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KAI 고성공장 신축' 추진 갈등
'고용위기지역'고성군 지난달 KAI·도에 유치 제안
사천지역 "배신감·항공산업 집적화 분산"반발 증폭

사천시에 본사를 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고성군에 항공부품공장을 신축하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사천시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천시의회는 최근 KAI의 항공MRO(정비) 사업 예산 15억 원을 삭감하고 'KAI-고성군 공장신축 저지' 결의안을 채택했다. KAI는 "고성군의 공장 유치 제안서를 검토 중일 뿐"이라며 공식 견해는 밝히지 않는 가운데, 사안이 '정치적 입김' 논쟁으로도 번지는 모양새다.

◇KAI 고성공장 신축 추진 배경 = KAI는 비즈니스 제트기인 G280 부품 공급 수주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계약이 체결되면 이른 시간에 공장을 지어 생산체계를 갖춰야 한다. KAI가 공장 신축을 검토하는 곳은 고성군 고성읍 이당리 일원 6만7000여㎡. 이당일반산업단지를 조성 중인 고성군이 항공부품공장을 유치하겠다는 제안서를 지난달 KAI와 경남도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고성군은 조선산업 실직자들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군 관계자는 "경남도 항공산업 발전 계획에 따라 큰 틀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목적"이라며 "사천이 항공산업 메카가 맞지만 증가하는 공장 신축 수요에 따른 입지적인 여건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고성도 일부 기능을 담당해 상생했으면 좋겠다"고 유치에 나선 배경을 밝혔다. 제안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KAI 관계자는 "기업에서 볼 때 좋은 조건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사천시와 고성군, KAI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KAI의 고성공장 직접투자는 우선 정부의 R&D(연구개발) 자금을 지원받는 계획과 관련 있다. 또한, 고성이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지역고용촉진지원금'과 '고용촉진장려금' 지원혜택도 있다. 공장 부지도 애초 알려진 것처럼 무상은 아니지만 사천보다 저렴한 가격에 받을 수 있다. 이 밖에 투자유치보조금도 사천보다 고성이 나은 조건이다.

지난 13일 사천시근로자복지회관에서 'KAI 고성공장 신축 반대 사천시민 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 /이영호 기자

◇사천 지역사회 반발 이유 = 사천시는 KAI의 고성공장 신축 계획을 전혀 몰랐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경남도에 파견된 사천시 공무원이 고성군의 제안서 제출 사실을 파악했다. 사천 지역사회가 반발하는 이유는 첫 번째가 배신감이다. 사천에 부지가 있는데도 KAI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6일 '공장신축 저지 결의안'을 채택한 사천시의회는 "KAI가 12만 시민의 눈과 귀를 막아놓고 항공부품 생산공장 신축을 고성에 은밀하게 추진하는 처사에 대해 시민 모두 배신감과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KAI의 배신행위, 한 번은 참았지만 두 번은 못 참는다'는 사천 곳곳에 걸린 펼침막의 주요 내용이다. KAI는 2012년 산청군에 에어버스사의 A320 부품공장을 짓기로 해 사천시와 큰 갈등을 빚었다. 정부가 KAI 민영화를 추진할 때와 MRO 사업 유치가 늦어질 때 시민들이 나서서 도와줬는데, KAI가 사천을 무시한다는 여론도 확산하고 있다. 한 사회단체 대표는 "SPP조선의 폐업 이후 지역경제가 엉망"이라며 "지역현실을 외면하고 고성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KAI의 행위는 서운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사천·진주에 경남항공국가산업단지가 조성 중이라는 점이다. 항공부품 클러스터를 집적화시켜야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데, 분산시키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사천시사회단체협의회는 13일 'KAI 고성공장 신축반대 대책위' 출범식에서 김경수 도지사가 항공산업 집적화를 어지럽히는 이번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정부도 국가항공산업 집적화 계획을 성실히 실행할 것을 촉구했다. 사천으로서는 경남도의 계획도 마뜩잖다. 경남도는 진주혁신도시 인근 지름 40km 이내 지역(진주·사천·함안·고성)을 국가혁신클러스터로 지구지정하고, '항공부품·소재산업'을 대표산업으로 육성하는 계획을 8월 산업통상자원부에 신청했다. 사천상공회의소와 수주물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천지역 중소항공업체들도 이런 맥락에서 KAI의 고성공장 신축이 멀리 볼 때 아쉬울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범시민 대책위원회'를 꾸린 시민사회단체들은 오는 20일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 계획이다. 앞으로 갈등이 계속 증폭할지, 적절한 해법을 찾기 위한 시점이 될지 그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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