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종합병원 간호사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보건인력 종사자, 특히 여성이 절대다수인 간호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요즘 직장의 상급 직원이 하급 직원을 괴롭히는 데 '태움'이라는 신종 용어가 쓰이기도 한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을 '볶는다'라고 하는 것에 견주어, 괴롭힘이 불에 태울 지경임을 의미한다.

2015년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의 실태조사에서 폭언 피해 경험자는 49.8%(8694명)를 차지했고, 성희롱 9.6%(1556명), 폭행 7.8%(1270명), 성폭력 0.4%(62명)로 나타났다. 주된 가해자는 환자(33.4%)와 보호자(29.4%)였지만, 의사(16%)와 상급자(14%)도 포함되었다. 직장 문화에 대한 조사에서도, 병원이 직원 통제적이라는 응답이 41.3%를 차지했고, 의사소통이 불만족스럽다는 답변은 41.3%에 달했다. 병원에 대한 신뢰도는 18.7%에 불과했다. 고용안정, 임금 조건, 노동시간, 직장 분위기, 일에 대한 자긍심 등을 종합한 직장생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간호사 직군의 만족도는 100점 만점 기준으로 42.4점으로 나타났다. 비간호사 직군은 45.4%였다. 병원의 비민주적인 노동환경과 직장문화의 원인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이 꼽힌다. 앞의 조사에서 2015년 보건의료인의 주당 노동시간은 2008년 45.8시간보다 더 늘어난 49.8시간(전체 임금노동자 41.9시간)으로 나타났다. 이는 보건의료인의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병원의 영리 추구 경향이 심화하면서 인력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 노동자들은 병원 인력이 10%가량 부족함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의 인력 부족은 노동조건을 악화함으로써 이직을 촉진하고 이는 다시 노동조건의 악순환을 부르고, 직장 문화를 비민주적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

공공병원이 나서서 인력을 확충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병원의 영리화를 막고 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보건의료인의 70%를 차지하는 간호 종사자들의 불합리한 처우는 성차별과 떼놓을 수 없다. 여성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왕따나 괴롭힘, 성폭력 피해에 더 쉽게 노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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