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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마산 문학의 여명 밝힌 '백치'를 아시나요

1956년 지역 남녀 고교생 모여 만든 동인
창작 활동뿐 아니라 시화전·낭독회 개최도
이달 초 동인지 2집 발간 '창립 62년 만'
"이런 문학 열정 있었노라 증명하고 싶었다"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8년 03월 19일 월요일

1950년대 한국전쟁을 전후한 마산은 멋쟁이 시인들의 도시였다. 일찍이 마산은 해방 직후 마산상고 교사이던 시인 조향(1917~1984)이 주도해 김수돈, 박목월, 김춘수, 유치환, 이호우, 서정주 등과 시 동인지 <로만파>를 만든 곳이다. 한국전쟁 때도 직접 피해를 보지 않았기에 문학청년이 모여들어 '처녀지', '청포도', '흑상아' 같은 문학 모임이 활발했다. 한껏 '로맨티스트'를 품은 마산은 문학 열기로 부풀어 있었다.

백치(白痴)는 이런 분위기에서 마산 지역 남녀 고등학생들이 모여 만든 모임이다.

"마고 3년으로 올라가던 겨울방학 무렵이었는데 전일수 형이 무슨 엉뚱한 생각에선지 범문학서클 하나를 만들자고 갑자기 열에 떠서 연락을 하고 다녔다. 수필을 쓰고 있던 그가 김남조, 이원섭, 김춘수, 김수돈 같은 마산에 있던 멋쟁이 시인들에게서 아마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자극받았던 것 같다. 상고 쪽에서 이광석, 마여고 쪽에서 박현령, 성지여고 쪽에서 추창영을 부르고 그의 하숙방에서 첫 회합을 가졌다. 각 학교 문예반장을 다 끌어 모은 셈인데 연극과 시를 함께하고 있던 변재식을 비롯해서 송상옥, 유동석, 임혜진, 임혜자, 한 학년 밑이었던 김만옥, 염기용, 조병무, 김병총, 황성혁들도 자연히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1956년 1월 백치 동인 창립식 때 낭독한 취지문. /<백치> 창간호

시인이자 소설가, 화가인 이제하(81)의 회고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55년 <학원>에 시 '청솔 그늘에 앉아'가 실리면서 등단했다. 당시 학생 문학도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던 그를 포함해 마산에서 문학 좀 하는 고등학교 2, 3학년들이 백치로 모인 셈이다.

이들은 1956년 1월 3일 오후 2시 당시 마산시 상남동 전일수의 집에서 창립총회를 했다. 이날 낭독한 '백치동인 취지문'에 특히 꿈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전략) 인간에게는 그 외에 부여된 현실과 정반대되는 꿈이 있고 이상이 있어서 이것은 살리고 현실화시키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도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가난하고 무지하고 폐허된 우리나라에 어렵고 외로운 이 문학의 길을 가실려는 분이 고리 고장에서도 이렇게 많다는 것이 너무나 마음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하튼 우리는 이 길을 동행하면서 길가에 잔디도 심고, 꽃도 피우고 무성한 숲도 만들어 꿈에 굶주린 사람, 영혼이 죽어 가는 사람들의 안식처를 만들어 긴 인생의 여로를 포근히 지나가도록 함께 애쓰고 노력하고 정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후략)"

▲ 2009년 발행한 동인지 <백치> 창간호(왼쪽)와 이달 초 발행한 <백치> 2집. /이서후 기자

이 취지문은 전 KBS PD이자 시인인 박현령(80)이 쓴 것이다.

남녀구별이 준엄한 시기, 오직 문학에 달뜬 마음으로 모였던 학생들은 같이 모여 책을 읽고 토론하며 낭만을 만끽했다.

"어느 여름밤, 갓 대학 신입생이 된 첫 여름방학이었다. 공부를 계속할지 말지 불투명한 앞날이 닥쳐오고 있었으나 우리는 모여서 즐거웠고 근심 걱정이 없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바다를 보러 가자! 우리는 박수를 치며 선창가로 달려나갔다. 어느 어부가 일을 끝내고 배를 묶어놓고 들어간 사이, 우리는 그 배를 타고 호수와 같은 합포만의 바다로 나갔다. 노래를 부르며, 통행금지가 지난 줄도 모르던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선창가에 줄을 서서 선주에게, 경찰에게 이름 적히고 야단맞고 있었다. 1960년대 초반, 그때는 그렇게 낭만이 있고 가난한 때였다." 이는 박현령의 회고다.

<백치> 창간호를 보며 회고하는 이광석 원로시인. /이서후 기자

당시 백치 동인들은 단순한 문학 독서모임 정도가 아니었다. 실제 어른들이 드나드는 카페를 빌려 시화전이나 낭독회, 문학의 밤 행사를 진행했다. 당돌하면서도 열정 가득한 활동들이었기에 조향, 김춘수 같은 당시 문학계 큰 어른들도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15명 정도인 동인 중 80%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중 절반은 시인이 됐고, 나머지도 수필이나 소설을 썼다. 이제하, 박현령을 포함해 '국화꽃 저버린 가을 뜨락에'로 시작하는 가곡 <고향의 노래>를 작사한 시인 김재호(80), 1982년 미주한국문인협회를 창립한 소설가 송상옥(80) 같은 이들이다. 물론 전혀 다른 길을 걸은 이도 있다. 한때 유명한 '선박 세일즈맨'으로 석탑산업훈장을 받은 황성혁(79) 황화상사 대표가 그렇다. 그리고 마산에는 3, 4명 정도가 남았는데 대표적인 이가 원로시인 이광석(83)이다.

이들은 모임이 만들어진 지 53년이 지난 2009년에야 <백치> 창간호를 냈다. 이미 2명의 동인이 작고한 뒤다. 그리고 다시 9년이 흘러 이달 초 <백치> 2집을 발간했다. 작고 동인은 7명으로 늘었다.

1964년 서울 빠리 다방에 모인 20대 백치 동인들. /<백치> 창간호

"창간호는 사실상 백치 동인의 족보와 같은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후에 누가 백치 동인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이 될까도 싶었다. <백치> 2집은 창간호만 내고 끝낼 수가 없어서 발간했다. 이제 모두 80 고령이어서 힘들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작품을 모았다. 우리가 죽기 전에 이런 몸부림이라도 쳐서 마산에 이런 문학 열정이 있었노라 증명하고 싶었다."

동인지 발행을 주도한 시인 이광석의 말이다.

이제 백발이 된 백치 동인들이 10대 후반 문학청년의 마음으로 이달 말 다시 마산을 찾을 예정이다. 오는 30일 오후 6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 홍화집에서 열릴 백치 동인 모임은 동인지 <백치> 2집 출판 기념회를 겸한 창립 62주년 축하 자리이자 오랫동안 마산을 떠나 있던 동인을 위한 고향 방문 행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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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뮤지컬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