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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 다이어리]지리산 화엄사·성삼재휴게소

경찰관과 함께 달린 지리산 여행

조재영 기자 jojy@idomin.com 입력 : 2018-06-01 11:59:45 금     노출 : 2018-06-01 13:21:00 금

세월호

홀로 여행을 다닐 때 내 발, 내 친구가 되어주는 BMW R1200RT 모터사이클에는 노란색 리본이 달려있다. 그것은 오디오 안테나 끝에 매달려 있는데 '세월호'를 상징하는 리본이다. 세월호에 갇혀 목숨을 잃은 학생들을 추모하며, 그들이 못 다 본 넓은 세상을 그들에게 보여주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내 나름의 추모 방식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해왔다.

2년 동안 안테나에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느라 검게 때가 탄 것을 샛노란색 새 리본으로 바꿔 달았다. 4월에 그렇게 했다. 그리고 5월 5일과 6일이 연휴여서 가족을 데리고 1박 2일 서쪽 여행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세월호를 보여주고자 진도 팽목항과 목포신항에 가기를 원했고, 고1 딸아이는 군산에 가길 원했다. 그래서 지난겨울에 다녀온 부안 변산에서 하룻밤을 묵고 군산, 목포, 진도를 다녀오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첫날을 군산에서 보내고 부안에서 자는데 밤새 비가 내렸다. 부안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격포, 채석강, 곰소항 같은 명소가 많았지만 모두 지나쳤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에게는 우리가 왜 그 먼 거리를 달려 그곳에 가는지 각시가 '어렵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목포로 가서, 신항 부두 끝에 비를 맞으며 누워있는 세월호를 마주했다.

컨테이너로 된 현장사무실에 들어가서 모금함에 2만 원을 넣었다. 딸아이가 천으로 된 노란 리본에 글을 쓴 뒤 밖으로 나가서 그것을 철망 펜스에 걸었다. 나는 내 모터사이클에 매달려 있는 리본과 같은 리본을 몇 개 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을 원하는 다른 분들에게 나눠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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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천은사~성삼재 구간은 구비가 많아서 라이딩이 재미있다. 모터사이클은 BMW R1200RT 폴리스버전이고, 라이더는 현직 경찰관이다. / 조재영 기자

밖으로 나와 수없이 많은 노란 리본이 걸려있는 철망 펜스를 앞에 두고 멀리 누워있는 세월호를 봤다. 딸아이는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담담했다.

그곳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진도 팽목항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시간 계산을 해보니 저녁 약속 일정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팽목항이 아니라 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못내 아쉬웠다. 나는 이미 팽목항을 다녀왔지만 각시와 아이들은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촛불집회 현장과 세월호 현장은 꼭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역사적 현장을 경험함으로써 '건전한 시민' 혹은 '깨어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우리가 목포신항을 다녀오고 1주일 뒤 조사단이 세월호를 바로 세웠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바로 선 세월호처럼 진실도 똑바로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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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모터사이클 안테나에 달려 있던 헌 세월호 리본을 떼어내고 새 리본을 달았다. / 조재영 기자

교통경찰

창원을 비롯해 인근 지역에서 1000cc 이상 대형모터사이클을 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전부를 다 알고 지내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일면식은 있거나 한 다리 건너 아는 식으로 알음알음 연결이 된다. 이 바닥은 좁다.

토요일 지리산을 한 바퀴 함께 돌기로 한 사람은 현직 경찰관이다.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고, 중·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고,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지만 좀처럼 함께 라이딩을 할 기회는 없었다. 그는 주로 경찰서 또는 경남지방경찰청 교통 관련 부서에 배속돼 대형모터사이클을 타고 교통순찰을 하는 일을 해왔다. 물론 도둑이나 강도를 잡는 형사팀에서도 일을 했지만 교통순찰대원을 오래 했다. 지금은 모터사이클과 관련이 없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다시 교통 관련 부서로 복귀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과거에는 '모터사이클 순찰대원이 되면 1년에 집 한 채씩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 일명 '사이카순찰대원'은 노른자 자리였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0년대 후반부터 경찰 처우가 크게 개선되는 대신 '뒷돈' 받는 경찰관을 엄단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길거리 비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르러서는 이런 관행이 완전히 없어졌다. 그리되면서 일선 경찰서에서는 '사이카 순찰대원'을 하고자 하는 경찰관을 찾는 게 큰일이 되었다.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고, 교통사고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경찰 내부에서도 3D 직역에 해당하게 된 것이다. 보통 일선 경찰서에는 교통순찰용 대형모터사이클 2대를 운영하는데, 지원자가 없어 1대만 운용하는 경찰서가 흔할 정도가 됐다.

BMW에서 경찰에 공급하는 교통순찰용 대형 모터사이클은 내가 타고 있는 R1200RT 기종인데 교통순찰 업무에 맞게 약간 변형된 폴리스버전이 공급된다. 눈에 잘 띄도록 흰색 바탕에 앞뒤로 경광등이 장착되어 있다. 또 운행 중 넘어져도 운전자 부상과 차체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금속보호대가 앞뒤로 장착되어 있다. 비상시 차량 사이로도 신속히 이동할 수 있도록 일반 버전보다 사이드백 폭도 좁다. 폴리스버전은 경찰에 공급되기도 하지만 일반 민수용으로 판매되기도 하고, 경찰에서 운용하다가 운용 기간을 넘겨 일반에 공매되기도 한다. 경남지방경찰청과 일선 경찰서에는 교통순찰용 대형모터사이클로 할리데이비슨 일렉트라글라이드 폴리스버전이 운용되고 있고, 서울특별시를 비롯해 전국 광역시에는 주로 BMW R1200RT 폴리스버전이 운용되고 있다. 도심에서는 육중한 할리데이비슨 기종보다는 날렵한 BMW 기종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는 작년에 BMW R1200RT 폴리스버전을 구입했다. 어쩌다 연락이 되거나 페이스북을 통해 근황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날 서로 다른 곳을 달렸거나, 같은 곳을 각자 다른 날 여행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마다 같이 한번 달려보자고 했지만 실행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봄이 다 가기 전에 지리산을 한 바퀴 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에게 연락했더니 OK 사인이 날아왔다.

재첩과 커피

토요일 아침 함안 가야의 한 카페 앞에서 그를 만났다. 뜨거운 커피를 한잔 하면서 하루 일정과 코스를 간략하게 얘기하고 출발했다. 내가 앞에 달리고 그가 뒤를 뒤따랐다. 2명이 달릴 때는 앞에 달리는 사람이 길잡이를 한다. 뒤따르는 사람은 후방을 살피는 것과 함께 앞에 달리는 사람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위험을 알려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앞에 달리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자동차가 다가와 있음에도 이를 보지 못하고 자동차가 달리고 있는 쪽으로 차로를 변경하려고 하면 뒤에서 경적을 울려주거나 상향전조등을 켜서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 이처럼 모터사이클 라이딩은 혼자서 달리는 것이지만 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앞사람이 속도를 올리거나 멈추려 하거나 차로를 변경하려 하는 기색을 읽어내고 앞사람이 움직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뒷사람도 함께 움직이게 되면 라이딩의 재미가 배가 된다. 두 대가 달리는데 마치 한 대가 달리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함께 라이딩을 해보면 그렇게 죽이 잘 맞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라이딩 스타일이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다.

2번 국도를 타고 진주, 사천을 거쳐 하동까지 달렸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씨였지만 기온이 높고 바람도 적당한 날이었다. 하동읍내 한국전력 앞 주차장에 주차하고 건너편에 있는 재첩식당으로 갔다. 재첩회덮밥 2인분을 주문했다. 회덮밥과 재첩국이 함께 나왔다. 국산재첩이라 그런지 회덮밥과 국에 들어있는 재첩의 크기가 아주 작다. 1인분 1만5000원이면 가성비가 나쁘지 않다. 회덮밥과 국을 함께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게는 회덮밥이 조금 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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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쌍계사 가는 길에 있는 카페. 옆으로 길게 가지를 뻗고 있는 벚나무가 좋은 그림을 만들어준다. / 조재영 기자

식사를 마치자마자 화개장터까지 달려가서 쌍계사 쪽으로 방향을 잡고 계곡 안쪽으로 거슬러 올랐다. 십리벚꽃길 끄트머리쯤에 있는 카페 앞에 멈췄다. 그 카페 앞에는 오래된 벚나무가 있다. 그 나무는 사람 키 높이 쯤에서 굵은 가지를 옆으로 길게 뻗고 있는 모양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그 가지 아래 나란히 주차했다.

바쁠 것이 없었다. 느긋하게 커피를 한잔 하고 다시 출발했다. 화개장터 쪽으로 다시 내려가서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 방향으로 달렸다. 화엄사 아래는 구례군 마산면이다. 마산면사무소가 있고, 마산파출소도 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스쳐 지나가는 길이지만 '마산'이라는 이름이 반갑다. 전남 구례의 작은 시골 동네인 '마산'은 아직 건재하지만 경남의 도시 '마산'은 이제 창원시에 통합되고 없다.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라는 행정구역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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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월초파일을 앞두고 화엄사 대웅전 아래 마당을 모두 덮을 정도로 빼곡히 매달아 놓은 화려한 연등. / 조재영 기자

화엄사·성삼재휴게소

화엄사에 들어가려면 입구 길목에서 돈을 내야 한다. 1인당 3500원씩이다.

우리가 찾아간 날 화엄사는 뭔가 분주했다. 절 입구부터 연등을 달아놓았고 뜰에는 하늘을 덮을 정도로 많은 연등을 달아놓아서 약간 들뜬 분위기였다. 거기다 원통전은 보수공사 중이었고, 대웅전에서도 불상에 무엇인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수선했다. 사찰 특유의 고즈넉함이 없었다.

그런 중에도 인상적인 것은 각황전이었다. 규모가 대단히 클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이 육중하고 장엄하게 느껴졌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건축물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지만 아름다움과 균형이 조화롭다는 생각을 했다. 밖에서 보면 2층처럼 보였는데 안을 들여다봤더니 바닥부터 천정까지 뻥 뚫린 단층이었다. 그러니 마룻바닥에서 천정까지 기둥이 뻗어 있었는데 그 높이가 상당했다. 한참 전에 지어진 것을 조선 숙종 때인 1699년에 중수 공사를 시작해 4년 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4년 동안 공사를 했다니 거의 새로 짓는 정도의 공사였을 것이다. 300여 년 전에 중수된 건물 치고는 규모나 균형, 아름다움 어느 면에서도 빼어난 건축물처럼 보였다. 국보 제67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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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각황전. 오른쪽에 반쯤 보이는 나무가 유명한 홍매화가 피는 나무다. 멀리 뒤에 보이는 석등은 국내에서도, 세계에서도 가장 큰 석등이다. / 조재영 기자

여행에서 돌아와서 찾아보니 미처 보지 못하고 온 것이 있는데, 그것들은 바로 각황전 바로 뒤에 있었다. 각황전 뒤편 경내에는 동백나무숲과 반송, 사사자삼층석탑이 있다고 한다. 사사자삼층석탑은 불국사의 다보탑과 비교될 만한 이형석탑이라고 한다. 사자 네 마리가 석탑을 이고 있는데 사자 네 마리 한가운데 스님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 스님상은 이 절을 지은 연기조사의 어머니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 반송과 동백숲은 화엄사의 경치를 대표할 만하다고 한다. 아마도 그 경치는 겨울 눈 내린 날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화엄사가 있는 골짜기에서 곧장 위로 산을 오르면 무넹기를 거쳐 노고단에 오를 수 있다. 노고단에서 정상에서 남서쪽 아래 골짜기를 훑어보면 화엄사가 눈에 들어온다. 산꾼들에게는 화엄사가 있는 골짜기는 노고단으로 오르는 지름길인 셈이다. 하지만 자동차나 모터사이클을 타고 이동하는 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화엄사 위로는 도로가 없다. 또 다른 길로 둘러가면 화엄사 보다 훨씬 높은 곳인 성삼재까지 자동차나 모터사이클을 타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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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삼재휴게소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시암재휴게소 쪽 전망. / 조재영 기자

화엄사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천은사 입구를 지나고 꼬불길을 올라 성삼재휴게소에 닿았다. 성삼재휴게소에서는 주차비를 받는데 모터사이클은 무료였다. 비록 무료이긴 하지만 작년까지는 일반 주차면에서 주차를 하도록 허용했는데, 이번에는 한쪽 귀퉁이에 일렬로 주차하도록 했다. 그곳은 사실상 주차장 밖과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승강이를 벌이는 것이 싫어서 직원의 말을 따랐다. 무료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주차장은 주차장법을 준수해야 하고, 주차장법에서는 어떤 주차장이라도 모터사이클을 수용하도록 되어 있다. 즉 성삼재휴게소 측은 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나아가 주차면이 아닌 곳에 주차를 했다가 사고가 나면 법적 보호를 받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은 무료 주차를 원하지 않는다. 주차료를 지불해도 좋으니 정당하고 당당하게 주차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시내에 있는 대형마트, 백화점 주차장은 진입을 거부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마트나 백화점에 간 모터사이클은 인도에 주차하고 보행자들에게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명백한 차별과 법 위반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휴게소 전망대에는 산 사면을 타고 올라온 바람이 거셌다. 그와 나는 일상에서 쌓인 피로를 그 바람에 날려 보내며 1000m 고지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오래 즐겼다.

휴게소를 떠난 우리는 빠르게 복귀했다. 그의 라이딩은 차분하고 노련했다. 든든한 라이딩 버디가 한 명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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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삼재휴게소에서 판매하는 매화빵. 섬진강 건너 광양에서 생산되는 매실 맛이 난다. / 조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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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영 기자

    • 조재영 기자
  • 경제부 데스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조언과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 보내 주실 곳 jojy@idomin.com 전화: 250-0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