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과 연왕과의 대화는 계속된다.

“사흘 후 남편은 과연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첩을 시켜 독주를 부어 남편에게 권하게 했습니다. 첩은 주인에게 그것을 귀띔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되면 본처가 쫓겨나거나 죽게 될 것이고, 말하지 않자니 주인이 죽게 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일부러 쓰러지는 척하면서 술을 뒤엎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주인이 채찍으로 첩을 쉰 대나 때렸습니다. 첩은 한 번 넘어지며 술을 엎질러 주인을 살아남게 하고, 본처를 쫓겨 나지 않게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첩 자신은 채찍 맞는 일을 면치 못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저의 잘못은 여기 나오는 첩의 신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던 연왕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불쑥 말했다.

“과인이 잘못했소. 선생은 본래의 관직에 복귀하시오.”

소진은 그 후로 더욱 후한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소진은 연왕의 젊은 모후와 간통한 사실이 들통나자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났다.

한편 제나라에서는 새 왕이 등극해, 대부들끼리의 권력다툼이 한창이었다.

그 틈새에서 소진도 무사할 수가 없었다. 반대파에서 보낸 자객에 의해 칼을 맞았다. 중상이었지만 즉사는 면했다. 그러나 소진은 그 때 입은 열상으로 상처가 도져 죽게 되었다. 제왕께 부탁했다.

“소신이 죽으면 거열형(車裂刑)에 처해 주십시오.”

“그 무슨 말이오?”

“그래야만 소신을 찌른 자를 체포하실 수가 있습니다.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려다 발각되었다고 하셔야 범인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대의 원수를 갚아달라는 뜻이구려.”

소진이 죽자 왕은 과연 그대로 시행했더니, 자객은 의기양양하게 나타났다.

제왕은 자객을 주살하고, 소진의 명복을 빌었다.

어쨌건 유세자로서의 소진의 일생은 파란만장했다. 더구나 그의 죽음도 그렇거니와, ‘미생’을 예로 든 유세는 절묘했다.

공자(孔子)와 쌍벽이었던 장자(莊子)역시 근엄한 공자의 명분주의를 공박하기 위하여 ‘미생의 신의’를 예로 든다. 강도 도척을 내세워 공자와 대화하는 형식을 취했다.

“미생같은 인간은, 기둥에 못으로 박아 죽인 개, 물에 빠져죽은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마찬가지다. 쓸 데 없는 명목에 구애되어 소중한 목숨을 소홀히 하는 인간은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반박한다. “허언장담과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이 해대는 지금 사람들에게는 미생의 침 한 방울이라도 약이 될 것이다!”

[출전 : <史記> <莊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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