌고 다녀 버리지 못한다면 바둑돌을 놓을 때까지 하수 취급을 면치 못할 것이다.대부분의 출가 승려들은 입산하고 가족이란 가장 무거운 돌을 내려놓는다. 어깨에 올라타기도 하고 발목을 채우기도 하는 가족이란 굴레를 벗어나 깨달음의 길로 나아간다. 부귀영달을 버리고 출가한 싯다르타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물론 개인의 영달이나 안위를 위해 출가하는 때도
"기원을 운영한다는 말씀이죠?"나의 바둑학원 원장 명함을 건네준 사람에게 적잖이 듣던 말 가운데 하나이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에게 '바둑학원=기원'이라는 등식이 성립해있는 것이다.필자가 바둑을 처음 접할 당시, 바둑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은 없었다. 기껏해야 학교 특별활동 시간을 이용해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배우는 정도였다.그러나 바둑은 강사 역량이 뛰어나고 학생 자질이 준수해도 일주일에 한 시간 배운다고 결코 실력이 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백날 배워야 대다수 아이가 바둑 규칙이나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필자의 20
"바둑은 침묵 속에서 욕망을 드러내고 매혹하고 매혹 당하고 서로를 발가벗겨,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그땐 그저 바둑인 거지."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에 등장하는 대사 중 하나이다. 에는 바둑에 관한 여러 대사가 더 등장하는데 주인공인 문동은(송혜교 분)이 바둑을 복수의 한 재료로 삼았기 때문이다. 기원에 앉아 상대를 기다리는 문동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기원을 많이 드나든 고수의 눈빛이다. 상대 실력도 모른 채 대뜸 앉아 판내기를 하는 나이스한 하도영(정성일 분)도 여간내기가 아니다. 그리고 스스로 바
2022년 5월 9일 문화재청으로부터 한 통의 서한이 당도했다. 내용의 요지는 '2022년 4월 유네스코에 다라국을 쌍책 지역 일대의 가야 정치체로, 기문국을 운봉고원 일대의 가야 정치체로 표현하고자 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는 것이다.'다라국'과 '기문국'은 에 나오는 명칭으로 우리의 역사서에는 보이지 않는 이름이다. 의 지명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가야사 전공 역사학자들은 가야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 의 임나에 대한 기록을 뼈대로 우리의 가야사를 세워야 한다는 괴이한 논리를 만들었다. 에
지금으로부터 꼭 23년 전, 1999년 일이다. 세상은 세기말 '밀레니엄 버그'라는 컴퓨터의 결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천 년의 시작이라는 설렘과 함께 불안감이 증폭되던 시기였다. 휴거 열풍이 불고 정해진 날짜에 휴거하지 못한 모 종교단체 회원들의 모습이 TV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밀레니엄 버그와 휴거는 일종의 버그에 불과한 촌극에 지나지 않았다.당시의 나는 1997년 일기 시작한 벤처 열풍에 PC방에 자리를 잡고 앉아 넷바둑과 스타크래프트 게임으로 날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한석규·
2022년 연말을 맞아 필자가 바둑의 고수가 되는 비기를 하나 공개하겠다. 바둑 마니아라면 바둑을 두다 어느 때, 이마에 내천 자(川)를 그리며 집중에 집중을 더하다 보면 미간 사이에 눈이 하나 더 생기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필자는 바둑의 '제3의 눈'으로 부른다. 이 제3의 눈은 보통의 눈이 아닌 초월적인 감각과 인지력을 지닌 눈을 의미한다. 이 자리는 한의학 용어에서 인당혈이며 요가의 나라 인도에서는 제6 차크라로 스와디스타나라고 한다.바둑에서 이 제3의 눈을 뜨면 객관의 시각이 생기는데 이때부터 승부
고 김서령 작가의 의 배경처럼 한두 세대 전의 아지매들과 할매들이 삼삼오오 모여 배추적을 먹었다면 아재와 할배들은 사랑방에 모여 화톳불을 옆에 두고 바둑을 두었다.오동나무로 만든 바둑판 위에 오동동 돌을 놓으면 얕은 신음이 연기처럼 자욱하게 번지는 풍경의 사랑방. 곰방대로 등을 긁으며 혹은 겨울밤을 긁으며 세상만사 근심 걱정은 바둑판에 담긴 듯 연신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장탄식들.이러한 기억을 지닌 한 초로의 사내가 바둑을 배우고자 찾아왔다. 일생 중 자신의 행복감을 최고조로 느꼈던 과거의 한 단편
"역사는 기록이다. 기록의 보존이다. 그게 문화다."고 이광구 바둑평론가가 2008년 에 경남 함양 출신 노사초 국수의 생가와 사적비를 취재하여 말미에 남긴 글귀다. 노사초 국수는 조선 말부터 대일항전기를 거쳐 광복 무렵까지 바둑활동을 했던 인물이다.옛날 옛적부터 대일항전기까지 우리 바둑은 순장바둑의 시대였다. 순장바둑은 흑백 각기 8개의 치석을 놓고 시작하기에 포석단계는 없지만 치열한 수 읽기를 바탕으로 승부를 겨루는 묘미가 있는 바둑이다. 한국바둑이 실전적이라는 평을 받는 까닭도 이러한 순장바둑의 유전자가 바탕이 되었
휴가철을 맞아 모처럼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서울. 여행지에서 살아서인지 몇 해 전부터 고향인 서울이 낯설어진 까닭에 휴가지를 서울로 잡았다. 한류열풍으로 세계적인 여행지가 된 서울을 이방인처럼 돌아다니고 싶었다.승용차에 며칠살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장장 여섯시간에 걸쳐 서울에 도착했다. 트렁크에 휴대용 바둑판을 실어두었음은 물론이다.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듯 호적수를 어느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땡볕에 남대문, 명동, 청계천 등지를 차를 몰고 다니다 조선시대 에 등장하는 어떤 선비의 이야기가
삼국지를 말하면 보통 원말·명초의 소설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떠올린다. 후한의 정통성을 계승한 촉나라가 위나라, 오나라와 패권을 다투는 내용이다.이러한 〈삼국지연의〉는 영화와 게임의 소재가 되어 무수히 많은 아류를 양산하였다. 그러고는 마치 〈삼국지연의〉가 정사인 양 우리의 뇌리에 자리 잡도록 했다.그리하여 나라를 지켜낸 우리나라의 영웅들보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내용을 더 많이 아는 경우가 적지 않다.왜 을지문덕, 연개소문, 양만춘, 성충, 계백, 김춘추, 김유신 등 우리 삼국사에 등장하는 영웅에 관한 이야기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