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중에서 세상이 기억하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여러 창작물에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등장하고 자연스럽게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에도 여전히 우리가 기억하는 인물은 유관순 열사뿐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언론진흥재단과 경남도민일보에서 마련한 3·1운동 100주년 기념 기자체험단 활동을 하면서 달라질 수 있었다. 서대문형무소를 돌아보며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8호 감방에 대한 감정이 특별했다. 교과서 속에서 배웠던 유관순 열사가 머물다 순국한 역사적인 장소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나라와 개인의 행복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별로 실감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그런 것은 우리하고 상관없다고 여기며 늘 어리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유관순 열사가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며 목숨을 걸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순국한 나이가 17세다. 우리하고 같은 또래다. 그렇게 생각하니 열사의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의 사연도 알게 되었다. 이효정·박진홍의 이야기다. 노동운동을 하던 동료였던 이들이 소식도 모른 채 살다 독립운동을 하다 다시 만난 곳이 8호실이란다. 그들의 만남이 한편으로 얼마나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슬펐을까?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임명애 애국지사의 임신부로서의 옥중 생활이다. 한겨울 엄동설한에 난방이 되지 않는 옥사에서 아이를 낳아 키웠다고 한다. 유관순 열사는 산모에게 자기 밥을 덜어주고, 아기의 기저귀를 자신의 체온으로 말려주었다고 한다. 생각만으로도 눈물 나는 장면들이다. 그 아이는 훗날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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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구하기 위한 운동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던 그 시절에 여성이라고 뒤로 물러나 있지 않았다. 그에 비해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은 어쩌면 잘못된 교육 탓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여성운동가들의 활약이 제대로 알려지고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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