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우리 대중음악계의 유일한 화두는 놀랍게도 뮤직 비디오이다. 본격적인 의미에서 한국 뮤직비디오의 역사는 10년 남짓 되지만 음악으로서의 매체가 듣는 음악의 매체인 음반을 제치리라곤 뮤직 비디오 종사자말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신호탄은 스크린의 톱 스타들을 대거 동원하여 만든 98년 조성모의, 이 신인의, 그것도 뮤직 비디오의 흥행과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발라드 뮤지션의 재빠른 움직임은 거의 영화적인 내러티브를 고용하여 세기말 우리 대중음악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90년대의 문제아 서태지가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뮤직 비디오를 찍고 당대의 슈퍼스타 김건모가 레게의 본고장 자메이카에 헌팅을 다녀 올 때만 해도 뮤직 비디오는 그저 스타들의 홍보 보조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뮤직 비디오 제작 한편에 5억 정도의 제작비를 흔쾌히 날리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며, 하나의 앨범에서 대여섯 곡을 뮤직 비디오로 만드는 엄청난(?) 일도 일어난다. 그리고 톱 배우들의 캐스팅은 이제 뮤직 비디오계에서 이미 상식이 되었다.

2000년 올해 한국 대중음악계의 핵심 또한 뮤직 비디오를 제쳐 두고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올해 최고의 판매고를 올린 앨범인 조성모의 3집과 어마어마한 물량을 동원한 <아시나요>의 뮤직 비디오가 그것이다. 하지만 2000년 한국을 대변하는 이 뮤직 비디오는 한마디로 끔찍한 악몽과 같은 상상력이다.

월남전 참전 동지회의 불만보다 더 많은 문제가 여기엔 숨어 있다. 만약 일본의 한 톱 뮤지션이 식민지 시대의 독립군을 토벌하는 헌병으로 분장하고 그에 반한 한국의 톱 여배우가 독립군의 아지트를 밀고하여 소탕하는 뮤직 비디오를 만든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베트남은 유구한 민족문화의 전통과 치열한 민족적 자긍심이 높은 나라이다. 지금의 베트남인들이 이 비디오를 본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이 황폐한 철학이 우리 대중음악이 서 있는 현주소이다. 뮤직 비디오가 음악과 영상 사이에서 새로운 표현 기법을 창출해냈다는 사실은 적극적으로 인정하지만 그것이 음악과 흥행의 근원적인 본질까지 호도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비극이다. 음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각적인 예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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